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엔 늘 고향에서 먹던 시원한 감자농마국수가 생각납니다. 내 고향인 양강도 혜산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여러 차례 다녀간 양강도에서 제일 큰 특산물 식당인 압록각이 있습니다. 오늘은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압록각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과 압록강의 '친선다리'로 이어진 혜산세관의 맞은편을 보면 조선식 기와를 얹은 2층으로 된 건물이 있는데 여기가 양강도에서 유명한 '압록각'입니다.
압록각은 양강도 특산물인 감자를 재료로 쓰는 식당이라고 하지만 다른 음식은 다 제쳐두고 감자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의 맛이 끝내주는 것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압록각의 감자전분 국수는 온면도 있지만 냉면이 단연 1위입니다. 양강도에 토박이로 살면서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지금의 압록강 '친선다리'는 1980년대에 건설되었습니다. '친선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그곳엔 북한과 중국을 잇는 쇠밧줄(와이어로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압록강의 물살에 밀리지 않도록 그 쇠밧줄에 작은 나룻배들을 묶어 두던 옛 나루터였습니다.
해방 전까지 양강도 도소재지인 혜산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인접한 국경의 소도시였습니다. 지금의 압록각은 해방 전 국경단속을 위해 일본군이 주둔하던 장소였습니다. 해방 후엔 그 자리에 '혜산면옥'이라는 식당이 들어 않았습니다. '혜산면옥'은 1980년대 말 김정일의 제안에 따라 '압록각'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양강도를 현지지도하는 과정에 이곳 '혜산면옥'에 여러 차례 들려 시원한 감자농마국수를 먹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1963년 8월과 1968년 7월, 1972년 6월, 또 1976년 7월 등 무더운 여름철이면 삼복더위로 지글지글 끓는 평양을 피해 공기가 맑고 물맛이 좋은 양강도를 찾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압록각에 들렸던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때문에 압록각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단위', '사적건물'로 특별히 보존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압록각에 가면 김일성이 농마국수를 먹으며 "양강도는 공기도 맑고 물맛이 참 좋은 고장입니다"'라고 말한 내용을 새겨 넣은 '현지교시판'이 있습니다.
압록각 초급당위원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혁명전적지 관문도시인 혜산시를 찾는 백두산 답사행군대원들에게 압록각의 시원한 농마국수를 더 많이 먹이도록 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내용을 현지지도 말씀이라고 액자 속에 새겨 넣은 현판이 있습니다. 양강도에는 압록각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양강도당위원회 청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혜산시 탑성동에 위치한 양강도 당위원회는 1980년대까지 일본강점기에 지은 5층짜리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양강도를 현지지도 하던 김정일이 "도당 청사가 일제 때 지은 건물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당장 허물고 새 청사를 지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이후 양강도 당위원회는 옛 건물을 허물고 지금의 건물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당시 혜산시에 남아있던 일제 강점기의 건물들을 모조리 부수었는데 다행히 압록각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적건물로 등록돼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3년에 새로 압록각 지배인으로 부임된 강명실이 중앙의 비준을 받아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혜산시엔 외국인들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간부들이 머물 수 있는 외국인 호텔이 있지만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에는 양강도에 변변한 호텔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중앙에서 내려온 간부들은 모우 압록각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당시 일제가 지은 압록각의 본 건물은 중앙급 간부들이 여관방처럼 사용하도록 했고 맞은편 압록강 쪽으로 지은 2층 건물에서 냉면과 온면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최현, 림춘추 등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들도 이곳 압록각을 다녀간 인물들입니다.
2003년에 사적건물인 압록각을 허물어버리고 재건축을 하게 된 데는 당시 양강도 당 책임비서(위원장)였던 김경호의 역할이 컸습니다. 김경호는 연형묵이 자강도당 책임비서였던 시절 수하에서 조직비서를 지낸 인물입니다. 연형묵의 소개로 김정일의 눈에 들었던 김경호는 2000년 3월 양강도 조직비서로 부임되어왔고 2년만인 2002년 12월에 양강도당 책임비서로 승진하였습니다. 압록각 지배인 강명실은 항일투사의 손녀이고 인민군 지휘관으로 제대된 인물입니다.
강명실 지배인은 "김정일 장군님을 다시 압록각에 모시는 것이 나의 최대목표"라면서 김경호 책임비서를 설득했고 그를 통해 중앙의 승인을 받고 사적건물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허물지 못했던 압록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강명실의 끈질긴 노력으로 양강도당 책임비서 김경호가 직접 혜산시당 조직지도부 당생활지도과장 이철수를 압록각 건설책임자로 파견하고 '6.18 돌격대' 양강도 여단에서 제일 일을 잘하는 도시건설대대와 직맹대대를 현장에 투입시켰습니다.
도당책임비서 김경호의 지시로 압록각 재건 공사장에 혜산시 주민들은 새벽마다 동원돼 자갈과 모래를 날라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빠른 속도로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3층짜리 건물과 청량음료를 전문으로 하는 2층짜리 건물이 일떠서게 되었습니다. 내부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은 양강도 무역관리국과 각 무역회사들에 할당해 중국에서 사들이도록 했습니다. 무역일꾼들과 함께 압록각 지배인 강명실이 직접 중국에 나가 마음에 드는 자재들을 선택하도록 특별히 여권까지 발급해 주었습니다.
강 지배인은 매달 한번 꼴로 중국에 건너가 내부자재들을 사왔는데 한번은 사적건물 위생실(화장실)에 설치할 비데를 구입하여 종업원들의 웃음 꼴이 되었던 일화는 지금도 당시의 직원들 속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는 비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김정숙예술극장, 압록각 등 현지지도 단위나 초대소들에 있는 1호위생실에만 비데가 있으나 평시 아무도 들어 갈 수 없고 오직 김정은이 현지지도 할 때만 개방합니다.
이 건물은 김일성 일가에 충성심이 높았던 제대군관 당원 강명실 지배인에 의해 현대적인 건물로 재건축되었지만 강명실 자신은 2년 동안 현장을 감독하면서 후두암에 걸린 것도 모르고 헌신하다가 말기 암으로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압록각은 북한의 대외선전 인터넷매체인 '조선의 오늘'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오늘'은 압록각을 소개한 기사에서 "대홍단벌 감자농마로 만든 압록각 농마국수 맛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다"며 김정일이 생전에 3차례나 '압록각'을 찾아 농마국수를 먹고 정신이 번쩍 든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연건축면적 약 2천 530㎡인 20여 개의 식사실에서는 감자농마국수 외에도 명태회국수, 가오리회국수, 고기쟁반국수, 농마지짐, 언감자국수, 감자꽈배기, 감자토장국, 언감자떡 등 양강도 특산물인 감자로 만든 요리가 기본 메뉴입니다. 그러나 입록각은 감자농마국수 한 그릇에 북한 돈 6천원이라는 비싼 값으로 하여 돈 꽤나 있다는 부자들만 찾는 식당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주요 명절이나 기념일 때에만 전쟁노병이나 답사생들을 위한 국정가격 봉사가 있을 뿐입니다.
최근에는 돈 많고 권세 있는 집 자녀들이 압록각의 식사실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보며 결혼식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불평등이 빚은 현실, 압록각을 보면 그 내막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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