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음식을 반드시 섭취해야 합니다. 음식에는 사람의 발육과 성장, 신체적 활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물질이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그러한 것처럼 사람도 음식을 통해 필요한 영양성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결국은 굶어죽게 됩니다. 1990년대 역사에 유례가 없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여러분들은 그러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경험했을 것입니다.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사람이 굶어서 죽어가는 기간은 성별이나 민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설령 음식물을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해도 수분만 보충하면 수명이 좀 더 연장된다는 내용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 먹어야 하는 밥이나 반찬, 간식과 같은 여러 가지 음식물에는 사람의 몸에 필요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과 비타민, 미량원소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들입니다.
이런 영양물질들은 어떤 음식인가에 따라 포함된 함량이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음식물에는 일반적인 영양소와 비타민류 외에도 생물활성 물질들인 키토산, 탄닌, 스테로이드, 프로스타글린딘, SOD 등 건강기능성 물질들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SOD는 슈퍼옥시드 디스무타아제(Superoxide dismutase)의 영문 약자이며 건강에 해로운 활성산소나 과산화물에 직접 반응하여 활성을 억제하는 물질입니다. 활성을 억제해 인간의 세포를 보호하는 물질을 과산화물 제거효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김씨 일가의 건강장수를 위해 만청산연구원에서는 식료품속에 들어있는 영양소들과 활성물질의 정성 및 정량분석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검정분석실이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비밀보장을 위해 검정분석실이라는 이름 대신 1실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검정분석실에서는 국내외의 장수효과가 있는 약재와 식료품소재, 산하 비밀식료공장들에서 생산된 특제품들에 함유된 영양성분을 분석했습니다. 약재와 식료품, 특제품을 먹인 실험동물의 조직기관 성분분석도 일체 검정분석실에서 진행했습니다.
실험동물로는 흰생쥐(마우스)와 흰쥐(랏떼), 모르모트가 주로 이용됐습니다. 정성분석(Qualitative analysis, 定性分析)은 식료품이나 생체물질 등 시료 속에 어떤 성분들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분석입니다.
보통 정성분석은 정량분석(定量分析)을 하기에 앞서 진행하는 확인분석 작업입니다. 정성분석에서 식자재에 포함된 물질을 확인한다면 정량분석에서는 포함된 물질의 구체적인 함유량이 얼마인가를 더 세밀하게 분석하게 됩니다.
정성, 정량분석 수치의 정확성은 분석설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선진국에서 생산된 최신 설비일수록 정확성이 높았습니다. 이런 설비들을 구입하기 위해 만청산연구원에서는 1980년대 중반 중앙당 조직지도부 5과에 제의서를 올렸습니다.
값이 천문학적인 설비들임에도 불구하고 제의서를 받아 든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장수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조건 구입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설비구입을 위해 북한의 인민들이 충성의 외화벌이로 모은 당 자금이 배당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은 "일흔이 넘은 수령님(김일성)의 노화는 시간을 모르고 촉진되므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중앙당 5과와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 지시했습니다.
'충성경쟁'에 들뜬 아첨꾼들은 김정일의 지시를 구실로 인민의 피땀이 스민 당자금을 설비구입에 마구 투자했습니다.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부장 신상균은 독일과 오지리,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에서 첨단연구 설비들을 대대적으로 구입했습니다.
만수무강 연구에 천문학적 자금이 들었던 원인은 냉전시대였던 당시 서방국가들이 '대공산권수출통제기구'인 코콤(COCOM)을 통해 자본주의 선진기술과 설비들이 사회주의 진영으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강력히 통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천만 달러를 가지고 있어도 사회주의 흉내를 내던 북한으로선 국제시장에서 첨단 분석설비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비공개적인 선을 통해 불법적으로 설비를 사들이다 보니 자연히 가격이 몇 배로 뛰어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에도 무시하고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부장 신상균은 거액의 자금을 들여 외국의 이름난 의료일꾼들과 생체학 교수들까지 초청하여 '만청산연구원'을 북한에서 최고의 건강장수 연구소로 성장시키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의 본 건물은 4층짜리 큰 아파트였는데 2층 전체를 검정분석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생물학 전문가라면 검정분석 설비가 비싸다는 것은 잘 알겠지만 매 분석실마다 가지고 있는 설비의 값은 정말 놀랄만했습니다.
1988년부터 1990년대 초에 북한은 미국과 독일, 일본, 스위스 등에서 거간꾼들을 내세워 수십 종의 연구 장비를 불법적으로 구입하였는데 값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최소 2천 달러에서 최고 20여만 달러가 넘는 설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플라즈마 분석실에는 수십 건의 샘플에서 중금속인 카드뮴(Cd)과 납(Pb), 수은(Hg)을 한 번에 분석할 수 있는 25만 달러짜리 독일산 플라즈마 분석기가 있습니다. 설비의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한번 분석하는데 드는 비용도 엄청났습니다.
우선 형광분광광도계에서 1차 검사를 진행하는데 분광광도계는 1천8백 달러짜리 설비로 3대를 갖추었습니다. 2천 달러의 오실로그래프와 2만 달러의 무균 조작대, 초고속원심분리기를 비롯하여 17만 달러의 자동생화학분석기도 있었습니다.
자동생화학분석기는 만청산연구원에서는 '종합피분석기'라고도 불렀습니다. 처음 이 설비가 연구원에 들어오자 검정분석실과 식품보약화실 실장들 사이에서는 설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까지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결국 당위원회와 행정실에서 토의하여 식품보약화 연구실에 설치하게 되었으며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한 박혜순 연구사가 이 설비의 책임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이 설비는 오지리(오스트리아)와 독일(서독)이 합영으로 만든 설비였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설비에 드는 화학시약들은 독일이 만하임(Mannheim)회사에서 제조한 것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해에 이 설비 한대를 가동하는데 드는 시약가격만 1만 달러를 넘을 정도였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매 연구원마다 검정분석실은 다 있었습니다. 연구원 내부에서 다른 연구실들도 중요했지만 검정분석실은 특별한 대상이었습니다. 왜냐면 김일성,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위한 식료품 성분들이 여기에서 모두 분석됐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8호, 9호 농장들과 운곡농장, 아미산 농장을 비롯해 김일성 일가의 먹을거리를 연구하고 재배, 사육하는 기관들에서 아무리 좋은 재료를 생산했다 해도 검정분석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의 과학자들과 연구진들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관리에 맞추어 검정분석실에서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실험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검정분석실은 김일성 일가의 음식물을 통제하는 검정소였습니다.
검정분석실에 설치된 이 설비들에는 한 대의 설비에 연구사 1명과 연구조수 1명이 분담되어 담당제로 되어 있었고 그들은 자기의 설비를 이용하여 분석 의뢰된 시료들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제출하는 것이 주요 연구과제였습니다.
검정분석실에는 특수하게 김일성, 김정일이 피우는 담배를 연구하는 팀도 있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애연가여서 그들의 담배사랑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 유학생출신인 임호림 박사가 담배연구조를 책임지고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담배를 연구하는데 사용된 설비도 둥근 원판에 수백대의 담배를 꽂으면 한번에 각 담배대에서 연기가 흡입되어 개개로 관을 통해 분석기로 이동되어 담배 속의 건강에 유해로운 성분들이 분석되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인 그 많은 설비가 오직 김일성 일가, 지금은 김정은 한 사람만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설비구입에 들인 자금이면 지옥 같은 땅에서 사는 북녘 인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좋아졌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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