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 개성공단 건설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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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남북교류와 사람들>의 진행을 맡은 노재완입니다. 매주 목요일 이 시간에 방송되는 <남북교류와 사람들>에서는 남북경제협력과 대북지원 사업 등으로 북한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남북교류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 여러분이 만나게 될 주인공은 2000년대 중반 개성공업지구 건설에 참여했던 토목 기술자 김상종 과장입니다. 최근 남북관계 악화로 개성공업지구 사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인데요. 초창기 공업지구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3년 가까이 지냈던 북한 생활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김 과장님, 안녕하세요?

김상종: 네, 안녕하세요.

기자: 요즘은 어떤 일을 하세요.

김상종: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계속 건설일을 하죠. 개성공업지구 조성이 끝나갈 무렵 저는 회사를 옮겼습니다. 아쉽게 마무리 못하고 나왔습니다. 회사를 옮긴 뒤 여러 공사를 맡아 일을 해왔는데요. 지금은 모 기업에서 지하철 공사를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시군요. 개성에서는 몇 년 근무하셨어요?

김상종: 연도로 따지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일했고요. 정확히 따지면 2년이 조금 넘습니다.

기자: 요즘 개성공업지구가 사업이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초창기 공업지구에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생각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상종: 그저 안타깝죠. 개성공단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상당히 기대했었는데요. 정말 개성공단이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오래 남을 것으로 생각해 역사적 사업이라고도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거든요. 당시 남북관계가 좋아서 1, 2, 3단계까지 진행되면 여기서 정년퇴임 하자고 농담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큽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마음이 아픈데 공단에서 사업하고 계시는 기업인들은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아플까요. 빨리 가동이 재개돼야 할 텐데 정말 걱정입니다.

기자: 개성공업지구 건설에 참여했던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상종: 일단 회사에서 가라고 하니까 갔죠..(웃음) 북한이라는 소리에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더구나 당시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솔직히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고, 제가 남북통일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당시 일과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상종: 아침에 체조하고 현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차로 이동을 했습니다. 1단계 면적이 100만 평 정도 되니까 걷기에는 좀 무리가 있죠. 아침에 일과를 점검하고, 북한 노동자들과 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같이 했습니다. 점심시간만 빼놓고 늘 같이 지냈습니다. 물론 밥은 따로 먹었습니다. 저는 일이 끝나면 따로 갈 곳이 없어 숙소로 곧장 들어가서 위성방송으로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잠을 잤습니다. 뭐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죠.

기자: 그 당시 개성에서도 남한 텔레비전을 직접 볼 수 있었군요?

김상종: 네, 모 방송 케이블을 통해서 남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고요. 일과 후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기자: 공업지구 건설에 참여했던 북한 노동자들의 생활도 얘기해주세요.

김상종: 북한 노동자들의 첫인상은 좋았습니다. 시골 아저씨 같은 느낌이라 할까요.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정겨운 사투리 등. 같이 지내보니까 역시 같은 민족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만 빼놓고는 정말 사이좋게 잘 지냈습니다.

기자: 북한 노동자들의 작업 태도와 기술 수준은 어땠습니까?

김상종: 북한 노동자들은 딱히 기술 수준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솔직히 기술이 거의 없었거든요. 처음에 북한 노동자들을 저희가 일일이 가르쳐 주다 보니 일이 좀 더뎠습니다. 하지만 말이 서로 통하다 보니 일을 배우는 속도가 외국 노동자들에 비해 빨랐습니다. 나중에는 잘하니까 말이 필요 없었고요. 물론 정치적 부분이 있어 약간의 한계는 있었지만,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기자: 공업지구 건설 과정에서 생긴 재미난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북한 기술자들과 일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잠깐 소개해주시죠.

김상종: 저희가 휴가 갔다가 오면서 줄 게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라면을 사다 주었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점심을 먹을 때 국물 없이 그냥 밥에 반찬만 먹더라고요. 그래서 라면을 사다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북한 노동자들이 라면을 먹어보고 정말 맛있다고 라면 만든 사람한테 상을 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기자: 혹시 북한 노동자들과 함께 회식 같은 것도 했는지요?

김상종: 북한 노동자들은 일과 시간이 끝나면 모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회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분이 좀 아쉽더라고요. 회식 때 술 한잔하면서 좀 더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이게 분단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기자: 공업지구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김상종: 건설에 필요한 장비와 자재가 없을 경우 우리 남한 같으면 사오면 되는데 장소가 북한이다 보니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자재 수급과 장비반입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개성에 전기가 들어오지만, 처음에는 전기가 없어 발전기로 생활하다 보니 기름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내 업과 야간업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전기로 전기를 공급하다 보니 자주 전기가 나가서 컴퓨터에 별도의 전원장치를 부착해서 전기가 나가도 바로 컴퓨터가 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기자: 이렇게 힘든 일도 있었지만, 반대로 보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상종: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땅을 밟았고, 지금 여기서 흘린 땀이 나중에 통일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언젠 가는 통일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죠. 그리고 없었던 도로가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먼지도 없어지고, 단지 조성이 완료된 곳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하나둘씩 공간들이 메워져 가는 것들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기자: 개성공업지구 발전을 위해선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김상종: 일단 개성공업지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북한 쪽에서 개성공단을 협상의 빌미로 이용하는 경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에 관해 처음 약속한 사항들에 대한 책임 있는 이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더라도 개성공단에 입주하고 싶은 기업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저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언제가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면 다시 북한땅에 들어 가서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정치적인 부분이 원만히 해결되어 남은 2, 3단계 공사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계속 생겨 남북의 진정한 평화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 네, 저도 과장님의 그 소망 꼭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남북교류와 사람들' 오늘은 김상종 과장님과 함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과장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상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