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규 前 평화항공여행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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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남북관계가 원만했던 2000년대 초 남한에서는 관광으로 평양을 찾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를 위해 남한에서는 평양관광 전문업체인 평화항공여행사가 설립됐고, 서울과 평양을 잇는 직항로가 열려 금강산에 이어 평양까지 일반인들이 손쉽게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당시 평양관광을 맡아 이끌었던 김병규 전 평화항공여행사 총괄이사를 만나보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김병규: 네, 안녕하세요.

기자: 남한 사람들의 평양관광은 언제 처음 시작했고, 전체 관광 인원은 몇 명 정도였나요?

김병규: 2003년에 시작해서 이듬해 마무리됐습니다. 약 2천 100명이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기자: 그러면 한 회당 몇 명 정도가 간 겁니까? <

김병규: 남한의 아시아나항공과 북한의 고려민항을 이용해서 갔는데요. 항공기 좌석이 130석이다 보니까 한 번에 120~130명 정도가 갈 수 있었습니다.

기자: 보통은 4박 5일로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관광 코스, 그러니까 관광 노정은 어땠습니까?

김병규: 북한 텔레비전에 나오는 평양의 명소들은 대부분 둘러봤고요. 그다음에 지방으로 가서 용문동굴이나 기타 유적지들을 구경했습니다. 특히 정주, 안주 같은 외곽도시도 관광코스에 포함됐습니다.

기자: 그때 백두산도 구경했다고 들었습니다. 백두산에 가기 위해선 항공편을 이용했나요?

김병규: 네,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평양으로 간 다음 거기서 고려민항을 타고 백두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자: 4박 5일 기준으로 했을 때 관광 금액은 어느 정도 했습니까?

김병규: 그 당시 다소 비싸다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희소성이 있어서 약 220만 원 했는데요. 당시 미화로 하면 2천 달러 정도 했습니다.

기자: 가격이 비싼데도 많은 사람이 평양관광을 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병규: 그전까지 북한 관광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관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폐쇄된 국가입니다. 평양과 다른 지방 도시를 구경한다는 것은 기존의 북한 관광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관광객 중에는 이산가족들이 꽤 많았는데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설움을 달랜다는 차원에서 많이 찾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평양관광을 주도했던 평화항공여행사는 북한에서 자동차 사업을 하던 평화자동차가 출자해 만든 여행사가 맞죠?

김병규: 네, 맞습니다. 평화항공여행사는 평화자동차가 투자해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기자: 평양관광을 추진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평양관광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병규: 사실은 저희가 금강산 관광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현대와의 경쟁에서 밀려 평양으로 눈을 돌리게 됐던 겁니다. 당시 통일부가 사업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한 곳을 선정해야 했는데, 결국 현대에 사업권을 주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대신 북한 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평양관광에 뛰어들었던 겁니다.

기자: 일부에선 힘의 논리에서 금강산 관광을 빼앗겼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병규: 기본적으로 저희는 현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기업이고요. 저희가 먼저 대북 관광을 추진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로선 국내 사업 기반과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현대가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그렇게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앞서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관광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관련해서 가장 기억나는 일화가 있으면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김병규: 그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의 실향민들이 오는 것을 예민하게 생각했습니다. 실향민들은 대부분 연세 든 분들이었기 때문에 개인행동을 할 수 있고, 또 개인 목적을 위해서 뭐든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려했던 것으로 봅니다. 남한 관광객들을 통제해야 하는 북한 당국으로선 당연히 실향민들의 방문을 꺼릴 수 밖에 없겠죠. 그러나 다행히 평양에 가서는 통제에 잘 따라주었고, 개인행동도 자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은 한 할머니가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관광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아들을 찾고 싶어서 그랬겠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아들에 대해 물어보고 그랬는데요. 할머니는 자신의 옷에도 아들의 사진을 넣고 다니면서 마찬가지로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기 아들을 아느냐고 물어보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아들이 찾고 싶고 그리웠으면 그렇게 했겠나 생각하니까 지켜보는 저도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기자: 할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북한 안내원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김병규: 북한 안내원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해주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관광 중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장소에선 설득하고 그랬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보면 할머니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같고요. 나이가 든 노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데, 그게 잘못됐다고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자: 끝으로 평양관광의 의미와 평가를 간단히 짚어주시고요. 남북관계가 풀려 평양관광이 다시 열리게 되면 과거 평양관광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병규: 당시 평양관광을 함으로써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사회상과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동시에 많은 NGO 단체들도 우리의 관광코스를 따라서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고요. 결국 평양관광이 갖는 의미라고 한다면 남한 국민들이 북한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회복돼 평양관광이 다시 열리게 된다면 더 많은 곳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를 든다면 구월산, 칠보산, 백두산, 원산 등의 아름다운 관광지가 더 개발됐으면 좋겠고요. 이렇게 오가다 보면 남북관계도 더 좋아질 거로 생각합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김병규 전 평화항공여행사 총괄이사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이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병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