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지금까지 김일성 일가의 먹을거리가 어떻게 마련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드렸는데 앞으로는 좀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김일성 일가가 단순히 자신들의 만수무강을 위해 먹는 데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권력유지를 위한 ‘선물정치’를 통해서도 김일성 일가는 북한 인민들이 피땀을 흘리게 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남다른 가구사랑도 북한 인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가구라고 하면 일반적인 침대나 밥상, 옷장, 책상과 같은 것들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가구에는 소파나 침대, 책장, 장식장을 비롯해 그 가짓수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1980년대에 김일성의 권한을 대행하기 시작한 김정일은 북한에서 간부들에게 공급할 ‘9호 제품’ 생산을 맡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를 먼저 장악했습니다. 여기에서 식료품은 물론 자신이 쓰는 가구 하나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만들도록 했습니다.
금수산의사당경리부는 북한에서 가구를 만드는 최고의 기술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부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김정일을 위한 건강기능성 가구들을 만들었는데 여러분들은 건강기능성 가구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강기능성 가구는 친환경적인 소재를 가지고 사용자의 체격과 습관, 건강에 맞춰서 특수 제작된 가구를 말합니다. 특히 가구의 소재인 목재류는 건조가 다 되었다고 해도 포름알데히드와 같이 건강에 나쁜 유해성분이 계속 방출됩니다.
일체식이나 압착식과 같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가구는 개인의 취향과 키, 습관에 맞는 인체공학적인 기능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이런 가구들을 장시간 사용하면 몸의 균형이 파괴될 수도 있고 알레르기 같은 여러 질병들도 걸리기 쉽습니다.
특히 키가 작았던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가구들을 사용하기에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키와 신체규격에 맞는 가구들을 따로 만들 것을 해당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 특별히 지시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980년대 중반부터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 중앙당 가구공장과 호위사령부 가구공장들에서 경쟁적으로 김정일 전용 침대와 책상을 비롯한 가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북한의 경치 좋은 곳에는 다 김정일의 별장이 있었기에 침대도 한 두개를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김정일의 체격과 기호에 맞으면서도 다양한 장식을 갖춘 침대는 각 별장들에 다 놓을 수 있게 수십여 개씩 섬세하게 제작됐습니다.
이러한 가구를 만드는 기술자들속에는 혜산농림대학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혜산농림대학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목재가공전문기술자를 양성하는 대학입니다. 이 대학 목재가공학부 교수들은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 유학생 출신들이었습니다.
김정일이 사용하거나 김일성 일가가 사용하는 가구의 설계와 제작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의 목재가공 전문기술자인 박두봉이 지휘했습니다. 혜산농림대학 목재가공학부 졸업생인 그는 판자의 열처리 공법이 독특했습니다.
판자의 열처리 구부림 공법으로 박두봉은 디자인이 독특한 앞차대(탁)를 제작하여 발명권을 받고 그 기술을 김일성 일가가 사용하는 가구들에 도입하여 김정일로부터 기술이 뛰어난 장인으로 인정을 받고 많은 표창과 훈장도 받았습니다.
이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김정일은 자신이 사용하는 가구의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는 건강기능성 가구들을 들여와 꼭 같은 수준과 기술로 제작할 데 대해 금수산의사당경리부와 중앙당의 해당 부서에 지시했습니다.
유럽과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김정일의 눈과 감각을 만족시킬만한 가구들이 수입되었습니다. 1985년에 김정일의 지시로 노르웨이와 스웨리예(스웨덴), 독일, 스위스, 일본 등 많은 나라의 가구들이 수입되었습니다.
수많은 외화를 들여 수입된 가구들은 가구설계를 지휘했던 박두봉과 북한의 최고 목재가공전문가들에게 연구대상으로 제공됐습니다. 가구장인 박두봉을 가르쳤던 혜산농림대학의 김하룡교수와 이재봉교수들도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인민문화궁전에서는 유럽의 유명가구전시가 비공개로 진행되었는데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이 전시회에는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가구전문기술자들과 호위총국 가구공장 기술자들이 참가해 철저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가구전시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북한 사법기관들에 보안을 철저히 지킬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까지 써야했습니다. 북한은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가구전시회의 비밀을 말하지 말 것을 서약서를 통해 강요했습니다.
북한이 참가자들에게 ‘서약서’까지 쓰게 한 원인은 이곳에 전시된 가구들을 보면 사람 못살 사회라고 선전하던 자본주의 세계의 실상을 예측할 수 있고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스위스의 비트라(Vitra)와 영국의 얼콜(Ercol)회사, 프랑스의 그랑지(Grange)회사, 독일의 코아(COR)와 도미실(Domicil), 노르웨이의 에코르네스(EKORNES), 스웨리예의 스웨데제(SWEDESE)의 가구들이 전시회를 위해 수입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에코르네스가 제작한 소파는 몸에 꼭 맞는 인체공학적 설계로 편안함을 주었고 고품질의 내구성까지 갖추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스웨덴에서 만든 침대는 소형 냉동함이 부착되어 자다가도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 가구들은 대다수가 엠디에프(MDF)라고 부르는 프레스로 압착한 중밀도 섬유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엠디에프(MDF)는 가구의 변형을 방지하고 품위를 높이기 위해 목재를 파쇄한 후 약재처리로 얻어낸 목섬유를 고온에서 압착‧성형한 판재입니다.
또한 집성판과 합판도 오리나무와 벚꽃나무, 코아나무, 삼나무, 너도밤나무, 물푸레나무 등 고급원목으로 만든 것이어서 그 질 또한 우수하였습니다.
김정일은 이런 고급가구를 견본으로 자기의 키와 체격에 맞춘 침대와 의자, 책장, 소파 등 모든 가구들을 만들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인민들은 밥상도 제대로 없어 땅바닥에서 강냉이 죽을 놓고 먹을 때 김정일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친환경적이고 인체공학적으로 완벽한 가구를 만들어 건강을 돌보며 호의호식을 했지만 김정일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자신에게 필요한 가구들만 만들기 위해 김정일이 얼마나 많은 외화를 탕진했는지는 앞으로도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