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라면 어디든 김일성 일가의 별장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유명한 온천들에도 김씨 일가를 위한 별장들이 있습니다. 양강도 보천군 내곡리 온수평에 위치한 내곡 온천은 일찍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관심이 높았던 곳입니다. 북한은 1980년부터 이곳 내곡 온천에 고위층 간부들과 일본 (조)총련의 간부들을 위해 호화로운 휴양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특권층들과 총련 간부들을 위한 내곡 온천과 그들의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 운영되던 온수평 아미산농장에 대하여 말씀드리려합니다. 북한 전역에는 이미 알려진 온천만 해도 100여 개가 넘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피부병과 위장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치료에 온천수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481년에 출간된 지리도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을 보면 당시의 온천들과 그 특징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대부분의 온천들이 오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북한도 광물질이 풍부한 온천의 주변들은 문화휴양지로 개발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내곡 온천은 북한에서 몇 개 안되는 특별한 온천입니다. 내곡 온천은 양강도 보천군 내곡리 온수평에 위치해 있으며 1980년 1월, 북한 국가자연보호연맹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3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내곡 온천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사냥꾼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천군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1926년에 처음으로 내곡리 온수평에 목조건물을 세우고 목욕탕을 지어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이곳에 요양시설을 짓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차단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곡 온천은 지금까지 모두 9개의 용출구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5곳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온천의 물 온도는 지점과 계절에 따라 차이가 많은데 보통 45도에서 60도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내곡 온천은 라돈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 외 수소탄소, 나트륨, 마그네슘 이온이 함유되고 광물질은 리터 당 0.6g인데 유황성분이 많습니다. 수소이온 농도인 PH는 7.8로 약한 알칼리성을 띠고 있는데 유황성분이 많이 섞여서인지 온천수는 탁하고 유황냄새가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곡 온천은 만성위염, 당뇨병, 비만, 만성기관지염, 만성후두염, 신경통, 습진, 피부병, 탈모에 뚜렷한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류마치스성 관절염을 비롯하여 운동계통 질병, 통풍증, 좌골신경통, 말초신경계통 질병에도 효과가 높았습니다.
백두산을 답사하는 출발점인 양강도 혜산시에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있는데 이곳에서 보천군에 들리면 내곡 온천으로 이어진 도로가 따로 있습니다. 내곡 온천은 백두산을 찾는 고위간부들과 가족들, 재일동포, 총련 간부들이 거치는 곳입니다. 내곡리 온수평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해발 1,200m의 곤장덕과 려수덕이 성처럼 솟아 있고 골짜기를 따라 가림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이곳에는 대중요양시설들과 휴양시설들이 일떠서기 시작해 근로자들의 명승지로 소문났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곳에는 협궤를 이용한 열차가 달렸는데 1994년 홍수로 철길이 파괴된 후 다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이곳 대중요양시설들과 휴양시설들도 자취를 감추었는데 아직 복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일반목욕탕 뿐 아니라 간부들을 위한 온천목욕탕이 건설되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재일동포들을 위한 휴양시설인 총련여관도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이곳에 북한의 고위층들과 총련 간부들을 위한 휴양시설들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내곡 온천 총련여관과 온수평 아미산농장은 온수역을 가운데 두고 가림천을 따라 약 2.5k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온수평 아미산농장에서 재배한 고급식자재를 쉽게 휴양각에 공급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70년대 김일성, 김정일은 내곡 온천에 자신들을 위한 별장을 지으려고 계획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곡 온천이 려수덕과 곤장덕의 좁은 골짜기에 있어 별장을 지을 부지가 없는데다 호위 사업도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내곡 온천을 외면해야 할 다른 구실도 있었습니다. 내곡 온천은 북한에 있는 주을 온천이나 룡강 온천, 금강산 온천처럼 주민들 속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한의 고위층 간부들과 총련 간부들에겐 아주 유명했습니다. 피부병에 특효가 높은 이곳 내곡 온천엔 해방 전 문둥병(한센병)을 앓는 일본인들을 격리하는 시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내곡 온천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 일본인 문등병 격리시설이 있었다는 이유였습니다.
해방 후 북한은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문둥병 격리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다가 6.25 전쟁이 끝난 후 문둥병 환자들을 모두 황해북도 은률군에 속한 섬인 초도로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대중목욕탕과 피부병 전문 요양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내곡 온천에 자신들을 위한 별장을 짓지 못하는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곳에 있는 대중 휴양시설과 목욕탕과는 별도로 북한의 고위층 가족들과 일본 총련의 간부들을 위한 숙식시설, 휴양시설들도 건설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특히 김일성은 1986년 총련 일군들과의 사업을 잘 할 데 대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위원들과의 담화에서 내곡 온천에 총련 간부들을 위한 특각과 총련 산하 재일동포들을 위한 여관을 빨리 완공하도록 관련부문 일꾼들을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재일동포들을 총련 조직에 철저히 묶어세우려면 재일동포들의 북한 방문을 많이 조직하고 재일동포들을 위한 문화시설들을 잘 갖추어야 한다며 보천군 내곡리 온수평을 꼭 짚어서 총련 여관과 휴양시설을 지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생전에 김일성은 이곳에 들려 목욕은 하지 않았지만 감자농마국수는 빼놓지 않고 먹고 갔습니다. 온수평엔 1980년대 '보배어머니'라고 부르던 유명한 요리사가 있었는데 김일성으로부터 국수 맛이 좋다는 치하를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김일성의 접견자인 '보배할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 당 간부와 사법간부로 키웠습니다. 김일성에게 늘 시원한 감자농마국수를 대접하던 '보배할머니'는 이후 '고난의 행군'을 목격하면서 폐허로 변하는 온수평을 묵묵히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내곡 온천에서 인민의 휴양시설들을 흔적도 남지 않게 지워버렸습니다. 고위 특권층들과 총련 간부들을 위한 휴양시설들만 휑하게 남은 내곡 온천의 모습을 보며 '보배할머니'는 무엇이라 탄식했을지 의문입니다. '보배할머니'는 '고난의 행군' 이후 양강도 보안국(경찰청) 교통처에서 간부로 있던 아들의 사망소식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얼마 못 버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일제는 우리 인민들을 통제했지만 자국민들에겐 내곡 온천을 개방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그런 내곡 온천을 북한의 인민들에게도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휴양소가 있던 자리는 김정일 시대 열대메기를 기른다며 양어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유황성분이 많은 온천수 속에서 열대메기가 살아 낼 리 있겠습니까? '김씨 일가의 실체' 지금까지 진행에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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