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대표

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치과병원에서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치과병원에서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RFA PHOTO/노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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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으면서 남북 간의 언어도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상 단어는 물론 전문 용어까지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합니다.

오늘은 오랫동안 치의학 분야에서 남북한 용어를 연구해온 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공동대표를 만나보겠습니다. 이 대표는 과거 금강산관광이 열리던 시절 인근 인민병원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활동도 벌였습니다.

기자: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병태: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근황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병태: 세계에서 1, 2, 3등 안에 드는 치과 사전을 만드는 게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돼서 저의 아들과 함께 이 치의학사전(LEE's ENGLISH-KOREAN-HAN DICTIONARY OF DENTAL SCIENCE&ART)을 발간했습니다. 이것은 영한사전인데요. 표지에 영한한으로 쓴 것은 우리말과 함께 사용되는 한자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전은 본문이 2,164페이지로 돼 있는데, 무게만 4kg이 나갑니다. 이미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보실 수가 있습니다.

기자: 대표님은 북한 치의학 관련 용어집도 과거에 발간하신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병태: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협회 회원 20명이 50만 원씩 내서 함께 만들었는데요. 2006년에 <북한구강의학용어집>이라는 이름으로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책인데 이름만 <북측구강의학용어집>으로 바꿔 따로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책을 만들어서 금강산 인민병원에 갖고 가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표지에 '북한'이라고 쓰여 있으면 가져갈 수가 없잖아요. 남북 당국이 상대방을 부를 때 남측과 북측으로 쓰는 것처럼 저희도 표지와 머리말을 북한이라고 하지 않고, 북측이라고 해서 따로 발간한 겁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남북 분단의 아픔이라고 봐야죠.

기자: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북 간의 차이 나는 용어, 간단히 1~2개만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이병태: 네, 일반 사람들이 들으실 테니까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치아' 또는 '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발'이라고 합니다. 1990년 중국 연변 쪽에 가니까 거기서도 '이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남한에서 말하는 '충치'를 북한에서는 '이삭기'라고 합니다. 또 치과병원에서 이를 다듬는 성냥개비만 한 크기의 쇠붙이가 있는데, 그것을 보통 보(bur)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의사들은 그것을 '뚫개'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드릴(drill)도 마찬가지로 뚫개라고 하고요. 우리가 '치과의사'라고 하는데, 거기는 '구강의사'라고 하죠.

기자: 그렇다면 남북한 치의학 용어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뭘까요?

이병태: 저도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첫째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죠. 남북 분단입니다. 둘째는 분단으로 생긴 남북한 언어학자의 각기 다른 연구가 있을 테고요. 셋째는 외래어 사용의 차이 때문입니다. 북한은 외래어를 러시아어에서, 우리 남한은 영어에서 가져와서 사용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넷째,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치의학에서도 순수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의 어문정책 때문이라고 북측 의사들이 설명했습니다.

기자: 금강산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활동도 벌였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치과 진료는 정기적으로 하신 건가요?

이병태: 2005년 9월 24일 금강산 온정리 마을에 있는 인민병원 구강과에 치과 진료소를 개소하고 진료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료활동은 우리 남북치의학교류협회와 북측 당국자들이 협의해서 이뤄진 거고요. 갈 때마다 치과 의사 4명이 팀을 이뤄 같이 갔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로 해서 다녀왔는데요. 금강산에 갈 때는 저희가 차를 손수 운전해서 갔습니다. 육로를 통해서 말입니다. 남북 당국이 저희를 위해 배려해준 거죠.

기자: 당시 진료한 북한 주민들의 구강 상태는 어떠하던가요?

이병태: 저희가 간 곳은 금강산에서도 동해 쪽으로 치우쳐진 곳입니다. 북한에서 보면 변방 중의 변방이죠.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만족할 만한 구강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오랫동안 자력갱생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15년 전부터는 배급이 아예 중단되면서 치과 관련 의약품도 배급되지 못해 치과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치료받을 사람은 많고, 의약품과 장비는 부족했으니 관리가 잘 안 됐겠죠. 그래서 저희가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우리 일행 중의 마음이 여린 여자 치과 후배는 휴전선 넘을 때마다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 자주 울었습니다. 저도 지금 그 생각하니까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듭니다.

기자: 지금까지 금강산에서 진료한 북한 환자는 총 몇 명 정도 됩니까?

이병태: 저희는 지금까지 금강산에 58차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치료한 사람만 1천240명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방북해 진료활동을 벌였습니다. 이 1천240명 진료 기록은 북한에 다녀올 때마다 우리 통일부에 보고해 기록이 다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남측에서 치과 진료 관련해서 방북한 사람은 치과 의사 말고도 더 있는데요. 예를 들어 치과 기공사, 기계 기술자 등 해서 총 329명이 다녀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의 피살사건이 발생하면서 저희 진료 활동도 멈추게 됐습니다.

기자: 그러면 그 당시 봉사활동은 지금 맡고 계신 남북치의학교류협회가 전적으로 진행했던 겁니까?

이병태: 네, 그렇죠. 앞에서 잠시 설명해 드렸지만, 저희가 방북할 때는 4명이 한 조가 돼서 갔는데 모든 비용은 개인이 각자 부담했습니다. 기계, 기구, 약품 모두 마찬가집니다. 저희는 어떤 단체, 어떤 기관에서도 비용을 지원받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북측의 높은 간부가 묻더군요.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각자 호주머니를 털어서 온 거다"고 설명해 드렸죠. 또 우리 의사들끼리는 그랬죠. "절대로 우리가 하는 일이 봉사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인도주의적 이런 말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 다녀오자고 그랬습니다.

기자: 대표님은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등을 직접 치과 치료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병태: 네, 근방에서 치료하고 그랬던 적은 있는데요. 죄송합니다. 저는 원래 누구누구를 치료했다 이런 말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기자: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공동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병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