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일가를 위한 식품보약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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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이기에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글을 씁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쓰는 용어와 남한에서 쓰는 용어 중에는 서로 알아듣지 못할 표현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북한 내에서도 고위층이 쓰는 말을 일반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김씨 일가의 만수무강을 위해 연구사업을 하던 만청산연구소의 각종 비밀화 된 이름들 역시 그랬는데 그 중엔 식품 보약화라는 전문용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일하던 만청산연구원의 식품보약화 연구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드리려 합니다. 만청산연구원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건강장수를 위하여 분야별로 모두 8개의 연구실이 존재하였습니다.

1실은 검정분석실, 2실은 식품보약화 연구실, 3실은 생물공학 연구실, 4실은 식품공학 연구실, 5실은 응용실, 6실은 자동화실, 7실은 통보자료실, 8실은 도안 및 사진실 이었습니다. 저는 2실인 식품보약화 연구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연구실 실장은 조두형 박사였는데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졸업생 출신으로는 저와 박혜순, 이현숙 연구사가 있었고 평양의학대학 출신으로 김광빈, 이창희, 오현, 류중삼 연구사들이, 그리고 연구조수 2명을 포함하여 10명이 있었습니다.

산하 구본해 박사를 조장으로 한 '고려의학치료센터'의 5명까지 합치면 연구실 인원은 모두 15명이었습니다. 박혜순 연구사의 아버지는 중앙당 조직 부 과장이었고 이현숙 연구사의 아버지는 인민무력 부 작전 총 국장이었습니다.

평양의학대학 교수출신인 류중삼 박사는 연구원의 비밀을 평양의학대학 동창생들에게 누설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과 함께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갔습니다. 연구원의 각 연구실의 이름도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려 숫자로만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도 외부에 일절 알려지지 않다 보니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대충 '만수무강연구소'라는 식으로 부를 뿐 '만청산연구원'이나 '청암산연구소' 등 공식적인 명칭을 알 수가 없었고 여기에서 진행되는 연구 내용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한에 입국하여 북한에서 연구하던 일을 계속 해보고 싶어 컴퓨터에서 식품보약화라는 용어를 입력 하여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연구라 해도 한국에서는 식품보약화라는 표현을 어디서도 쓰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연관 검색 어를 찾아보는 과정에 약선(藥膳)과 동화식품이라는 명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약선은 식 재료와 약재료의 성질, 맛, 색, 향을 상호 배합한 조리가공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노화방지와 강장효과를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며 옛 우리 선조들은 어떤 병이든 먼저 음식으로 치료를 하였습니다. 음식치료가 안 될 때 약을 사용하는데 이는 약품의 부작용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주장되며 도입된 식품가공법입니다.

약선은 식 재료와 약재를 함께 조리한 보약 음식으로 사기오미(四氣五味)의 특성을 가집니다. 사기(四氣)는 한(寒), 열(熱), 온(溫), 량(凉)의 네 가지 성질로 차고 뜨거우며 따뜻하고 냉기를 품기는 음식의 특징을 의미했습니다.

오미(五味)는 산(酸), 고(苦), 감(甘), 신(辛), 함(鹹)으로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을 뜻했습니다. 약선은 지금으로부터 4백년 전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의학자 허준 선생이 쓴《동의보감》탕액 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허준은 병의 6할은 음식 때문이라고 보고 음식의 식 재료로 물, 곡식, 날짐승, 길짐승, 물고기, 곤충, 과일, 채소에 대해 서술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먹으며 살아가는 음식 재료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4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서 사냥과 채집,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현대인들은 대다수가 도시의 콘크리트 위에서 살면서 나무의 이름도 잘 모르고 산나물도 구별할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적에 자연과 더불어 살던 우리 선조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에서 나는 각기 다른 식 재료와 그의 효능에 대하여 몸으로 깊이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인공적으로 재배하고 비료와 농약을 치는 방법을 그때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약선에서 밝힌 음식조리법은 예로부터 왕이나 양반들의 밥상에서 늘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김씨 일가를 위해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식품보약화는 약선과 같은 방식이지만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식품가공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약선이 단순히 식 재료와 약재료의 조합이라면 식품보약화는 가축이나 남새(야채)에 약재를 직접 투입하거나 비료처럼 스며들게 하여 생체 1차 가공을 거쳐 고기와 알, 우유, 남새에 유효성분이 동화(同和)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가축이나 남새의 생산과정에서 잘못 준 비료가 허공에 증발하는 것과 같이 귀한 약재료의 유효성분이 많이 소실됩니다. 때문에 자칫 원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싸질 수 있다는 중요한 단점이 있습니다.

1991년 김정일은 비만으로 배가 우스울 정도로 불룩 나오고 체지방이 쌓여 동맥경화증 위험이 높아지자 만수무강연구소들에 치료대책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 통보자료실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달맞이꽃씨에서 추출한 기름이 동맥경화에 좋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운곡목장에서 키우는 가축들에 달맞이꽃 종자 유를 먹여 건강에 좋은 고기와 알, 우유를 생산할 것을 당시 책임서기관이었던 정하철을 통해 하달하였습니다.

달맞이꽃 종자 유는 그 속에 포함된 감마리롤렌산으로 인체 혈관 안에 쌓인 유해 콜레스테롤을 녹여서 배설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달맞이꽃은 염증과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 치료에도 상당한 효능을 보입니다.

우리 성인의 몸 속에 분포되어 있는 혈관의 길이는 약 12만 km인데 지구 둘레는 약 4만 km입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혈관을 연결하면 지구를 3바퀴나 돌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노화는 혈관의 노화로부터 발생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수도관에 녹이 쓸어 자주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막히는 현상과 꼭 같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혈관을 녹 쓸게 하는 유해물질은 여러 콜레스테롤 성분 가운데서 인체에 해로운 콜레스테롤 성분입니다.

인체에 해로운 콜레스테롤이 침착 되어 굳어지면 뇌 속의 모세혈관이 터져 뇌출혈을 일으키고 혈소판이 굳어져 뇌혈전과 심장경색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모세혈관 파괴로 인한 뇌혈전과 심장경색은 인간을 급사하게 만듭니다.

만청산연구원 식품보약화실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운곡 특수목장에서 감마리놀렌산이 높게 포함된 달맞이꽃 종자 유를 소와 돼지, 닭에게 먹여 고기와 계란, 우유의 건강기능성 질을 높이고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남한에서는 달맞이꽃 종자 유를 건강기능성 식료품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37.5g의 기름이 3백개의 캡술에 들어 있습니다. 북한의 술병과 같은 500ml짜리 병으로는 64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한 병에 6백불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비싼 달맞이꽃 종자 유를 고기용 소와 젖소, 3천여 마리의 토종 닭, 150여 마리의 돼지사료에 첨가 하는 량은 5만 달러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고기나 우유를 정상 생산하려면 해마다 20만 달러어치의 달맞이꽃 종자유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김정일의 지시로 운곡목장에서 달맞이꽃 종자 유를 먹인 소고기와 닭고기, 계란, 우유를 생산할 때 북한의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었습니다. 거리 곳곳에 굶어서 숨진 인민들의 시신이 전쟁을 치른 것처럼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휴가 차 고향에 가보니 고등중학교 동창인 우리 학급 인원 42명중 이미 6명이 굶어 죽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의 텔레비젼(TV)과 방송들에서는 김정일이 쪽잠과 줴기 밥으로 끼니를 에운다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직 세계에 아무리 큰 부자라 해도 운곡목장과 같은 방법으로 생산한 고기와 남새는 맛보지 못합니다. 운곡목장에 들어가는 달맞이꽃 종자유 값이면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에서 굶어 죽은 수많은 인민들을 살려 냈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개인을 위해 그렇게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시설을 만들었다면 양심적인 세계의 인류가 절대로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달맞이꽃을 이용한 식품보약화는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와 생산물들 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북한이라는 땅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은 그렇게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옥 같은 곳입니다. 장차 통일 된 우리민족의 역사가 김씨 일가의 이 같은 반인민적 죄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만수무강연구소가 진행한 연구자료와 함께 역사에 새겨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