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업자가 번 외화까지 김 씨 일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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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제가 북한 중앙당 38호실 24국이었던 '향산지도국' 수출원천 처에서 근무할 때 그 산하기관이었던 '정봉무역회사'에서 생산하던 꿀과 왕벌 젖, 벌독에 대하여 이야기 해드리려고 합니다.

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야생에서 생산되는 토봉 꿀과 인공적으로 벌을 쳐서 생산하는 양봉꿀이 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꿀벌을 인공적으로 키워 꿀과 왕벌 젖(로얄젤리), 밀랍, 화분, 봉지, 벌독 등의 건강 장수약품들을 생산했습니다.

옛 문헌들에는 양봉이 중동에서 '비단의 길(실크로드)'을 거쳐 중국에 들어왔고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에 키우는 방법이 전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양봉에서 채취한 꿀은 귀한 식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1433년 조선시대 세종 왕 시기에 편찬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1613년 선조 왕이 집권했을 때 편찬된 '동의보감' 등 우리나라의 옛 의료서적들에는 꿀, 밀랍, 꿀벌의 번데기 등이 인간에게 영험한 기운을 주는 보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꿀은 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식욕을 높여주며 기관지염에도 좋은 약인데 비타민B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신경 자극을 약화시켜 불면증에도 효과가 좋으며 피부미용에 특효가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습진치료에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여왕벌은 보통 120만 개의 알을 낳고 죽는데 노동 벌(일벌) 보다 수명은 20배나 더 깁니다. 그런 이유로 여왕벌에서 얻을 수 있는 왕벌 젖은 불로장수 약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꿀벌에서 나오는 분비액 모두가 인간의 건강장수에 좋은 약품입니다.

노화방지와 건강장수에 좋다는 양봉과 토봉에 대해서는 김일성과 김정일도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1970년대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나오면서 북한은 전국 각지에 김 씨 일가의 건강장수를 위한 특제품 생산기지인 9호 작업반을 조직했습니다.

9호 작업반에서 김씨 일가가 소비할 다른 먹을거리들과 함께 양봉과 토봉을 키웠는데 특히 고산지대인 자강도와 양강도의 9호 작업반들에서 생산된 토봉 꿀은 중앙당 5과에서 철저히 검열한 후 김정일에게 증정하였습니다.

김일성 일가가 먹을 축산제품을 생산하는 운곡목장 룡담분장의 계곡에도 양봉작업반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그리고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아카시아 꿀과 유채 꿀, 밤나무 꿀, 싸리 꿀 등 다양한 특제품 꿀들을 생산했습니다.

운곡목장은 아무리 높은 간부라 해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어 김일성 일가 전용의 특제품들은 돈과 권세가 있어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자강도의 한 9호 작업반에서 꿀 두병을 몰래 빼낸 작업반장이 출당, 철직되기도 했습니다.

중앙당 38호실은 북한 내에 들어온 달러를 거둬들여 '충성의 외화'를 마련하는 기관입니다. 38호실은 국내에서 꿀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산하 외화벌이 기관인 '향산지도국' 수출원천 처에서 양봉업을 시작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초기 38호실은 '향산지도국'을 이용해 일본과 대만, 중국 등에서 꿀과 왕벌 젖, 화분을 수입하여 평양과 각 도 소재지들에 있는 외화상점에서 팔았습니다. 외화상점에 내놓은 꿀과 왕벌 젖은 귀국자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습니다.

외국에서 비싼 꿀을 수입해 들이던 '향산지도국' 수출원천 처 박봉록 처장은 비싼 값으로 외국에서 꿀을 사들이기보다 북한에서 생산하는 꿀과 왕벌 젖, 꽃가루를 가공해 팔자는 기획을 '향산지도국' 당위원회에 제안했습니다.

당시 '향산지도국' 당비서는 항일투사 서철의 아들 서동명이었는데 수출원천 처에서 제기한 안을 당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해 토의하도록 했습니다. 확대회의에서 북한에 있는 양봉업자들로 상설적인 조직을 설립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부대와 협동농장, 특급기관기업소들과 일부 개인들이 벌을 쳐서 꿀을 생산하였는데 협동농장들마다 축산작업반에 양봉분조를 따로 두고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양봉관리를 하는 기관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의 양봉업자들과 양봉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조직하자는 기획안이 '향산지도국' 당위원회에서 작성됐습니다. '향산지도국'은 1995년 전국의 양봉업자들을 통일적으로 감독 통제하자는 사업계획서를 38호실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했습니다.

양봉업을 통일적으로 감독 통제하여 양봉업 발전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자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는 김정일이 친필지시로 승인하였고 이후 중앙당 38호실은 '정봉회사'를 조직해 북한 내부에서 양봉업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양봉업 발전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양봉업까지 철저히 통제해 꿀과 왕벌 젖과 같이 꿀벌에서 얻을 수 있는 인간의 건강장수 약재들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겠다는 극악한 모략이었습니다.

'정봉회사'는 국가기관과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22만 통의 양봉을 등록제로 전환하고 벌 사료와 항생재, 각종 양봉도구를 해외에서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공급하고 대신 꿀과 왕벌 젖, 벌독, 화분을 수매의 방법으로 헐값에 빼앗아 냈습니다.

중앙당 38호실이 선손을 써 김정은의 승인을 받아내면서 '향산지도국' 산하 '정봉회사'가 북한의 양봉업을 독점하게 됐습니다. 다른 무역기관들과 중앙기관들은 양봉과 관련된 그 어떤 사업이나 무역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봉회사'는 각 도소재지들마다 양봉협회를 만들어 양봉업자들에게 회원증을 발급해주었습니다. 만약 양봉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이 꿀벌을 키우거나 꿀벌제품을 판매할 경우 사법적으로 엄격히 처벌하도록 질서를 세웠습니다.

북한의 양봉업을 독점한 '정봉회사'는 양봉협회를 통해 개인과 기관들에서 생산한 꿀을 수매하는 대신 겨울철 꿀벌의 먹이로 사탕가루(설탕)을 공급해주고 수매의 대가로 현금이 아닌 다른 생필품을 지급 하도록 했습니다.

수매로 끌어들인 꿀과 왕벌 젖은 가공하여 외화상점에서 판매했습니다. 개인들이 장마당에서 꿀을 파는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암거래로 팔리는 꿀의 가격은 껑충 뛰어올랐고 덩달아 외화 상점에서 파는 꿀벌제품의 값도 크게 올랐습니다.

꿀벌이 몸에 묻혀 온 꽃가루를 화분이라고 했는데 국제시장에서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팔렸습니다. 제가 향산지도 국에 있을 때 '정봉회사'는 양봉업자들로부터 화분 1g을 수매하는 대가로 사탕가루 17kg씩 바꾸어 주었습니다.

당시 국제시장에서 벌독 1g의 가격은 약 300달러였는데 양봉업자들이 벌독 1g을 수매하면 사탕가루 16kg을 주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사탕가루 16kg의 가격은 40달러로 '정봉회사'는 약 7.5배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봉회사'가 북한의 양봉업자들로부터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는 중앙당 38호실을 거쳐 고스란히 김정일의 주머니로 흘러들었습니다. 지금도 벌독채집 기를 받으려고 몰려들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양봉업자들의 불쌍한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렇게 인민을 약탈하고 온갖 보약은 다 독차지해도 김정일은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의 정치를 흉내 내고 있는 김정은의 비대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