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수 (주)에스엔그린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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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한국 정부의 5.24 대북조치가 있기 전까지 수 많은 단체가 북한과 교류를 했습니다. 이 중에는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 애쓴 단체도 있는데요. 북한의 나무 심기 운동에 동참하고 온실 양묘장 시설을 세우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주식회사 에스엔그린텍입니다. 이 기업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임병수 사장은 온실부터 농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대북 민간지원 단체들과 함께 공급했습니다. 임 대표는 현재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사무총장도 맡고 있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임병수: 네, 안녕하세요. (주)에스엔그린텍 대표이사 이자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병수입니다.

기자: 에스엔그린텍은 어떠한 회사입니까?

임병수: 저희 회사는 농업용 자재 및 산림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로 온실부터 농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특히 해외 농업부분과 산림 부분 ODA 사업으로 농업용 온실구축사업, 사막화방지 사업으로 러시아, 몽골, 중국, 북한 등 여러 곳에 우리의 우수한 자재들을 공급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기자: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북한 내륙으로 진출했던 대부분의 경협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표님의 회사도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임병수: 2008년 박왕자 씨 피격사건,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말미암아 5.24조치가 나왔는데요. 남북교역업체의 현황을 보면 개성공단 123개 업체, 금강산 57개 업체, 평양 내륙기업은 직접 투자가 146개 업체 일반교역이 802업체로 총 합쳐서 1,048개 업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기업이 널리 알려졌지요. 남북경협은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위탁가공은 20여 년 동안 설비 투자 및 기술 전수로 북한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는데요. 현재 그 설비 및 인원들을 중국과 유럽 업체들이 활용하고 있고 남북경협 업체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산한 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수산물 시장에서 일용직 하시는 분, 제가 아는 1세대 경협업체 회장님은 그 연세에 요즘 보험을 팔고 다니십니다. 저 역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산림녹화를 위한 온실 개발에 힘쓰고 기술 지도도 직접 했는데요. 어떻게 해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임병수: 새마을운동중앙회와 조립식 온실을 가지고 남포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황해도를 바라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산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곳이 있더군요. 돌아와서 고민하고 있는데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해서 관심을 갖고 돕는 '평화의 숲'이라는 민간단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자체를 보냈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나무들이 고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지에서 기를 수 있는 양묘장을 산림과학원 박사님의 도움으로 함께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계기로 평화의 숲과는 금강산양묘장, 겨레의 숲과는 평양중앙양묘장, 상원군양묘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는 개풍양묘장, 남포채소단지등을 만들어 산림녹화에 많은 부분 진척이 있었습니다.

기자: 이 밖에도 함께했던 대북 민간단체들은 어떤 곳이 있었나요?

임병수: 1997년 유진벨 결핵요양소 비타민공급을 위해서 개발한 조립식온실 납품을 시작으로 새마을중앙회와 국제월드비전에 가족 텃밭용조립식 온실을 납품했고요.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등대복지회의 평양장애자복지관 리모델링사업과 한국대학생선교회를 통해서 보냈던 리어카와 손수레입니다.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농기구를 중국산이 아닌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여 보낸 적이 있는데요.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자: 직접 본 북한의 양묘장은 어떻습니까?

임병수: 당시 제가 보기로는 노지 양묘가 대부분이고요. 온실 양묘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벽온실 형태의 온실 안에서 양묘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하지만 현지 근로자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와 다름이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병수: 2003년 평양 중앙양묘장 사업 할 때입니다. 보통 양묘장 건설하기 위해서는 15일 정도 소요되는데 8월 가장 더울 때 마침 가져간 전기공급장치가 고장이 난 겁니다. 다행히 전기 기술자의 도움으로 고쳤지만, 이번에는 120㎜의 폭우가 내렸습니다. 그때 온몸에 진흙으로 누가 남측사람인지, 북측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때 서로 옷을 털어 주며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스프링클러시스템 작동 때 멀리서 기도만 하고 있는데 모두 소리를 지르더군요. 현지 지배인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멀리서 오셔서 고생만 하고 가신다고. 감사하다고 얘기를 들었던 게 가장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기자: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도 일하고 계신데요. 최근 북한농업 관련해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협동조합을 설립한 이유는 뭡니까?

임병수: 이름은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입니다. 남북경총은 여러 개의 협의체로 구성돼 있는데요. 위탁가공협의회, 지하자원골재협의회, 농산물협의회, 수산물협의회 등 남북경협을 했던 분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그중에 농산물을 반입하셨던 회사들이 이번에 단순 반입뿐만 아니라 현지 기후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여 각 지역의 이름을 붙이고 판매함으로 남북의 이질감 회복과 북한의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상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남북경협활성화를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합니다.

임병수: 여러 대표님께서 임 총장은 너무 긍정적이다! 라고 합니다. 실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이 드는데 절망을 선택한다면 좌절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남북경협인들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남북경협은 북한의 경제적 여건을 상승시켜 차후 통일을 대비한 비용의 절감을 도출해 내고 즉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개성공단의 예처럼 중소기업의 경쟁력 회복 및 회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우리 경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과 남북경협은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남과 북의 거리감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즉 대남인식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인데요. 요즘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제가 경제학자나 북한 관련 전문학자는 아니지만 2천500만 명의 내수 시장과 신성장 동력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기자: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경협이 재개되면 당연히 북한에서 다시 일을 하시게 되겠죠? 그때 가서 꼭 이것만은 하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임병수: 1997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보내는 물건마다 국내산 중소기업들 제품들 위주로 선정하여 보내 주었습니다. 처음 북한에 갔을 때 차량부터 시작하여 건축자재들이 중국산 내지는 일본산, 독일산이더군요. 그때 물건이 먼저 하나가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중소기업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더 나은 제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한 물건들을 널리 알리는 일에 힘쓰고, 또한 북한이 개방되면 농업용 기자재를 생산하여 북한에 판매함과 동시에 북한에서 생산한 농업자재를 러시아 및 유럽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모스크바, 볼고그라드, 로스토프, 카프카즈 지역을 돌아보면서 우리 기업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건실하다는 뜻은 건강하고 서로에게 실익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가 그 통로가 되길 소망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농업과 산림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임병수 에스엔그린텍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임병수: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