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을 위한 룡성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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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동에 있는 룡성특수식료공장에서 생산하여 김정은과 고위간부들에게 정상공급되고 있는 각종 당과류와 과자, 그리고 룡성맥주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 공장에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새로 개발하여 특권층들에게만 제공되는 룡성소주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북한에서는 태평술, 삼백술, 감홍로, 인풍술, 백두산들쭉술, 평양소주 등 여러 가지 술들이 많아 생산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공장술을 구하기 어려워 개인이 만든 위생상태가 불결한 술들을 마실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개인의 밀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공장에서 만든 술만 판매하도록 법적 규제가 강하고 상점에는 다양한 한국산 소주들이 아주 눅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술은 증류식과 희석식 술로 갈라볼 수 있습니다. 삼백술이나 평양소주는 중국에서 식용알콜을 수입해다가 인삼이나 인조향을 첨가해 희석한 술이지만 룡성소주는 도토리와 찹쌀을 원료로 발효하여 만든 술입니다. 룡성소주는 과학성과 위생학적인 기준을 철저히 엄수하여 룡성특수식료공장에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만든 술이기에 간부들마저도 구해서 마시기 힘듭니다.

지구상에 처음 술이 등장한 것은 상당히 오래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원전 5,000년 전에 애급에서 포도주를 빚었다고 자료가 있습니다. 이것은 술이 7천년 전부터 인간의 기호식품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술에 대하여 처음으로 기록한 책인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천체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을 초대하여 취하도록 술을 마시게 하니, 모두 놀라 달아났으나 큰 딸 유화가 해모수에게 잡혀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고 씌어져있습니다.

옛날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누룩을 잡아서 술을 빚었는데 처음에는 막걸리나 청주를 마시다가 점차 소주를 먹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증류법이 더욱 발달하여 토고리, 동고리, 쇠고리 같은 소줏고리(소주를 고는 오지그릇)가 생겼습니다. 옛 기록집인 『지봉유설』에 따르면 "소주를 약으로 쓸 뿐 함부로 먹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풍속에 작은 잔을 소줏잔이라고 했습니다.

소주 제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진달래꽃, 매화꽃, 동백꽃, 국화 등 꽃잎이나 향료를 첨가한 여러 가지 향양주(香釀酒)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인삼, 구기자, 오가피, 마늘, 솔잎, 양고기, 뱀 등을 넣어 빚은 약용주들도 세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소주에 약재를 침지시키거나 약재를 섞은 술밑을 고아서 약성분이 들어 있는 소주를 만들었는데 옛 기록집인 『임원십육지』에는 한방에서 자초라고 부르는 지치와 꿀을 넣어 만든 평양의 감홍로(甘紅露)에 대해서도 상세히 씌어져 있습니다.

이렇듯 소주는 우리민족의 슬기와 지혜가 깃든 기호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남한에서 생산되는 참이슬소주나 처음처럼 소주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도 상점에서 불티나게 팔릴 만큼 인기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지방마다 여러 가지 술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가격이 비싸서 간부들이나 마시고 일반인들은 농택이나 원주라고 부르는 개인들이 만든 술을 일상적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마시는 우리 민족의 전통술인 소주는 주정도 적당하고 마신 뒤에도 후과가 없이 개운하여 인기 있는 술로서 유명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들을 구입하여 먹기 시작하면서 중앙당의 고위간부들은 소주대신 외국산 위스키와 보드카, 코냑, 와인 등 고급술을 선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김정일의 외국술(양주)사랑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청년동맹 1비서였던 최룡해와 중앙당비서들은 야밤에도 김정일이 불러서 집무실에 가면 40도 주정의 외국술을 큰 고뿌로 마시면서 태평세월을 노래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비밀입니다.

한 병에 2천 달라나 되는 백년 묵은 코냑인 헤네시술이나 엑스오우(XO)는 명절때에는 수만 병을 수입 해다가 간부들에게만 선물로 공급하였습니다. 와인 중에도 한병이 2천달라를 넘는 샤또 빼뚜르스나 술 한병이 5천달라를 넘는 로마네 꽁티도 김정일이 즐겨마시던 술이었습니다.

와인을 제외한 나머지 위스키와 코냑, 보드카는 알콜 도수가 40%가 넘는 독한 술들입니다. 1990년대에 독한 외국술만 마시던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만수무강연구소에서는 술을 자제해 줄 것을 김정일에게 제의하게 되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아무리 설득해도 술중독성이 한계를 벗어난 애주가 김정일의 귀를 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김정일에게 도수가 낮은 우리 민족의 전통술인 소주를 권유하는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당위원회에서는 아침 조회시간에 만수무강연구소 연구사들에게 김정일의 방침을 전달하였습니다. 방침내용은 우리 선조들이 왜 25%의 소주를 만들어 먹었는지, 소주를 덥혀 마셨다고 하는데 그 이치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청산연구원과 룡성특수식료공장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김정일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달라붙었습니다. 반년도 안 되어 맛과 향이 좋은 주정이 25도인 룡성소주가 생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술을 데워 마시면 건강에 좋은 이유도 과학적으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소주는 완성되는 과정에 3번의 가열공정을 거칩니다. 처음 술밥을 지을 때 한 번, 발효하면서 또 한 번, 마지막 증류하면서 한 번, 이렇게 3번의 가열과정을 통하여 소주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주를 불로 다스린 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주의 향을 좀 더 제대로 느끼고 싶을 때 데워 마시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가마에 물을 넣고 끊인 물의 온도를 알콜의 끓음점인 70.3℃ 이하로 낮춘 후에 술병이나 술 주전자를 더운 물에서 술 온도가 몸속온도와 비슷한 35~40℃로 따끈하게 덥혀마셨습니다. 막걸리는 더운 여름철에 즐겨 마셨지만 술은 추운 계절이나 저녁에 덥혀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주는 반드시 덥혀 마셨는데 덥힌 소주는 맛이 부드러워지고 특유의 감칠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이것은 혓바닥에서 느끼는 미각이 온도가 높아질수록 감각효과가 상승하는데 원인이 있습니다.

소주를 덥히면 발효된 술밥이 증류되면서 알콜성분과 함께 소주속에 남아 있는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들이 없어집니다. 에타놀보다 끓음점이 낮은 메타놀과 다른 휘발성 물질들이 제거되어 해독작용을 미리 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증류하면서 내린 술에는 소주의 고유한 향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냄새가 나지만 덥히면 불결한 냄새가 제거되고 향기로운 소주향이 진해져 술맛이 더 좋아집니다.

룡성소주는 연구를 거듭하여 2차증류를 거치고 정제탑까지 통과하면서 연한 누런색의 투명한 액체의 소주가 생산되게 됩니다. 이 소주는 보기만 해도 깔끔하고 냄새와 맛이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연구원과 룡성공장의 연구사들과 기술자들이 합심하여 생산한 룡성소주를 김일성의 출생 80돌인 1992년 4월 15일을 맞으며 증정하게 되었고 시제품 맛을 본 김정일은 대단히 만족하여 정상 공급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독한 고급술에 중독된 김정일의 양주사랑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김정은과 특권층들에게만 제공되고 외국에서 대표단이 오면 만찬장의 식탁에 오르는 룡성소주는 여전히 고위층들의 독점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제아무리 건강에 좋은 술을 먹으려고 만수무강연구소에 술연구팀을 만들고 별의 별 짓을 다했지만 혼자 몰래 먹는 음식이 체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에 있듯이 제명을 다 못살고 저세상에 갔습니다.

북한의 주민들도 개인들이 만든 위생상태가 불결하고 건강에 위험한 농택이나 원주 대신 공장에서 제조된 좋은 술을 마실 날을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