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지난 시간들을 통해 저는 김일성 일가를 위한 룡성특수식료 공장과 태평 술 공장, 운곡목장을 비롯해 '만수무강 연구소' 부속기관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혔습니다.
봉건왕조국가인 북한은 세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신분제도로 계급과 계층을 갈라놓고 먹는 것부터 살아가는 방식까지 따로 규정했습니다. 북한에서 지금 문제로 떠오른 빈부격차도 이런 계급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은 죄지은 사람을 격리 수용하는 감옥마저도 신분차별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평양에는 '형산관리과'라는 교화소가 있습니다. 형산관리과는 평양에 있는 노동교화소로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한의 고위간부들에겐 잘 알려진 특수교화소입니다.
이 특수교화소는 서 평양 역에서 도로로 9km정도 떨어진 형제산구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평양시 강동군 제4교화소에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7관리과가 있습니다. 7관리과는 형제산구역 형산리에 있다고 하여 '형산관리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유물인 정치범관리소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북한뿐입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사형 제를 폐지하는 추세이지만 공개처형의 방법으로 인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권력을 유지하는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간부들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숙청, 인민들에 대한 잔인한 처형방식입니다.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은 정치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인정도 양보도 없습니다.
북한에서 정치범은 아무런 재판도 없이 수용소에 끌려가지만 인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경제 범죄는 의외로 관대합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에서 주민들의 경제적 범죄는 대부분 가난한 생계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한 고위간부들의 경제적 범죄는 인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일가는 대대로 측근 하수인들이 저지르는 경제적 범죄에 관대했습니다.
북한의 어느 곳이나 다 감옥이라 할 수 있지만 특별히 경제범들을 가두어둔 교화(교도)소는 강동 4교화소, 원산 8교화소, 함흥 9교화소, 증산의 11교화소들입니다. 그 외 매 시, 군들에 '노동단련대'라는 일반 범죄 수감 소가 있습니다.
이런 일반 교화소들과는 달리 특수교화소도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서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동 4교화소 소속 형산관리과가 바로 그런 곳인데 주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들에 보여주기 위해 만든 특별교화소입니다.
여기에 갇힌 수감자들은 모두 북한에서 고위직 간부를 하였거나 인민군에서 고급 장령으로 복무하던 자들 입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감싸고돌던 이런 상위급 간부들은 죄를 범해도 이런 감옥에서 일반 주민들 보다 더 편히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북한에 와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도 형산 특별교화소에 수감됩니다. 80년대 이전 까지만 해도 북한은 국제사회에 잔인한 인권유린 실태를 숨기기 위해 보여 주기식의 전시용 특별교화소들을 여러 곳에 지었습니다.
덕원의 8교화소 7관리과를 비롯해 평성이나 사리 원에도 이런 특별교화소인 7관리과들이 있었는데 김일성이 사망하고 난 뒤 김정일이 다른 특별교화소들을 다 없애고 평양시 형제산구역 형산리에 있는 시설만 남겨 두었습니다.
형산 특별관리과는 일반교화소와 달리 감방에 침실과 화장실을 별도로 갖춰 놓고 죄수들이 별장생활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위간부출신이 아니더라도 인민보안 부 교화 국 간부들이나 특권층의 자식들과 친척들도 이곳에 수용합니다.
김일성 일가의 식탁에 오르는 먹을 거리를 개발하던 만수무강연구소 연구사들도 잘못을 저지르면 비밀 보장을 위해 이곳 특별관리과에 구금했습니다. 만청산 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저도 이곳에서 축산 반 반장으로 3년동안 수감돼 있었습니다.
김일성의 1990년 1월 8일 방침으로 북한은 아편전문농장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주석부가 농장들을 직접 관리하면서 금수산 의사당 경리부에 소속된 종업원들도 3개월씩 교대로 아편을 재배하고 아편 진을 따는 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저도 아편작업에 동원됐다가 평양으로 올라오면서 가족들에게 보내는 친구의 소포 물을 부탁 받았는데 그 속에 폭발물이 들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훗날 친구의 처벌이 걱정돼 당 조직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그로 하여 연구원에서 해고되었습니다.
단순한 해고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현 인민보안부의 특수 기구인 8호안전부에 갇혀 가혹한 심문을 거친 뒤 3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 뒤 강동 4교화소 산하 특별교화소인 형산관리과에 수감되게 되었습니다.
다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저의 교화생활은 사실상 사법기관의 모략이었습니다. 처음엔 평안남도 증산군 11교화소 5관리과 축산 반에서 '수의보조'로 한 달간 수감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있는 형산관리과로 끌고 갔습니다.
증산교화소는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교화소인데 농사를 해서 북한보안원(경찰)들에게 공급하는 쌀과 강냉이, 그리고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농축산생산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감방은 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이고 온돌도 없었습니다.
변소도 칸막이도 없이 침실 내부에 있었는데 당시가 한창 북한 전역에 콜레라가 확산되던 시기였습니다. 한방에서 수십 명씩 생활을 했는데 콜레라에 걸려 시체가 무더기로 실려 나가는 말 그대로 짐승들도 낯을 붉힐 지옥이었습니다.
일반 교화소인 증산 11교화소와는 달리 형산관리과는 특별교화소로서 수감자들의 생활도 하늘과 땅 차이었습니다. 여성이 한 명도 없고 남자들만 수감되어 있었는데 머리도 2~3cm 정도 기를 수 있었고 가족들이 자주 면회도 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질이나 량 적으로 음식이 적당해 이곳에 수감된 죄수들은 하나같이 영양 상태들이 좋았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식탁에 오르는 육류를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개발하던 저의 전문성이 특수교도소의 가축생산을 위한 일로 변경된 셈이었습니다.
이 형산관리과에는 내부청소를 맡은 영선 반과 축산 반, 남새 반, 농산 반, 차수리 반이 있었는데 수감자는 항시적으로 100여명에서 150여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인민보안 부(경찰) 간부들의 먹을 거리 생산과 보안 성 차 수리를 전문으로 했습니다.
제가 반장을 맡고 있던 축산 반은 돼지도 모돈과 비유돈으로 수백 마리에 달했고 양과 염소, 닭, 메추리, 게사니(거위)도 수 백마리 씩 사육을 했습니다. 인민보안 부 간부들의 공급용으로 한 주에 가축을 2번 이상씩 도살해야 했습니다.
도살을 할 때마다 고기를 먹을 수 있어 밖에서 사는 일반 사람들보다 먹는 걱정은 더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가끔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수감됐을 때에는 중국인 3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선 반에서 식당조리를 했습니다.
그 중 중국인 왕국유는 북한에서 금 장사를 하다가 잡혀 수감되었다고 했는데 주말에는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면회를 와서 가공된 돼지발족(족발)과 월병을 주었습니다. 왕국유의 덕에 돼지발족과 월병을 얻어먹던 일들이 눈에 선합니다.
다른 교화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토요일과 일요일에 텔레비젼을 보여주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1997년에는 외국인들이 교화소를 구경하러 온다면서 연한 하늘색의 수감 복을 내주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감방에서 쉬도록 하였는데 특히 서양인들이 오면 웃음을 지으면서 생활에서 아무런 애로나 불편이 없다는 말을 할 데 대해 거듭 강요했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강요에 따라야 했습니다.
자칫 관리과 간부들의 말을 안 따르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북한에는 사람이 살만한 감옥도 있습니다. 다만 일반 주민들은 아무리 가벼운 죄를 졌다고 해도 이런 감옥생활을 체험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보니 어느 나라의 감옥이나 북한에서 고위급들과 외국인들만 수감될 수 있는 강동 4교화소 7관리과인 형산 특별교화소보다 나았습니다. 감옥에 상점도 있고 도서실도 있고, 지어 감방에서 전문교육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형산 특별교화소가 생각날 때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증오심이 더해갑니다. 힘없는 백성들도 죄를 지으면 최소한 형산 특별교화소와 같은 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권이 보장된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대 통치자들의 횡포를 뛰어넘는 김정은 정권에서 순진한 인민들은 생계를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짐승들도 낯을 붉힐 감옥에서 무참히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비록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북한에 사는 인민들은 누구나 인권 유린이란 측면에서 보면 수감된 죄수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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