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서 前 평화자동차총회사 총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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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수출 품목에서도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높습니다. 사실 북한도 일찍부터 자동차산업에 관심을 두었지만,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2000년대 초 남북 합영회사로 평화자동차총회사가 설립돼 10년 가까이 유지되었는데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측의 평화자동차가 지난해 말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오늘 만나게 될 주인공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북한 평화자동차총회사에서 총사장을 맡아 사업을 운영했던 조영서 박사입니다. 조 전 총사장은 현재 한국에서 남북교역연구협의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조영서: 네, 안녕하세요.

기자: 평화자동차총회사가 지난해 말 문을 닫았습니다. 총사장 출신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조영서: 북한에서 사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들이 참 많습니다. 사업 중단이 단지 북의 문제였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이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에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알기가 어렵죠. 2년간의 총사장 경험을 비춰 볼 때 처음부터 이익에 너무 얽매일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부임 당시에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던 평화자동차에 활기를 찾아주려고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저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붓기도 했는데요. 결론적으로 제가 좀 더 도와주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죠.

기자: 평화자동차가 계속 적자를 보였다가 한 때 또 흑자를 보여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그런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갑자기 평화자동차를 그만두시게 된 이유는 뭡니까?

조영서: 사실 말씀 드리기가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혹시 기회가 돼서 평양에 간다면 평화자동차를 관심 깊게 지켜봐 주고, 도와주신 북쪽 분들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이 자리에선 말씀드리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자: 북한 평화자동총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요?

조영서: 저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회사에서 10년 정도 근무한 후 중국에서 사업하고 공부도 했는데요. 중국의 급성장을 몸으로 느낀 후에 뭔가 이 귀한 경험을 좀 더 큰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런 경험을 발휘할 계기가 생겨서 북한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인이기 때문에 명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북한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고,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북한 박사까지 공부하였으니 북에 가면 아주 쉽게 일들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평양에 도착하니 좋은 느낌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기자: 좋은 느낌이 한 순간에 사라진 이유는 뭡니까?

조영서: 2008년 1월에 평양에 처음 들어갔는데요. 2008년과 2009년은 너무나도 다른, 즉 천당과 지옥의 경험이었습니다. 2008년 1월에 편안한 마음으로 평양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정말 충격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던 북한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남쪽 사람이 총사장이라는 것에 북한 사람들이 표현은 안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매우 참기 어려운 모욕을 안겨 주기도 하였습니다.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죠. 그래서 병원에 한 번 실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2008년 초기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방향을 잃은 저는 매우 낙담하기도 하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문해 보았습니다. "중국 생활 10년에 중국사회과학원 북한박사인 나도 못한다면 누가 이러한 일을 하겠는가? 그리고 나는 젊지 않은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스스로 답을 얻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니까 2008년 하반기부터 좋은 변화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2008년 하반기부터 좋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그때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동차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나름 노력하셨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조영서: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이기 때문에 판매 실적을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판매에 노력하지 않으니 주문이 줄어들고, 주문이 없으니 생산이 줄어들고, 생산이 줄어드니 노동자들을 노동알선기관에서 데려가 버리니 회사는 계속 위축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판매를 독려하니까 주문이 증가하고, 생산이 늘어나고, 노동자 수가 늘어나니 회사는 성장하고, 또 그 결과로 직원들의 월급과 복지가 증가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 저의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경영포인트였습니다.

기자: 끝으로 일반 북한 주민들이 보는 평화자동차는 어떤 회사였나요?

조영서: 부임 초기 북한 사람들의 시각은 가장 현대적인 자동차 공장이지만, 10년 동안 큰 발전을 보여주지 못해 특별한 기대 심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9년부터는 큰 기대를 보였었고, 북한 주민들은 독자모델 승용차를 갖고 싶어 했었습니다. 설비는 많이 부족했지만, 평화자동차의 기술자들은 매우 성실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같았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지금도 매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오늘은 조영서 전 평화자동차총사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바쁘실 텐데 오늘 회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영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