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까치

0:00 / 0:00

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마이크를 잡은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여러분들은 깨까치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김일성 일가가 즐겨먹는 날짐승들 중엔 깨까치도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어치인데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는 산까치 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운곡지구에서 깨까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 어치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까치는 사람이 사는 가까이에서 살지만 어치는 예민하고 급한 성격 때문에 깊은 산속에서만 서식합니다.

크기가 까치보다 작지만 여러 가지 색깔들로 조화되어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운 새입니다. 잡식성 조류로 먹이는 까치처럼 벌레나 새알, 도마뱀부터 벼, 옥수수 등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도토리를 즐겨 먹기에 참나무가 자라는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치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데 먹이를 숨겨 두는 묘한 습성이 있습니다. 조류들 중에서 매우 영리한 새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데 다른 새나 고양이의 울음소리까지 교묘하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번식은 일 년에 한번, 보통 4월 하순부터 6월 하순 사이에 4~8개의 알을 낳습니다. 주로 북위 40도 이북에서 사는 터새(텃새)이지만 일부는 철새처럼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1980년대 중반 김일성은 어치고기가 맛있다고 수하 간부들에게 말했습니다. 빨치산 시절 김일성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어치를 잡아먹었다는 설도 있지만 중국의 모택동 주석을 찾아 갔다가 어치고기를 맛보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하튼 김일성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니 만수무강연구소에 어치를 기를 데 대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제는 대부분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소속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연구원에 내려졌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은 김일성 일가의 건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능력 있는 과학자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꿩, 산비둘기, 어치를 비롯한 야생조류의 사육방법 연구도 만청산연구원이 모두 도맡아야 했습니다.

가금류와 야생조류에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근육수축 물질이 많아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닭이나 오리, 게사니와 같이 일반 가정들에서 기르는 가금류보다 꿩, 어치, 기러기와 같은 야생조류에 훨씬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가금류와 야생조류는 지방질이 많은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사람의 건강에 휠씬 좋기 때문에 김일성 일가의 밥상에 무조건 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생조류는 일반 가금류에 비해 성질이 매우 예민하기에 인공 사육이 쉽지 않습니다.

클락(크낙)새가 한반도에서 멸종한 사례만 놓고 봐도 야생조류 사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하고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야생조류 사육을 위해 다른 나라들에 나가 있는 대사관들에도 연구 자료를 보낼 데 대한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인공사육으로 어치를 키우는 방법도 그랬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는 외국유학까지 다녀와 실력이 뛰어난 조류학자들로 어치 인공사육 연구팀을 조직했습니다. 기본 목적은 어치의 사육과 함께 인공부화를 반드시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고 깊은 산속에서 살던 어치의 인공 사육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치는 워낙 성질이 급하고 예민해 작은 우리에 넣어 기를 수 없을 뿐 아니라 큰 그물로 둘러막힌 공간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버렸습니다.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넓은 그물 장에 숲을 조성하면서 어치가 좋아하는 사육환경을 조성하기까지 어느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지시이니 억만금을 쏟아 부어서라도 어치의 사육은 기어이 완성을 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잡아온 어치들이 주변 환경에 무뎌지도록 신경과민성(항스트레스성) 치료제를 먹여 온순하게 길들이는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그 중에서 온순해진 어치들을 따로 골라내 거듭되는 알 낳기와 수정을 시도했습니다.

외국의 대사관들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참고로 하면서 사육방법을 연구하고, 사육장까지 만들기에는 실로 막대한 자금이 들었습니다. 인공사육을 위한 연구가 10년이 넘게 진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어려움은 상상이 가고 남을 것입니다.

그토록 애를 썼건만 만수무강연구소의 생물학자들은 어치의 인공사육만 성공했을 뿐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알 낳이와 인공수정은 끝내 포기해야 했습니다. 동물원에서 기르는 거북이와 상어가 새끼를 못 낳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어치사육에는 성공했지만 드러내 놓고 기르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치의 사육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의 비밀이 알려지면 인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밀보장을 위해 운곡지구에서 몰래 어치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해 산까치로도 불리던 어치를 깨까치라고 이름까지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간고한 연구 끝에 사육된 깨까치는 김일성으로부터 요리 맛이 일품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아냈습니다.

김정일 역시 맛도 그래, 건강에도 비길 데 없는 깨까치의 요리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았습니다. 하지만 깨까치 한 마리에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고기의 량은 기껏해야 150그램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깨까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량이 너무 작다보니 김일성 일가가 요구하는 대로 매일 고기를 공급하는 것도 간단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 운곡목장에 깨까치만 전문 기르는 작업반이 새로 조직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작업반 성원들이 평안남북도와 자강도의 깊은 산속에 정기적으로 파견되어 살아 있는 어치를 잡아 와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어치는 운곡목장에 옮겨지는 순간부터 깨까치로 이름을 바꿔 불렀습니다.

산속에서 잡아 온 깨까치는 크기에 따라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사육되다가 김일성과 김정일이 요구하면 임의로 요리가 되어 밥상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나마 1990년대 초까지는 살아있는 어치를 잡아 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이후 나라의 산림이 황폐화 되면서 북한에 그 많던 어치들도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살아있는 어치만 잡아들여야 할 운곡지구 사냥조의 부담도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어치 잡이에 동원되었던 사냥조 성원들속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11일, 평양 중앙양묘장을 찾은 김정은은 "산림복원을 자연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자"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북한 산림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해 더욱 황폐화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운곡지구에서 어치를 비롯해 야생 조류와 동물들을 잡아들이는 일도 더욱 힘들게 됐습니다. 그러다나니 사고는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어치 잡이에 나섰던 운곡지구 사냥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고 목숨을 잃었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 통일이 되면 김일성 일가와 북한 특권층들을 위해 만들어진 운곡지구의 비밀도 모두 폭로될 것입니다.

오늘도 황폐화된 산림 속을 주름잡으며 운곡지구의 사냥조 성원들은 어치 잡이에 나섰을 것입니다. 그렇게 잡아들인 어치가 운곡지구에서 깨까치로 둔갑하여 김정은의 화려한 밥상에 수시로 오르고 있음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인민생활 향상을 그토록 외치는 김정은이 자신의 밥상을 위해 희생되는 인민들, 만수무강연구소 과학자들과 운곡지구 사냥조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