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초월 주석부 공급소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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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평양의 일반 주민들은 주석궁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을 주석부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금수산의사당경리부 공급소를 주석부 공급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김일성 집권 시기 주석부 공급소로 부르던 금수산의사당경리부 공급소는 북조선 인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대한 물자공급체계를 가지고 운영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중앙기관 간부들과 평양시의 일부 주민들만이 알고 있었을 뿐 흑막 속에 가려져 있던 주석부공급소의 실체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특수식품인 8, 9호물자들을 다루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존재하던 주석부 공급소는 내부 종업원들을 위한 공급소를 가리키는데 위치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동에 있었습니다.

주석부공급소 물자공급 대상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250여명의 본부 성원들과 만청산연구원 연구사 130여명이었습니다. 물자공급은 한 달에 네 번씩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공급물자는 일주일 동안 먹을 육류와 수산물, 과일과 야채, 술과 맥주, 담배, 사이다 등 수십 가지 종류의 8, 9호 제품들로 일반 주민들은 구경하기조차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일반 상점들에서도 살 수 있었던 된장과 소금도 종업원들에게 따로 공급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을 이루던 양정 및 상업관리체계는 배급제와 구매권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구매권제도가 서서히 허물어지다가 1990년대에는 지방을 시작으로 배급제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나마 양정과 상업관리 체계가 원활히 가동됐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배급제와 구매권 제는 월 공급방식이었습니다. 공급되는 가짓수도 된장이나 간장, 소금이 전부였고 어쩌다 명절이면 육류나 수산물 식용유를 조금씩 주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간부들에 한해서는 그 공급 체계가 중앙당과 지방당의 고위 간부들, 상좌 급 이상의 상급군관들까지 등급에 따라 1일 공급대상, 3일 공급대상, 주 공급대상과 월 공급대상으로 분류되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과 정치국위원들, 부장들과 내각 총리, 각 도당책임비서들과 군 단장급 가족들은 1일 공급대상에 속합니다. 1일 공급대상은 중앙당재정경리부나 해당 공급기관에서 직접 가정집을 찾아 다니며 물자를 공급해 줍니다.

1일 공급대상자들은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해 개별적으로 공급품의 가짓수를 변경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까지 반영된 신선한 식품들이 매일 새벽시간이면 냉동차에 실려 가족들에게 직접 전달되었습니다.

중앙당 부부장들과 과장, 내각 부총리, 항일투사가족들은 3일 공급대상에 속했습니다. 공급날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인데 이들 역시 해당부서에서 매 가정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공급물자를 보장했습니다.

그 외 3천여 명에 이르는 중앙당부원들과 각 도당의 과장급 이상, 상좌 급 이상의 군 지휘관들은 주 공급 대상으로 가족들이 직접 공급소에 가서 물자를 받아와야 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체제는 이렇게 간부들 까지 차별화 해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지어 고위간부들의 특별공급을 위해 국제운송업체인 티엔티(TNT)까지 이용했습니다. 평양시에서 영어로 티엔티라고 씌어진 1톤 적재의 콘테나(컨테이너) 냉동차들을 가끔씩 볼 수 있는데 이 차량들이 국제운송 업체 티엔티 소속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국제운송업체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호화 요리를 비행기로 날라다 즉각적으로 먹어 치우는 김정일의 식습관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김정일의 주변 특권층들을 위해서도 국제 운송업체가 동원됐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인민들은 옥수수 한줌이 없어 굶어 죽어갈 때 국내에서 나오는 8, 9호 제품도 모자라 외국에서까지 희귀한 식품들과 고급 술, 열대과일들을 비행기로 날라다 먹은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북한이 천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석부공급소에서도 직급에 따라 신상균 부장은 1일 공급대상이었고, 책임비서와 부부장들은 3일 공급대상이었습니다. 나머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본부간부들과 만청산연구원 연구사들은 주 공급대상이었습니다.

그때 주 공급대상이었던 제가 받은 공급물자들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 육류와 명태, 가자미, 조개와 같은 수산물, 9호 과수 반에서 특별히 키운 사과와 배, 복숭아, 참외와 같은 과일류가 있었습니다.

조미료만 해도 고춧가루와 맛내기, 기름, 식초, 사탕가루(설탕)와 삼백술, 룡성맥주와 같은 주류들, '건설', '꿀벌'과 같은 고급 여과담배가 있었습니다. 남새(채소)류는 가지, 오이, 양배추, 파, 사자고추를 비롯해 제철남새와 온실남새가 공급됐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한 가족이 공급받는 수량은 큰 지함(종이박스)으로 3~4개정도였습니다. 육류는 격주로 운곡 목장에서 생산된 대리석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2kg, 수산물은 냉동생물낙지와 냉동 조개살, 명태, 가자미를 비롯해 3k, 과일류는 5kg이었습니다.

삼백술과 태평술, 룡성소주 등 주류는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에 3병씩, 룡성맥주는 첫째 주와 셋째 주에 5병씩 공급하였습니다. 또 매주 룡성특수식료공장에서 생산한 배단물, 사이다, 딸기사탕, 살구씨향 과자, 초코레트 등 음료수와 당과류를 2kg씩 공급하였습니다.

담배는 한 달에 30곽으로 매달 마지막 주 공급 날에 주었는데 보통 '건설'과 '꿀벌' 상표였고 설날과 김정일 생일이 있는 2월과 김일성 생일이 있는 4월에는 '락원' 담배와 '삼선암' 담배를 5곽 정도 추가로 주었습니다.

공급소에서는 물자를 타가지고 가는 가족들에게 이동 중 평양시민들이 볼 수 없게 지함(박스)이나 바퀴 달린 트렁크(캐리어)로 운반하도록 강조하였습니다. 공급물자는 일정한 돈을 주고 사는 형식이었는데 가격은 국정가격으로 매우 저렴했습니다.

장마당에 내다 팔면 국정가격의 20배까지 돈을 받을 수 있어 공급물자를 되팔아 외화상점에 출입하는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1990년 초, 국정가격으로 '건설' 담배 한 곽은 1원 70전이었는데 장마당에서는 25원, 외화상점에서는 2달러였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51원을 내고 공급받은 30곽의 담배들을 곽 당 23원에 되팔아 북한 돈 690원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 월급이 140원이었는데 결국 담배를 팔면 5달 동안 일해서 받는 것만큼의 돈을 한꺼번에 벌 수 있었습니다.

소고기도 정육으로 kg당 1원 60전이었는데 장마당에서 야매(암시장 가격)로 팔면 35원에서 40원 정도 였습니다. 권력을 악용해 불법적으로 끌어들이는 재산을 내놓고도 북한 간부들은 순수 공급물자를 되팔아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공급물자를 통해서도 일반 주민들과 간부들의 생활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양시 룡성구역 중이동에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의 평양중이목장이 있습니다.

목장은 돼지와 닭, 개, 황소개구리를 사육하지만 작업반 이외에도 주석부공급소에 보장하는 남새작업반이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간부들과 만청산연구원 연구사들이 '금요 로동'으로 이곳에 나가 김매기를 하였습니다.

말이 동원이지 오전 10시가 넘어서 도착하여 1시간 일하는 시늉을 하고는 점심에 룡성맥주를 마시면서 목장에서 제공하는 고기요리와 농장에서 금방 수확한 남새로 만든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는 오후에 한 두어 시간 일하는 '건강운동'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남새들은 오이, 가지, 사자고추, 쑥갓, 방울토마토, 미나리, 부루 등 다양합니다. 이 남새들이 주석부공급소를 통해 매주 20kg씩 종업원들에게 공급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죽은 1994년 7월부터 10월까지 일체 간부공급이 중단됐습니다.

김일성이 죽은 후 100일 동안의 애도기간이 정해졌는데 그때 간부공급을 하다가 자칫 김정일의 눈에 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공급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애도기간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부 공급은 재개됐습니다.

사실 전국에 분포된 특제품들은 김일성 일가가 먹고도 산처럼 남는데 그것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김일성이 죽자 김정일의 지시로 주석궁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금수산 태양궁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토록 어렵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재건축하느라 8억 9천여만 달러를 들였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2012년부터 '금수산기념궁전'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노동당창건 70돌을 앞두고 올해 또 다시 수억 만금을 들여 '금수산태양궁전'을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따지면 능력 없는 지도자일수록 무언가 치적거리를 만들어 내기에 분주합니다. 그렇게라도 인민을 미혹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부들만 배를 불리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인민을 기만하기 위해 수많은 건설에 억만금을 쏟아 붓는 김정은 정권,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창조물'을 일떠세운다며 요란을 피운다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김일성, 김정일이 다시 등장하기라도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