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남한의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교역 규모는 10억 달러에 가까웠습니다. 그때가 최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2010년 남한에서 5.24 대북조치가 발표된 뒤 남북교역은 거의 중단됐습니다.
남북교역이 중단되기 전 한국에는 남북을 오가며 교역을 하던 많은 경제일꾼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1989년부터 2004년까지 LG상사에서 대북 업무를 이끌었던 이종근 전 LG상사 부장을 만나보겠습니다. 지금은 남북경협 전문가로서 남북교역 업체를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종근: 안녕하십니까.
기자: LG 상사가 처음 북한과 접촉한 것은 1989년쯤이라고 들었습니다. 대기업인 LG 상사가 대북사업을 벌인 이유는 뭡니까?
이종근: 당시 저희 회사가 다른 곳에서 수익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업 전망이 있을 것 같아서 북한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기자: LG상사는 광물 자원을 시작으로 가리비 양식, 자전거 조립, 텔레비전, 그리고 의류까지 안 해본 게 없습니다. 당시 교역을 통해 회사는 돈을 많이 벌었나요?
이종근: 전체로 따지면 적자를 자주 봤습니다. 그러나 품목별로 기간에 따라 수익을 올릴 때도 있었습니다.
기자: 어느 품목에서 수익을 올렸나요?
이종근: 의류 가공 부문에서 수익을 좀 올렸습니다.
기자: 그게 언제쯤인가요?
이종근: 2000년대 들어 와서입니다. 그 이전에는 저희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요. 또 저희의 실수로 손해를 좀 봤습니다.
기자: 그러면 의류 위탁가공은 평양이나 남포 등에서 했나요?
이종근: 지역은 저희가 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가 원부자재를 넘겨주면 북측에서 품목별로 적합한 공장을 선정해 생산했습니다. 대부분 평양 주변 공장에서 생산했습니다.
기자: 그 당시 북쪽의 파트너는 어떤 회사였나요?
이종근: 은하무역, 대동강무역, 봉화무역 등과 주로 거래했습니다.
기자: 1995년부터 1999년까지 5년간 북경 지사에 나가 있는 동안 대북 접촉을 전담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북한 사람들과 접촉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뭐였습니까?
이종근: 말은 통하는데 생각하는 관점이나, 사업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컸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어떤 사업을 상담할 때 남쪽에선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으로 상담을 생각하게 되는데 북쪽에서는 항상 결론을 먼저 요구합니다. 하겠느냐 말겠느냐 늘 이런 식입니다. 그런 것을 조절해 나가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물론 제시한 대로 사업이 잘되면 좋겠지만, 사업이 늘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남북은 이렇게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기자: 1990년대까지 그렇게 대북 업무를 하다가 2004년에 한국무역협회(KITA)로 직장을 옮겨 남북교역과 관련해서 연구활동을 하셨습니다. 남북교역 동향을 분석하시고 그랬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문가로서 2000년대 남북교역을 평가하신다면?
이종근: 2000년대 남북교역은 활발했습니다. 당시 참여한 업체들도 많았죠. 2000년 이전에는 50개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정책에서 햇볕정책이 나오면서 업체들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개성공단이 조성되면서 중견 기업들이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지 평양 주변에서 임가공 사업을 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영세했습니다. 반면 개성공단은 투자가 따라야 하니까 아주 영세한 기업들은 진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당시 북한이 대북 사업 창구를 더 넓혔으면 더 많은 업체가 진출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창구로 민경련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북한과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북한과 접촉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어디서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도 모르고..
기자: 금액으로 따져서 가장 비중이 높은 교역 품목은 뭐였습니까?
이종근: 아무래도 모래가 가장 많았죠. 통계 숫자로 교역 금액만 1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남북관계 단절 이후 대북교역 업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종근: 5.24조치 이후 남북교역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중단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사실 그전까지 대단히 활발했습니다. 특히 5.24조치가 내려지기 2, 3년 전부터 수익을 올리는 업체들이 늘어났습니다. 즉 2006년, 2007년, 2008년 이때죠. 그래서 이 시기 위탁가공 무역을 하는 업체나 심지어 단순히 물자교역을 하는 업체도 꽤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15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얻은 성과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시기 남북한 사업하는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이 잘 됐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24조치가 내려지면서 모든 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기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언제든 다시 교역이 활발해질 텐데요. 북한의 열악한 교역 환경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종근: 우선 통신이 잘돼야 하겠죠. 통신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교역하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을 거쳐서 모든 전화와 팩스가 오가고 했는데, 무척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남북교역은 아직까지 간접무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합니다.
기자: 끝으로 요즘 남북관계 단절에도 불구하고 대북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남북교역 업무를 오랫동안 한 전문가로서 이분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해줄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종근: 남북교역을 한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과거에는 정보가 없어서 대북사업을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5년간의 축적된 정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어디에 생산공장이 있고, 북한 노동자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이젠 대충 정보가 쌓여 알게 됐습니다. 지금 새로 시작한다면 너무 무모하게 자기 계획하에 추진하기보다는 과거 축적된 정보를 먼저 열심히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 무역협회라든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같은 기관으로부터 자문하고 잘 상의하면 시행착오도 줄이고,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오늘은 이종근 전 LG상사 부장을 만나봤습니다. 대표님, 오늘 회견 감사합니다.
이종근: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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