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의 말 한마디이면 범죄자도 영웅이 되고 큰 도둑인 간부들이 좀도둑을 재판하는 무법천지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고 변호사의 역할이 따로 있습니다.
오늘은 북한주민들도 잘 모르는 변호사라는 직업과 그들이 어디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변호사라는 직업이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간부들과 백성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북한의 변호사법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 합니다.
북한은 조선노동당만이 존재하는 일당독재 국가입니다. 하지만 일당독재인 조선노동당이 김씨 일가의 봉건적 세습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북한의 헌법도 오직 김씨 일가의 유일체제를 위한 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조선로동당 위에 김정은이 있고 '조선민주주의 헌법' 위에 김정은이 있습니다. 기존의 당 규약이야 어떻든, '조선민주주의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든 김정은의 말 한마디가 곧 법으로 되어버리는 사회가 북한입니다.
사법기관 간부들의 출세와 철직 여부를 오로지 당에서 결정하는 체계여서 검사나 판사들도 당 간부들의 자녀들만큼은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당 간부와 그들의 자녀들에겐 무법천지인 세상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외에도 '무권유죄(無權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라는 딱지가 늘 인민에게 붙어 다니는 사회입니다. 남한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당이 여러 개가 있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권력이 인민의 심판을 받습니다.
선거에서 인민들의 지지도가 높은 당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격인 '국회의원'들을 더 많이 배출하고 입법기관인 국회가 모든 권력을 행사합니다. 대통령도 여러 명의 출마자들 가운데서 인민들이 직접적인 선거로 선택을 합니다.
이런 제도에서는 당연히 인민을 위해, 인민에게 더 유리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부여 받기 마련 입니다. 결국 당과 국회, 대통령도 청렴결백 해야 하고 인민의 감정을 제때에 보살펴야 하는 게 민주주의 정치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간부의 자녀들은 죄를 범하여 구류장에 들어가도 전화 한 통으로 풀려 나오게 됩니다. 제가 공부를 했던 김일성종합대학은 중앙당의 고위간부 자녀들이 많았던 관계로 그런 사건들이 특히 비일 비재 하였습니다.
1986년 여름 평양시 고려호텔 근처의 고급식당에서 큰 난투극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니던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 김영남의 아들이 다른 고위층자녀들과 술에 취해 그릇이며 술병, 의자들을 모조리 부셔버렸습니다.
부모의 권세를 믿는 고위층자녀들이 옆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다른 일반 사람들이 비위에 거슬린다고 트집을 잡았던 것입니다. 식당 벽은 순식간에 핏자국으로 얼룩졌고 싸움을 말리던 접대원들까지 그들에게 맞아 크게 다쳤습니다.
사건을 접수 받은 중 구역 보안 서에서 출동을 하였지만 부모들의 권세를 믿는 고위간부 자식들은 오히려 더 펄펄 날뛰었습니다. 중앙당 고위간부 자녀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리라 생각했던 보안 원들도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전말이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되었고 김정일의 지시로 고위간부 자녀들 모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퇴학당하고 혁명화 처분으로 탄광에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범죄자들 중 부모의 직급이 가장 낮았던 사람이 홍원 시당 책임비서였습니다.
그 외 자녀들은 부모가 모두 중앙당의 비서, 과장급들이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안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상투쟁회'가 크게 열렸고 다시는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직원들을 사이에 교양대책 회의들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었던 김영남과 자식들이 사건에 연루된 고위간부들은 자녀교양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철직되었다는 소문도 평양시에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문은 누군가가 지어낸 유언비어로 확인됐습니다.
그만큼 평양시를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고위간부들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은 나빠졌습니다. 문제는 탄광에 쫓겨 갔던 고위간부 자식들이 1년도 채 안 돼 소위 '혁명화'라는 것을 마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복학 하였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일반인 자식들이 죄를 범해 대학에서 퇴학당하면 복학은 고사하고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되어 버립니다. 일반 주민의 자녀라면 '교화소(교도소)'에 가고도 남을 범죄를 지었지만 고위간부 자녀들은 특별히 봐준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남한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북한 사법기관의 실체입니다. 보안 원들이 작심을 하고 고위간부 자녀들의 죄 행을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으나 헌법 위에 군림한 김정일의 처벌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예심이나 수사를 담당한 경찰이나 검찰 소 검사들이 사건을 취급하면 대통령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아무리 돈 많은 자본가라 해도 헌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헌법은 형식상 존재할 따름입니다. 김정일이 '혁명화'를 지시해도 그 밑에 있는 간부들이 해당 대상이 '혁명화'에 성실하고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다고 보고를 하면 그야말로 죄는 있으나 마나 입니다.
김정일이 '살려주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그 순간에 모든 죄가 없었던 것처럼 해결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남한은 잘 알려진 것처럼 전두환이나 노태우와 같은 전직 대통령들도 잘못이 있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 법치국가입니다.
사망한 김대중 대통령은 재직 당시에 범죄에 연루된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합니다. 설령 대통령의 자식이라 해도 죄를 범하면 용서를 받지 못하는 국가가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떻습니까?
헌법 위에 최고인민회의가 있고 최고인민회의 위에 노동당 있습니다. 또 노동당 위에 '최고 존엄'이라고 하는 김정은이 하나님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과연 하나님처럼 공정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김정일은 1970년 자기보다 5살이나 위인 영화배우 성혜림에게 눈독을 들여 김일성 몰래 아들인 김정남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혜림은 소설 <땅>의 저자인 남한출신 소설가 이기영의 아들 이평과 살고 있는 유부녀 였습니다.
문학예술총동맹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기영의 아들인 이평은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였고 성혜림과 이평사이에는 딸 리옥돌이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눈에 든 5살 연상의 누나벌인 성혜림은 김정일에 의해 이평과 강제로 이혼당했습니다.
법대로 따진다면 유부녀를 겁탈한 김정일은 '교화소'에 가야 했지만 성혜림의 남편 이평은 이혼을 강요 당하고도 어디에 하소연 할 길이 없었습니다. 분노한 이평은 김일성 일가를 저주하며 대동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북한도 1993년 12월 23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으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변호사법이란 걸 채택했습니다. 4장 31조에 달하는 변호사법은 노동당의 노선을 원칙으로 삼고 '김일성주의'를 위해 활동 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변호사는 반드시 노동당원이어야 하며 노동당 간부 부에서 임명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북한주민들은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에서 변호사는 '있으나 마나'인 직업입니다.
변호사는 피고자의 입장에서 피고의 주장을 대변하여 검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법관입니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고의 편에 서는 사람입니다. 피고의 편에 서는 사람이 있어야 재판과정에 편법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김정일의 주머니에 달러를 채워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앙당 38호실 '향산지도국'에 있을 때 일본산 중고 '색텔레비젼(컬러TV)' 장사를 하던 처남이 장사꾼의 돈을 넘겨받는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법 걸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점심에 처남이 찾아와 함께 평양시 중구 역 음식점거리의 릉라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한창 식사를 하는데 옆 탁에서 식사하던 한 장사꾼이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일본산 중고 색TV를 사려고 처남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처남이 장사꾼에게 '색텔레비젼'을 사주기로 하고 200달러 정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장사내용이 무엇인지, 무슨 돈 거래를 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공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받기 전에 변호사라는 사람을 한번 구류장에서 만났는데 그는 '빨리 힘든 구류장 생활을 마치고 형기를 더 먹지 않으려면 조서내용을 인정하는 게 상책'이라고 하면서 피고의 편이 아닌 검사의 편에서 저를 압박하였습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던 저는 억울한 사연을 말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때 처남과 거래를 한 장사꾼의 가까운 친척이 중앙당에서 한자리를 하는 고위간부였습니다.
교화소에서 퇴소할 때 담당 보안 원이 "너의 사건은 너무도 억울한 것 같다"고 말해 줄 정도였습니다. 남한에 와서 법관들에게 이 사실을 말씀 드렸는데 왜 변호사에게 정당한 이유를 말하여 무죄로 판결 받지 못했는가 고 말했습니다.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김정은이 최고의 변호사이고 노동당이 재판관이라는 사실을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 변호사들은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백성에게는 지옥이지만 도둑질을 일삼는 간부들에게는 천국인 이런 북한의 변호사 제도가 얼마나 엉터리이며 백성들을 두 번 속이는 제도인지 알아두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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