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얼마 전 남북한 불교인들이 금강산 신계사에서 만나 합동법회를 열었습니다. 이번 법회는 신계사 복원 6주년을 맞아 열린 것인데요. 남측의 조계종과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함께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20여 년간 불교계 성직자로서 남북교류 활동에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동국대학교 정각원장 법타 스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법타 스님은 북한 사찰과 불교 문화재 보존사업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법타 스님: 네, 반갑습니다.
기자: 과거 신계사 복원사업을 할 때 법타 스님께서도 함께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신계사 복원은 어떻게 해서 이뤄진 건가요?
법타 스님: 네, 제가 처음 시작했죠. 그때가 아마 김대중 대통령께서 취임할 무렵인 1998년일 겁니다. 3월 24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제가 하고 있는 통일운동단체,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가 30년간 금강산 문화유적복구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첫 번째 사업이 신계사 복원입니다. 시작은 제가 했지만, 완수는 우리 조계종 총무원에서 했죠. 재정 지원은 조계종 사람들과 신도들이 했습니다.
기자: 법타 스님 하면 분단 이후 남한 불교인의 첫 방북으로도 유명한데요. 첫 방북 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법타 스님: 그때 저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영사관에 신고하고 저 혼자 북한에 갔죠. 평양 도착은 6월 26일(1989년)이었습니다. 그때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릴 무렵이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임수경 씨가 저보다 일주일 늦게 평양에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가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이 되는 셈이죠.
기자: 그렇다면 그때가 남북 불교교류의 시작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당시 교류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법타 스님: 아시다시피 북한은 기독교와 천주교에 대해 미국의 앞잡이 또는 스파이라고 해서 거의 씨를 말렸습니다. 김일성 정권 이후, 특히 6.25전쟁 이후 그랬죠. 그래서 유일하게 종교 형태를 지닌 것은 불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찰도 보존돼 남아 있습니다. 불교는 또 비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전통이 있어 다른 종교와 비교했을 때 북한 주민들에게 거부 반응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계속 공부를 했고요. 그래서인지 그분들을 쉽게 맞이할 수 있었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북한도 한국 불교와 우리 종단에 대해서 기대감이 컸습니다. 물론 그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오늘날 남북한의 불교 교류가 신뢰를 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기자: 20년 넘게 북한을 다니셨는데, 남북 불교의 차이점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법타 스님: 남쪽의 불교는 현대적으로 발전된 종교입니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와 장삼 같은 경우도 사실 1960년대 새로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입는 가사가 흑갈색인데, 사실 정유재란 이후 우리 전통의 가사는 지금 태고종이 입는 빨간색입니다. 북한은 변화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전통이 그대로 내려오다가 그마저도 축소돼 일제시때까지 유지된 옛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마치 우리 조계종이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전통이라고 여기는 반면 북한의 그것은 잘못된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어불성설이죠. 전통 자체만 보면 북한 불교가 뿌리입니다.
기자: 북한도 불교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불교 문화재 중 보존 및 복원이 가장 시급한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법타 스님: 6.25전쟁 때 피해가 너무 컸습니다. 6.25 전에 사찰이 포교당 포함해서 500여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60여 곳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또 이 중 몇 개는 본당이 없다든지 부속 건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건물 단청 등 사찰 보수가 안 된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맡은 평불협과 우리 종단(조계종)이 함께해서 북한에 단청 안료를 지원했습니다.
기자: 그러면 안료 지원은 언제 하신 건가요?
법타 스님: 2005년 경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단청이 일단 완료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평양에 있는 법운암에서 시범 단청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법운암과 성불사에서 부처님 개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금을 입혀드렸습니다.
기자: 스님은 북한 돕기운동에도 앞장서왔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불교계 차원에서 최근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지요?
법타 스님: 저희는 그동안 사리원 국수공장과 평양에 있는 빵공장을 통해 북한을 지원해왔는데요.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교류가 중단되면서 거의 지원을 못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장 한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안타깝죠. 그래서 지금은 사리원 국수공장만 자기들이 노력해서 근근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박근혜 정부가 좀 더 과감하게 남북관계를 열었으면 하는 겁니다. 특히 민간인들의 교류만은 통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얼마나 험악해졌습니까. 민족적 과제와 민족적 안목으로 그리고 세계를 보는 큰 안목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향후 남북 불교교류 어떻게 진행하실 계획인가요?
법타 스님: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국수공장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 계속 지원할 계획이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당진시 기지시(里)의 전통 줄다리기를 북한에서도 재현하고 싶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500년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줄은 그냥 줄이 아닙니다. 추수한 볏짚으로 만든 건데요. 이것은 무지 크죠. 지름이 2m이고, 무게만 몇 톤이 나갑니다. 그래서 전 주민이 나와서 줄다리기를 하는데요. 거기 시장께서는 이 줄다리기가 민족적인 축제인 만큼 남북이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북한에서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지금 북한에 제안한 상태입니다. 평양이든 금강산이든 개성이든 편한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남북이 함께 줄다리기하는데 사상이 필요합니까.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떻습니까. 지난 6.15 때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처음으로 파주 임진각에서 해봤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것을 잘살려 북한 땅에서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동국대 정각원장인 법타 스님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법타 스님: 네, 고맙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도) 더 정진하시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잘되도록 많은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