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과 따뜻함을 나누는 연탄나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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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2014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청취자 여러분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한겨울인 요즘 난방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오늘은 지난 2004년부터 남한과 북한의 어려운 주민들에게 연탄을 전달해온 단체가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인데요. 윤유선 운영위원을 만나 연탄나눔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2014년도가 시작됐는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윤유선: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 남북관계 악화로 요즘 많이 어려운 상황인데요. 북한에 연탄 보내기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윤유선: 날이 추워지면 연탄 생각이 간절합니다. 빨리 갖고 올라가야 하는데 마음이 앞서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한 달 전에도 대북 연탄 지원을 위해 우리 정부에 반출 승인을 요청했는데요. 아직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북한 측에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거기도 답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남쪽에서 승인이 난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게 북쪽의 정국이 안정돼야 뭐든 갈 수 있는데 요즘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자: 북한에 연탄을 지원하지 못해 누구보다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윤유선: 특히 오늘 처럼 추운 날이 되면 마음이 더 아픕니다. 개성이나 금강산에서 저희가 가져갔던 연탄을 북한 주민들과 함께 나르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이렇게 춥게 되면 연탄끼리 얼어서 연탄을 떼면서 날라야 하는 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기자: 그러면 대북 연탄 나눔이 중단된 것은 언제입니까?

윤유선: 연평도 사건 직후에 저희가 개성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그때 개성 탁아소에 밀가루 등과 함께 지원했습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기자: 과거 연탄을 지원할 때 남북 간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했습니까?

윤유선: 남쪽이 6이라면 북쪽이 4라고 보시면 됩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그러면 7:3, 때로는 8:2까지 가기도 했는데요. 평균으로 6:4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항상 남쪽 지원이 더 많습니다.

기자: 그런데 북한에 연탄 보내기는 개성과 금강산 지역으로만 국한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만 지원하는 이유가 있나요?

윤유선: 저희 대북 지원의 방침이 가능하면 북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창기 2004년에는 금강산관광지구 안쪽의 (온정리) 마을로 갔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거기는 오가는 길에 남쪽 관광객이 북쪽 주민들을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1년 뒤 2005년부터는 개성에도 갔는데요. 당시 개성공단과 개성관광이 진행되면서 북한 주민들을 자주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연탄이 무겁죠. 25톤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양이 6천250장인데요. 물류비가 생각보다 많이 듭니다. 그래서 멀리 가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금강산과 개성 지역에만 연탄을 지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 북한에 연탄을 보낼 때 많이 갈 경우 한 해 몇장 씩 들어갔습니까?

윤유선: 저희는 보통 5만 장 기준으로 사업을 벌입니다. 연탄 5만 장을 보내기 위해선 25톤 트럭 8대가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많이 지원할 때는 24대, 그리고 30대까지도 간 적이 있습니다.

기자: 남한에서 연탄을 실은 트럭이 북한 현지까지 직접 가는 거죠?

윤유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개성의 경우 봉동역까지 갑니다. 봉동역은 개성 근처에서 물자교역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봉동역의 물동량은 일제시대 때도 개성역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개성역은 큰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그렇게 해서 봉동역까지 가면 거기에 북한 주민들이 하역 작업을 하려고 나와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트럭이 북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까지 들어갈 수 없나요?

윤유선: 주민들이 사는 마을까지 들어가기엔 25톤 트럭이 너무 큽니다. 봉동역을 가는데도 길목에 작은 다리가 있는데 약해서 지나가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트럭이 원활히 갈 수 있게 다리를 좀 보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는데요. 일단은 북한의 도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봉동역에서 연탄을 다 내리면 미리 준비된 작은 트럭과 손수레로 마을까지 연탄을 나릅니다. 개성 같은 경우 오전에 하역을 하고, 보통은 점심 때 봉동역 금방이나 개성 시내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요. 우리가 점심을 하고 나오다 보면 작은 트럭에다 연탄을 실고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요. 마을에도 할당된 연탄이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금강산 같은 경우에는 온정리 마을 한 가운데까지 들어가서 하역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은 트럭들이 나와 있어 주변의 각 마을로 운반해 갔습니다. 저희가 갖고 간 25톤 트럭이 얼마나 크냐 하면은요. 서울 시내에서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고속도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큰 트럭인데요. 트럭에 올라가서 보면 그 안에서만 길이가 10미터나 됩니다. 그 정도로 큰 트럭이다 보니까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북한에선 마을 안까지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5톤이나 1톤 트럭으로 가기에는 연탄의 양이 너무 많고요. 또한 작은 차량으로 많이 가다 보면 세관 통과 시 불편함이 많습니다.

기자: 짧은 만남이지만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금방 친해질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윤유선: 저희가 연탄을 갖고 갔을 때 처음에는 북한 주민들이 하역을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입니다. 저희가 북한 주민들과 함께 연탄을 내리게 된 것은 1~2년 후의 일입니다. 그것도 처음엔 1대 정도만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계속 함께 일하고 싶다고 요구하니까 북한 주민들을 따로 선별해 저희가 하역하는 차에 6명 정도를 보내주기도 했는데요. 나중에는 1대가 더 늘어 2대를 같이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차량을 같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힘든 일을 나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힘든 일을 같이 하니까 정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자: 끝으로 2014년 새해 소망 듣겠습니다.

윤유선: 저희 처럼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들의 소망은 오로지 한 가지입니다. 북쪽에 많이 가서 인도적 지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이게 저희 단체의 복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러한 복을 여러분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아무튼 복 많이 받고, 복 많이 나눠줄 수 있는 2014년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오늘은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의 윤유선 운영위원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유선: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