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북한의 기초식품공장이나 일부 곡산공장들에서 술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주민들의 수요는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몰래 집에서 술을 제조하는데 이것을 밀주라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 정권은 식량낭비를 막는다는 구실로 밀주를 엄격히 단속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한잔의 술로 타는 가슴을 달랠 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김정일 자신은 값비싼 양주와 프랑스산 포도주를 물처럼 퍼 마셨습니다.
김정일의 일본인 전용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쓴 책을 읽으면 그러한 사실들이 낱낱이 고발되어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술을 좋아했던 김일성과 김정일은 닮아서인지 김정은도 세계의 유명하다는 술은 다 사다 마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을 통해 김정은이 몰래 사들이는 프랑스나 스위스의 값 비싼 술들을 보면 사정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애국자가 되려면 국산을 애용해야 한다"고 떠드는 김정은이 왜 특제품으로 만든 국산 주류들을 외면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계포도주공장이나 혜산들쭉가공주공장을 비롯해 북한의 지역마다 있는 술 공장들에는 8호작업반이라는 이름의 특제품 생산 작업반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술은 김일성 일가와 몇 명 안 되는 북한의 특권층들만 즐길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의 태평술공장과 룡성특수식료공장들에서 제조한 술들은 유명했습니다. 태평술공장은 평안남도 대동군 대보산의 남동쪽 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19세기에 전문적으로 술을 생산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술맛은 물맛'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술의 맛을 제대로 살리려면 그만큼 물이 좋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태평술공장에서 만든 술이 그토록 유명한 것은 공장구내에 있는 특이한 수질의 '태평샘' 물맛에서 비롯됐습니다.
평안남도 강서군의 무학산과 대동군의 대보산은 하나의 산맥처럼 동서로 길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학산의 남쪽 자락에 있는 샘물이 그 유명한 '강서약수'이고 대보산의 남쪽자락에서 있는 샘물은 '태평샘'입니다.
'태평샘'은 '강서약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북한에서 제일 좋은 샘물입니다. 태평술공장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술로는 대평술과 삼백술, 뱀술입니다. 때에 따라 각종 약술도 새롭게 개발해 김일성 일가의 기름진 밥상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산삼주, 가시오갈피술, 영지버섯술, 구기자술, 오미자술, 진달래꽃술 등 특이한 약효성분이 있는 술들도 주로 태평술공장에서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그 중 주정 30도의 삼백술은 개성고려인삼이 들어 있어 기호성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줍니다.
지금은 북한의 장마당들에 가짜 삼백술이 넘쳐나고 있지만 진품 삼백술은 제노라하는 간부들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힘있는 간부들도 군침을 삼키는 삼백술을 김일성과 김정일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시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주요 명절이 되면 광부들과 탄부들, 그리고 노력혁신자로 뽑힌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삼백술을 공급했습니다. 이 삼백술은 중국에서 수입한 식용 에타놀을 신덕샘물로 희석한 뒤 인삼정액을 넣어 만든 가짜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술을 김일성과 김정일은 선물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과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이 되면 선물전달 행사장을 요란하게 꾸려놓고 가짜 삼백술이 든 선물상자를 광부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가짜라는 내막도 모르고 눈물이 글썽해 '장군님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던 불쌍한 광부들과 탄부들, 모범 노동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히 떠오릅니다.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이 개성인삼 한 뿌리를 사먹자면 한 달을 벌어도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에 벌써 중국에 인삼을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임원경제지'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말려서 가루 낸 인삼을 누룩과 찹쌀로 빚어 술을 담가 끓여 마셨습니다.
지금은 인삼을 뿌리째 술에 침지하였다가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삼백술은 인삼에서 정액을 추출하여 물에 타는 형식으로 제조했습니다. 하기에 인삼향이 진한 삼백술은 가짜라고 해도 노동자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김정일 시대 월급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웠고 배급도 주지 않던 시절 지하 막장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하던 광부들에게 선물이라며 가짜 삼백술 한 병씩 공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삼백술이 바로 이 태평술공장에서 생산되었습니다.
2월 16일이 되기 한 달 전부터 태평술공장에서 생산한 삼백술은 화물열차에 실려 전국 각지에 있는 광산과 탄광에 보내졌습니다.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소속 만수무강연구소 연구원들도 이때만은 술 상자들을 옮기는 작업에 동원돼야 했습니다.
태평술공장에서 삼백술은 두 가지로 생산했는데 주정이 25도인 것은 그냥 일반 술병에 넣어 삼백술이라는 상표를 붙였고 주정이 40도인 것은 750밀리리터의 큰 병에 넣어 상표도 '태평곡주'라고 바뀌어 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태평술공장에서 만든 주류들은 행사용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 '태평곡주'는 특별히 고급술로 분류되어 중앙의 고위급간부들이나 모범 노동자들에게 줄 명절용 선물지함에 포장됐습니다.
태평술공장에서 생산되는 술 가운데는 뱀술도 있는데 병속에 들어간 뱀을 보면 혐오감이 일어나겠건만 이 술은 북한에서 매우 귀한 술이었습니다. 주로 외국인들과 해외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동포들의 연회식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태평술공장이 더 유명한 것은 정갈하고 맛좋은 샘물과 함께 옛날 광산으로 파헤쳐진 갱도들이 있어서였습니다. 대보산 남쪽 산기슭으로 뚫어져 있는 갱도의 길이는 무려 수 백 미터에 달하며 이 동굴은 술 보관 창고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동굴입구는 8호 안전부와 공장보위대가 24시간 무장보초로 굳건히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이 동굴에는 과거 일본인들이 저장한 술도 있었는데 40여년도 넘은 이런 술들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 외에는 그 누구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년대 별로 저장된 술들은 인민을 착취한 역사의 증거로 연대를 갱신하면서 수십, 수백 년을 저장기간으로 계속 쌓여가고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화려한 만년장수를 꿈꾸며 저장해 온 술들은 이젠 김정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대문 두 짝으로 겉으로는 협소해 보이는 동굴에 들어가면 축구장 절반규모의 중앙동굴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곁가지 굴들이 다양한 공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공간의 술 보관 창고들에는 트럭이나 지게차도 드나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이곳 술 저장고 동굴의 일부에서 특수한 버섯을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버섯도 재배하고, 술도 저장하고, 인민들이 누릴 수 없는 온갖 재물들을 아무리 독차지하고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곳에는 유전적으로 모질다고 할 만큼 짧은 생을 마감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방부 처리된 채 누워있습니다. 벌써부터 비대한 몸을 이기지 못해 발목에 이상이 생긴 김정은에겐 어떤 자리가 차례지겠는지 궁금해집니다.
왜냐면 북한에서 독재정권이 끝장나는 그날이 되면 금수산태양궁전도 용광로에 버려진 쇳조각처럼 사라져 버릴 테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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