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간이 먹는 음식들, 그중에서도 목숨을 연장하려는 독재자들이 먹는 음식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은 독재자 김일성의 식생활 가운데서 숙주 나물에 얽힌 희한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숙주나물은 녹두 콩나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숙주나물 자체가 녹두에서 나온 것이어서 약효가 뛰어나지만 김일성 일가가 먹는 숙주나물은 건강장수에 좋은 약초들을 달인 물로 키웠습니다. 보통 숙주 나물이 아니라 '보약 화된 숙주나물'이었습니다.
숙주나물은 중국 원나라 시기 가정요리책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 두아채(豆芽菜)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아채 요리법도 기록되어 있는데 우선 녹두를 깨끗이 씻어 물속에 담가 불린 뒤 항아리에 넣고 물을 끼얹습니다.
싹이 한 자만한 길이로 자라면 껍질을 골라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생강과 식초, 소금, 기름 등으로 무쳐 먹는다고 씌어 있습니다. 숙주나물이라는 이름 역시 유래가 복잡합니다. 북한에서는 숙주나물을 녹두 나물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녹두를 키워서 만든 콩나물은 왜 숙주나물이라고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실제 녹두로 만든 묵이나 지짐은 숙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습니다. 숙주나물은 우리나라의 험난한 역사가 만들어 낸 이름입니다.
세종대왕이 가장 총애한 학자 신숙주는 세종대왕이 사망하자 유언을 따르지 않고 수양대군에게 아부했습니다. 다른 콩나물들과 달리 색이 쉽게 변하는 녹두 나물은 당시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신숙주를 비판하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벌써 녹두가 콩나물로 인기가 높았다는 의미인데 녹두는 수확량이 적어 민간에서는 약으로 취급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장마당에서 녹두는 비싼 약재로 팔리는데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녹두를 먹으면 해독효과가 뛰어났습니다.
애주가였던 김정일은 술을 마시고 난 뒤 간(肝)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시대 왕들이 즐겨 먹던 숙주 나물을 연구하도록 1991년에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 만청산연구원에 지시했습니다. 숙주나물 연구는 식품보약화연구실의 김하경 연구사가 책임졌습니다.
녹두에는 단백질 구성요소인 로이신과 리진(라이신), 발린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불포화 지방산인 리놀산과 리놀레인산이 많이 들어 있으며 뉴클레아제와 우레아제, 인벨타제, 아밀라제 등 여러 효소들이 들어 있어 소화 흡수가 뛰어납니다.
특히 녹두를 나물로 재배하면 건강에 좋은 성분들의 함량이 훨씬 증가했습니다. 특히 비타민A는 2배, 비타민 B2는 30배, 비타민 C는 40배 이상 늘어납니다. 또 숙주나물은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비만치료에도 효과가 높았습니다.
만청산연구원에서는 이런 녹두 나물의 건강기능성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고려약재(한약재)를 우린 물로 나물을 키웠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고려약재를 넣어 녹두 나물을 키우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간단치 않았습니다.
만청산연구원 식품보약화연구실에서 처음 녹두 나물을 키우는 약물로 두메오리나무더부살이인 육종용을 선택했습니다. 두메오리나무더부살이는 빨치산 시절 김일성이 상처가 나면 발라서 치료를 했다며 이름을 백두산불로초로 고치도록 했습니다.
백두산불로초는 북한의 백두산 일대와 중국의 만주, 러시아의 씨비리(시베리아), 일본 흑해도지방 등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입니다. 두메오리나무의 뿌리에 많이 기생하여 자라는데 꽃이 필 때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합니다.
북한에서 백두산불로초라고 부르는 두메오리나무더부살이는 고려의학에서 강장강정제로 많이 쓰였 으며 음위증과 어지럼증, 변비를 치료하는데 널리 사용되었고 송진에 섞어 고약을 만들어 위궤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많이 이용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만청산연구원의 제2실인 식품보약화실의 연구사들은 이미 백두산불로초에 대한 연구를 다양하게 진행하여 여러 가지 연구결과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백두산불로초 차와 백두산 불로초 술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백두산불로초 연구에 깊이 관여했던 김하경 연구사는 녹두 나물 연구 과제를 받은 즉시 백두산 불로초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인 보쉬니아킨과 보쉬니아 락톤 등 성분들이 각이한 조건에서 녹두 나물에 동화되는 과정을 분석하였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대한 심의에서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됐습니다. 먼저 백두산불로초에 들어 있는 텁텁한 맛의 탄닌 성분이 녹두 나물의 맛에 영향을 주어 식품으로서의 기호 성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사들의 우려였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녹두의 해독작용이 오히려 백두산불로초의 약효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백두산불로초로 키운 녹두나물에 대한 최종 오감분석으로 신덕샘물로 키운 나물과 백두산불로초를 우린 물로 키운 나물의 맛을 비교했습니다.
백두산불로초로 키운 녹두 나물의 오감분석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성분분석에서도 백두산 불로초에 있는 약효가 충분히 함유되면서 실험동물들인 마우스와 흰쥐, 모르모트에게 먹여 피 속의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의 변화도 조사하였습니다.
피속 성분 검사지표로는 그 외에도 GOT(지오티), GTP(지티피), 큔켈, 말렌, 혈중 단백, 혈중 뇨산, 혈당 등 거의 30여 가지를 분석하여 건강기능성의 유무와 효과를 검토하였는데 모든 결과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효가 기대치까지 미치지 못했지만 백두산불로초로 키운 녹두 나물은 분명 일반 샘물로 키운 콩나물에 비해 건강장수 성분이 뛰어나게 증가했습니다. 때문에 김 부자의 건강장수를 위한 식 자재로 공급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사실 값비싼 백두산불로초와 비교하면 약초 물로 키운 녹두 나물은 밑 빠진 항아리에 기름 붓는 격으로 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위한 호위과학 연구에서 돈은 절대로 따지지 않는다는 철직이 있어 막을 방법도 없었습니다.
김하경 연구사는 녹두 나물에 이어 다른 여러 콩나물들도 백두산불로초와 달맞이꽃, 가시오갈피 등 약초를 우린 물로 키워 약효가 있는 콩나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약초를 달인 물로 콩나물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약초성분이 콩나물에 흡수되는 과정에 독성을 띠는 경우가 많아 철저한 성분 조사와 복잡한 분석이 동반돼야 했습니다. 더욱이 한번 사용한 약초 물은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해 하루에도 수차례씩 약초를 달인 물을 새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비싼 약재들을 우린 물로 키워야 했기에 만청산 연구원 연구사들도 녹두 나물을 가리켜 '황금나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북한에서는 그렇게 귀하던 녹두가 얼마나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녹두 1kg을 생산지에서 한국 돈으로 5천원에 살 수 있어서 하루에 10만원을 버는 막노동자라고 해도 하루 일해서 번 돈으로 녹두 20kg을 살 수 있었습니다. 녹두 나물도 시장에 가면 항상 판매되는데 식당에 가면 밑반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녹두가 흔한 남한에서도 만청산 연구원과 같은 녹두 나물은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재의 값이 비싸 수지 타산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오직 김일성 일가만이 먹을 수 있는 건강장수용 녹두 나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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