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 인사드립니다. 지난 시간을 통해 저는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들인 '기초과학원'과 '만청산연구원'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건강을 연구하는 기관들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청암산연구소'도 김일성 일가의 건강장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들 중의 하나입니다. 호위사령부 산하에 조직된 '청암산연구소'는 평양시 룡성구역에 위치한 제2총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워낙 김일성 일가의 사생활 모두가 일체 비밀에 속하지만 그 중에서도 '청암산연구소'는 몇몇 고위간부들이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실제 들어가 본 적도 없는 북한에서 최고의 비밀기관에 속합니다.
'청암산연구소'에 대하여 이해하자면 먼저 호위사령부의 실체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호위사령부에 대해서는 청취자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구체적인 실체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호위사령부는 김일성 일가의 신변보위와 북한 내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군사정변, 폭동 등을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입니다. 김일성은 일제가 패망하고 나라가 해방 된지 2달이나 지난 1945년 10월, 소련 화물선 '뿌가쵸브'호를 타고 가족들과 귀국했습니다.
당시 소련군 대위였던 김일성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빨치산 출신 김좌혁에게 임무를 주어 경호담당기관인 호위국을 창설했습니다. 말이 호위국이지 그때까지는 동네 방범대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북한 내부에서 여러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김일성에 대한 암살음모가 자주 발생하는데 따라 호위국의 규모가 확대되고 기능도 강화되었습니다. 1956년 중국 연안파 출신들과 소련유학파가 '8월 종파사건'으로 알려진 쿠테타를 모의했습니다.
이런 정세를 감안해 김일성은 1958년 "당중앙을 철저히 보위하자"는 구실을 붙여 기존의 호위국을 호위총국으로 확대하고 자신의 최측근이고 항일 빨치산 출신인 오백룡을 호위총국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북한의 정치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파쇼 독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유지돼 오던 호위총국은 1970년대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확실해지자 몸집을 불리면서 호위총국의 규모는 배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김일성과 함께 김정일의 신변안전을 더욱 철저히 보장한다고 하면서 1983년 4월에는 빨치산 출신인 전문섭을 호위국장에 임명하고 기구를 확대•개편하여 인원도 5만여 명으로 증강하였습니다.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로 로므니아(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챠우쉐스크 일가가 성난 국민들에 의해 처형당하고 동부 독일의 에리히 호네케르 공산당총비서가 숙청되었습니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김일성, 김정일은 호위총국 병력을 10만명으로 증강하였고 이름도 호위총국에서 호위사령부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런 호위사령부에는 단순히 군 병력만 있지 않았습니다. 특수농장과 목장, 과수원을 따로 가지고 있었고 김일성의 만년장수 연구를 위한 '청암산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암산연구소'는 1978년 호위사령부 2총국 산하에 신설되었습니다.
'청암산연구소'는 김일성의 식탁에 오르는 식자재와 요리를 전담하던 호위사령부 1총국의 식품조리과에서 독립되었습니다. 평양시 룡성 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 7층의 건물에는 4개의 부서와 3개의 독립연구실이 있습니다.
연구소 설비들을 수입하는 데만 당시의 돈으로 3백만 달러가 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 3백만 달러면 지금으로선 상상도 안될 만큼 큰 액수의 돈이라고 합니다. 건물과는 별도로 연구용 사육장과 실험공장이 있습니다.
본 청사에서 근무하는 인원만 280여명인데 그들 중 대학을 졸업한 전문연구사는 120여명이었습니다. 호위사령부 산하이기 때문에 군대와 같은 편제로 운영되는데 연구원들과 관리원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호위국군인 신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운영은 박사급인 소장 1명과 과학, 행정, 후방을 맡아보는 부소장 3명이 책임졌습니다. 그 외에 다른 군부대들처럼 정치부가 있고 고급승용차들만 관리하는 차량행정과가 연구 사업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4개의 부서는 중 1부는 화학합성부, 2부는 식품검정부, 3부는 임상생리부, 4부는 환경물리부입니다. 또 전문적으로 주류 제조법을 연구하는 15실과 음식조리 방법을 연구하는 16실, 도서실 등이 있습니다.
1부인 화학합성부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성기능향상물질들을 생합성방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2부인 식품검정부에서는 김부자와 그 가족들과 친척들이 먹는 모든 음식들의 독성과 음해성 검사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3부인 임상생리부에서는 노화를 방지하고 항산화활성을 높이는 음식이나 약물들을 개발하였으며 4부인 환경물리부에서는 외부 방사성오염조사 및 방지에 관한 연구와 김일성 일가의 생리특성에 맞는 건강운동을 연구했습니다.
15실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체질과 특성에 맞는 술을 연구하였고 16실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식탁에 오를 음식의 맛과 영양가를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조리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청암산연구소'의 연구 사업이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소에서는 오로지 김일성일가의 체질 및 유전적 특성과 관련된 건강 연구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험동물사육장에서도 북한 일반 민간연구소들에서 사육하는 것은 물론 구경하기도 어려운 순종계통의 흰생쥐인 마우스와(실례로 일본계 ICR품종) 흰쥐인 랏떼, 햄스터, 토끼 등 고가의 실험동물들을 사육하여 이용하였습니다.
실험동물들은 북한의 인민들이 평시에 먹기 힘든 고급사료들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실험동물을 키우고 관리하기 위해 종사하는 사람들만 몇 백 명은 족히 넘었습니다. 그만큼 김일성 일가의 건강연구에 끔찍한 노력과 재원이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연구소 내부에서는 부서 호상 간 접촉이 금지되어있습니다. 연구과제들에 대한 비밀이 새어 나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는 회의에서도 제목을 숫자로 암호화하여 보고함으로서 다른 부서의 일꾼들은 내용을 알 수 없게 했습니다.
매개 부서의 책임자인 부장은 대좌 혹은 소장(준장)의 견장(계급장)을 단 박사들이며 실에는 상좌 혹은 대좌 급의 박사 혹은 준박사로 10년 이상의 연구경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개의 실에는 중위이상 급의 연구원 5에서 8명,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나온 소위 이하의 보장성원이 5명에서 10명 정도씩 포함되었습니다.
호위사령부에 김일성 일가의 건강연구를 위한 '청암산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은 평양시민들마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어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상당한 지위의 사람들 외에는 알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선군정치를 주장한 김정일에 이어 권력을 대물림한 김정은 역시 호위총국에 따로 비밀 연구소인 '청암산연구소'를 두고 자신과 일가족들의 건강장수를 위한 장수식품개발을 물심 량면으로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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