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계층만의 옥류수산물직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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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생각나는 것이 푸르른 바닷가, 시원한 해수욕장입니다. 북한에는 송도원이나 몽금포, 마전과 같은 해수욕장이 몇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평양에 문수물놀이장과 만경대물놀이장을 만들었다고 크게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시골 사람들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여기 남한에는 한강공원과 해운대를 비롯해 북한의 30배가 넘는 해수욕장들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남한에 온 이후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해수욕장에 찾아가 시원한 여름을 즐기는데 주변에 있는 해산물 식당들도 어찌 보면 해수욕장을 찾게 되는 원인인 듯싶습니다. 회나 탕, 볶음, 구이와 같은 바닷가 음식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때로는 수많은 식당 주변을 돌며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한참 동안 행복한 고민에 빠져드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성이다 언뜻 마음이 북한으로 달릴 때면 옥류수산물직매점이 먼저 떠오릅니다. 옥류수산물 직매점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입니다.

기왕 해산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늘은 평양에서 상위계층들만 드나들 수 있는 옥류수산물직매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옥류수산물직매점은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에 위치해 있는데 건물은 모두 4층입니다.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대륙붕이 넓게 발달한 동서해가 있어 수산자원이 풍부한 해양국가에 속합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난류와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류, 서해안 중심에 위치한 냉수 대에는 풍부한 바다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계절적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어종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수산 자원은 알려진 것만 6백여 종이며 그 중에서 정상적으로 잡는 어류만 명태, 조기, 멸치, 꽁치, 임연수어, 갈치를 비롯해 120여 종에 달합니다. 굳이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잉어, 붕어, 초어, 열목어와 산천어 같은 민물고기도 많습니다.

바닷가에서 잡아들이는 성게, 털게, 조개, 해삼을 비롯한 갑각류들도 해마다 수만 톤씩 잡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수산자원이 풍부함에도 가난한 북한 인민들은 큰 명절이나 생일날이 돼야 겨우 해산물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선박부족과 낡은 장비, 기술의 후진성, 기름부족으로 북한의 수산물 생산량이 해마다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잡아 올린 수산물 자원은 몇 푼 안 되는 외화를 벌어보려고 모두 중국이나 이웃 국가들에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민들은 이렇게 수산물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운데 중앙의 몇몇 고위간부들은 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해산물도 이들에겐 특별히 공급되고 있는데 이런 공급을 맡은 기관이 바로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소속 옥류수산물직매점이었습니다.

금수산의사당경리부가 맡아 운영하는 옥류수산물직매점은 여기가 북한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온갖 물고기와 조개류, 해조들이 항상 꽉 들어차 있으며 고위층 간부들이 수산물로 만든 진수성찬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식당까지 따로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급되는 물고기들은 전국 각지의 '9호작업반'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산물직매점의 대형 어항들에는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가 항상 넘쳐났습니다. 냉동 차량에 얼려서 보내진 물고기들은 저온 냉동 식 매장에 채워져 있습니다.

냉동장치가 구비된 지하 창고에서는 수백 톤의 물고기들을 종류별로 신선하게 보관하고 있는데 1층에 있는 판매대에서는 당, 행정, 사법기관과 군 고위간부의 가족들이 오면 '공급지령서'에 따라 공짜나 다름없이 물고기를 팔아주었습니다.

2층과 3층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로 만든 요리를 봉사하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옥류수산물직매점에 출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물요리 외에도 신선로, 전골 등 다른 특수 요리들과 메기탕, 자라탕과 같은 보양식들도 판매됐습니다.

수산물직매점 식당을 이용하려면 '예비표'가 있어야 하는데 '예비표'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봉사과에서 발급했습니다. 물고기 공급에도 엄격한 순위가 있었는데 노동당 정치국위원 이상 간부 가정에는 매일 수산물직매점의 공급 차가 일일이 돌며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직접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은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우선적으로 '예비표'가 나가고 나머지가 있으면 중앙기관과 주석부 산하 기업소 간부들에게 공급했습니다. 돈이 급한 일부 간부들은 이 '예비표'를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야매(암거래)로 팔기도 했습니다.

4층에는 특수요리실과 연회장이 있습니다. 평양 시민들마저 옥류수산물직매점은 권력 있는 고위층들을 위한 물고기전문상점 겸 식당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 이곳은 '성원 외 통행금지'라는 표지가 붙어있고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을 위한 수산물 요리가 개발되면 이곳에서 종합 평가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금수산의사당 내부에서 김일성에게 직접 보장되는 요리 중 새로 개발된 수산물요리는 이곳 직매 점에서 먼저 맛을 분석했습니다.

이런 걸 오감평가라고 했는데 오감은 시각과 미각, 후각, 청각, 촉각 등 다섯 가지의 감각으로 제품을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오감평가 회의가 열릴 때면 금수산의사당경리부장 신상균이 꼭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20여명 안팎의 오감분석 성원들이 신상균 부장과 해당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냉정하게 종합평가를 했습니다. 이런 오감분석은 룡성특수식료공장과 운곡목장, 태평술공장 등 금수산의사당경리부산하의 특제품 생산 공장들에서도 진행됐습니다.

분석성원들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서 선정한 대상들로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수산물과 관련된 제품, 만수무강연구 목적으로 해산물을 이용한 기능성식품과 요리는 전부 옥류수산물직매점에서 분석했습니다.

제가 맡았던 해조계란 연구의 최종 오감판정도 여기 옥류수산물직매점을 거쳤습니다. 해조계란은 1년간 미역이나 김, 듬북, 염주말 등 여러 가지 해조류를 사료에 섞어 닭과 오리에게 먹여 만들었는데 동물실험과 인체실험을 통과한 1991년 11월 신상균 부장의 참석 하에 옥류수산물직매점에서 평가됐습니다.

만청산연구원에서는 연구책임자인 저와 실장, 신영민부원장이 참가하였고 본부에서는 신상균부장과 과장급간부들이 참석했습니다. 3달만 있으면 김정일의 출생 50돌인 1992년 2월 16일이 되는데 그때에 올릴 선물로 해조계란도 선정되었습니다.

오감분석원들과 간부들, 연구원들까지 모두 40여 명이 종합평가에 참석했는데 4층 연회장의 긴 식탁에 앉은 매 사람들에게 오감분석지를 나눠주었습니다. 평가지표로 구수한 맛, 떫은 맛, 단맛, 쓴맛 등의 강도와 냄새, 색상을 종합했습니다.

옆 사람의 분석 지를 넘겨다보거나 서로 말을 할 수 없으며 끝나면 그 자리에서 평가표를 거두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제가 만든 제품이 평가되는 날이어서 그런지 구슬땀이 샘솟던 긴장한 그 순간이 그림처럼 뇌리에 새겨졌습니다.

오감평가 진행 후에 빠지지 않는 건 화려한 연회상입니다. 당시 80고령인 신상균 부장과 함께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우리가 연구개발한 식 자재로 만든 음식을 즐겼습니다. 연회상에서는 양주와 포도주, 맥주도 성 차도록 즐길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중간 급 공급대상 간부들을 '4호 공급대상', '65호 공급대상'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요리는 옥류수산물직매점 특별공급대상에 속한다 해도 중앙당 과장급 간부들은 꿈도 못 꿀 종류들 이었습니다.

고급어물로 유명한 넙치회와 해삼회는 물론 꿩고기 냉면 등 음식이 다양했는데 본인이 요리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신상균 부장은 82살의 고령임에도 술도 잘 마시고 다른 요리들을 먹고 난 뒤에 꼭 단고기국밥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북한에서 1년간 잡는 물고기 수확량은 80만 톤 정도입니다. 적은 량이지만 남한에 비해 인구가 절반밖에 안 되는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 한 해에 30kg씩 공급할 량입니다. 그런 해산물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요새 김정은이 인민들과 군인들에게 물고기를 먹인다면서 연어양어장이요, 자라양식장이요 부지런히 돌아 치는데 그런 건 이미 김정일이 실컷 해보다 줴버린 사업들입니다. 김정일이 싫어서 안 했겠습니까? 북한에선 절대로 안 되니 못한 것이겠죠.

그런데 발 품을 팔며 돌아 칠 시간이면 인민들의 운명이 달린 장마당이나 한번 시원히 돌아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인민의 지도자가 인민이 가는 길을 외면하면 인민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북한인민들에 대한 기대는 여전합니다. 간부들을 위한 천국과 인민을 위한 지옥이 함께 공존하는 북한도 자유의 노력으로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으며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