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김일성과 김정일의 만수무강은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위한 연구 중에는 631호라는 만병통치약 개발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김일성이 75살이 되던 1987년에 김정일의 지시로 극비밀리에 연구가 시작됐던 만병통치약 631호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은 어떤 병이든 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처방 법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만병통치는 곧 만수무강을 뜻하는 말로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계는 인간의 장기나 몸의 한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적 수단은 만들 수 있어도 만병통치약은 존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냐면 사람마다 몸 상태나 체질 등이 다르고, 서로 상반되는 여러 가지 질병들에 동시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은 없으며 만약 있다고 하더라고 약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뒤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좋은 음식이나 적당한 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생일 75돌을 맞으며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이 등장해 김정일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약물은 남포수산대학의 한 교수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개발된 약물이 사람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한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에서 관련 임상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진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는 곧 연구 조를 조직했습니다. 연구 조는 실험생물학과 생리학전공 반 이익재 교수가 책임을 지고 김원주와 신태섭과 같이 뛰어난 전공생들로 꾸려졌습니다.
이 약물은 1986년에 알려졌는데 김정일은 김일성의 생일 75돌이 되는 1987년에 결과를 내놓으라고 독촉했습니다. 연구 과제를 떠안은 김일성 종합대학 생물학부는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지만 김정일의 지시였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형편이 못됐습니다. 임상실험은 1차적으로 평양에 있는 중앙동물원 동물학연구소 경제동물연구실에서 각종 실험동물들을 대상으로 진행됐습니다.
기막힌 것은 연구 조를 이끌고 있는 이익재 교수마저 약물의 성분과 조제방법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 입니다. 연구 조에 속한 연구사들은 단순히 노동당 조직지도부 5과에서 지급하는 약물을 받아 여러 가지 실험만 진행해야 했습니다.
약물을 개발한 남포수산대학의 교수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비밀시설에 격리되어 있으면서 실험약물만 만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험 약물의 명칭은 노동당 중앙위에서 '631호'라고 지정해 주었습니다.
"왜 '631호'냐"고 묻는 우리의 질문에 이익재 교수는 "김일성의 생일 4월 15일과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을 합치면 631이 된다며 이 약이 김일성 뿐 아니라 김정일의 만년장수에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에서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병통치약이라는 '631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익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약물은 남포수산대학의 한 교수가 물고기 보관 연구를 진행하던 과정에 의외의 효능을 발견하면서 개발됐다는 것입니다.
전력난에 냉동시설도 부족한 북한의 실정에서 잡아 놓은 물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하려면 인체에 해를 주지 않는 방부제가 필수였습니다. 물고기 보관 방부제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이 약물이 개발되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초기에 이 약물은 무좀에 뛰어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좀약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장암 말기를 진단받은 한 환자가 죽는 날만 기다리다가 항암성분도 있다는 이 약을 한번 먹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달가량 약물을 섭취하고 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종양의 크기가 현저히 작아졌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증상도 멈췄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전이됐던 종양조직들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이 북한 전역에 확산되면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앞을 다투어 약물을 구입하여 복용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환자가 100% 다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환자들이 효과를 보면서 다른 암환자들도 이 약물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효과를 본 사람들이 늘면서 의학계에서도 이 약물을 주시했습니다. 항암효과가 인정되면서 여기에 다른 여러 성분들도 추가됐습니다. 어느 광산에서 채취한 광물성분에 여러 동약재들을 추가해 오존 가스로 반응시켜 약물을 제조했습니다.
약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재일동포들도 구입해 일본에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판매하려다가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약물의 생체실험을 맡은 '조선종양연구소'는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일체 외부에 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 중에 중앙당의 높은 간부도 있었는데 그가 이 약물의 효과를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 하면서 주요 연구대상으로 지정됐습니다. 또 김정일의 지시로 해당 약물의 임상시험을 김일성 종합 대학 생물학부가 떠안았습니다.
당시 저는 연구 조에서 동물실험에 의한 '631호'의 항암효과를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연구사들은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조선종양연구소'에서 'M16' 유선종 세포와 '평양80' 피부종 세포를 실험용 쥐에 투입했습니다.
정상동물에게 깨알 크기의 'M16' 유선종 세포와 '평양80' 피부종 세포를 주입하면 열흘도 못돼 계란만큼 커지게 되고 나중에 죽어 버리는데 우리는 이 약물을 투여하면 종양의 증식이 어느 정도 제어 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암 완치율이 낮다는 점이 연구과정에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631호'는 간이나 신장 등 다른 장기에 강한 부작용을 나타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연구 조는 결국 '631호'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른 한쪽으로 인체실험을 하던 '조선항암연구소' 역시 '631호'가 확실한 효과가 없다는 연구 내용을 김정일에게 보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마당에 '631호' 제조자가 돈을 받고 약물의 비밀을 외부에 팔아버린 문제도 드러났습니다.
'631호'는 이렇게 요란스럽게 태어났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631호'를 제조한 남포수산대학의 교수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었습니다. 연구조도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조용히 해체되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제2, 제3의 '631호'가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런 약물들이 알려지면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임상실험 대상으로 죽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분별이 없다면 김정은 역시 제명을 다 하지 못한 김정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뻔합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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