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춘 IBF 아시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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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2000년대 중반 남북은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체육교류도 활발했습니다. 그 가운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남북 권투대회가 눈에 띕니다.

오늘은 당시 권투대회를 주관하고 이끌었던 이세춘 전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보겠습니다. 이세춘 전 총장은 현재 국제권투연맹인 IBF 아시아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 총장님, 안녕하세요.

이세춘: 안녕하세요.

기자: 2004년 중국 심양을 시작으로 평양(2005), 금강산(2006), 개성(2007) 등에서 남북 권투대회가 열렸습니다. 남북 권투대회는 어떻게 해서 추진하게 됐나요?

이세춘: 북한과 접촉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던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님을 저희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으로 모시면서 성사가 됐습니다.

기자: 당시 북한이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북한의 반응 어느 정도였나요?

이세춘: 북한에서 남북이 함께 권투 경기를 하고, 더구나 세계타이틀매치까지 열린다는 것은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특히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릴 때는 대단했었죠.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었는데 2만 명이 넘게 와서 성황을 이뤘습니다. 열기도 대단히 높았고요.

기자: 원래는 류경체육관보다 작은 곳에서 경기할 예정이었는데 북한 지도부가 경기 전날 장소를 바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이 경기장을 변경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세춘: 당시만 해도 평양에서 권투경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열렸던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북한 선수가 챔피언에 오르면서 이듬해 평양에서 열리게 됐죠. 북한 당국이 타이틀 방어전을 북한 인민들에게 널리 선전하겠다는 뜻에서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리게 됐던 겁니다.

기자: 내용적으로도 평양 권투대회는 의미가 있었던 게 미국 선수가 평양에서 경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북한에서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북한이 이를 허용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세춘: 북한이 처음부터 허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회 직전 북한은 미국 국기는 물론 국가도 연주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끈질기게 설득했죠. 안방에서 벌어지는 국내 경기도 아니고, 전 세계에 알리는 경기다. 더구나 세계타이틀매치에서 상대방 나라의 국가가 연주되지 못하고, 국기가 게양되지 못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경기가 무산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밀고 당기기를 며칠 하다가 결국 경기 당일 아침에 북한이 경기를 하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그래서 대회가 열렸죠. 당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또 저희가 그랬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국제적인 절차에 따라 권투 경기를 하면 6자회담 결과에도 좋은 영향을 주면 줬지 나쁘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남북 분단 이후 최초로 열리는 권투 행사였는데, 거기서 미국 선수가 나와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올라간다는 것은 이런 문화 체육 활동에서나 가능한 얘기이지, 정치적으로는 명분도 없고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 세계타이틀매치는 국제적인 규칙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 경기인 만큼 정치적인 이유로 규칙을 어길 수 없는 거잖아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어떤 경우에도 금메달을 딴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고 국가가 연주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세춘: 맞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희도 설득했습니다.

기자: 그때 많이 긴장하셨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타이틀매치가 무산될 수도 있었잖아요.

이세춘: 그렇습니다. 북한이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전날에도 12시가 지나고 거의 1시까지 협의를 했으니까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대회가 열려서인지 보람은 있었습니다.

기자: 그 당시 북한 여자권투가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 챔피언을 3명이나 배출했습니다. 북한 여자권투가 실제로 그렇게 강했나요?

이세춘: 그럼요. 아마추어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들이고, 거기서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던 선수들입니다. 그리고 프로로 전향해서 세계 챔피언에 오른 선수들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세계적인 선수들이죠.

기자: 챔피언에 오른 북한 선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이세춘: 김광옥 선수입니다. 정말로 기량이 탁월했습니다. 링에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면서 경기를 주도 했던 선수로 기억됩니다.

기자: 또 류명옥 선수, 그리고 어떤 선수가 있었죠?

이세춘: 최은순 선수가 있었죠.

기자: 네, 바로 그 3명이 세계 챔피언에 올랐군요. 그런데 어느 날 북한이 세계 프로권투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뭡니까?

이세춘: 글쎄요. 직접 제가 보지 못해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짐작된 것은 북한에서 책임지고 행사를 주선할 사람이나 기관이 없다 보니까 더 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그런데 공산국가인 북한에도 프로권투협회가 있습니까?

이세춘: 원래는 없었죠. 그러다가 남북 권투대회가 열리고 북한이 세계 프로권투에 나가는 과정에서, 특히 권투에 대한 북한 주민의 열기가 높아지다 보니까 북한에도 자연스럽게 프로권투협회가 출범하게 됐죠. 북한 프로권투협회 정식 명칭은 조선프로권투협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권투대회가 열리면서 당시 남북교류에도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남북 권투교류의 의미와 평가를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세춘: 정치적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권투대회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 스포츠 분야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게 체육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금 맡고 계시는 IBF(국제권투연맹) 아시아본부에서 북한 권투 선수들을 다시 세계 시장에 나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광옥, 류명옥 같은 훌륭한 선수가 나오길 기대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세춘: 네, 그렇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유망한 선수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선수들이 국제무대에 나와서 활동하면 북한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희 IBF 아시아 본부에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오늘은 이세춘 국제권투연맹 아시아 사무총장을 만나봤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이세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