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환 목민 Associat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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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한때 남북교역 규모는 연간 10억 달러에 가까웠을 정도로 활발했습니다. 남한에서는 특히 농수산물의 수입이 많았는데요. 전체 농수산물 수입액의 25% 정도를 차지했던 게 조개류였습니다. 하지만 5.24조치 이후 북한산 조개 반입도 전면 금지됐는데요. 오늘 만나 볼 주인공은 7년간 북한에서 조개를 반입했던 황창환 목민 Association 대표입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황창환: 네, 안녕하세요?

기자: 2010년 5.24조치가 발표되면서 사업이 중단됐잖아요. 그동안 회사는 어떻게 운영해왔습니까?

황창환: 7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다 보니까 거래선을 확보하고 시장에서도 자금융통 등의 신뢰를 얻고 해서 이제 막 자리를 잡아나가는데 그만 5.24조치가 내려졌죠.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으로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이로 인해 이사도 세 번이나 했는데요. 회사 운영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좀 덜 남기더라도 같이 나누자는 의미에서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협력했던 업체들은 크게 피해를 봤죠. 직원들도 50명 정도 해고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기자: 그동안 경제적인 피해도 클 것 같은데, 지금까지 피해 금액은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계십니까?

황창환: 북한에서 수산물을 수입하는 업체는 사실 이윤이 10% 내외입니다. 조개는 특성상 폐사율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산지에서부터 소비자 입에 들어가기까지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하나로 연결돼 있어 어디 한 군데에서 신선도에 문제가 있으면 전량 반품해줘야 합니다. 산지 현장 관리가 전혀 안 되는 북한에서 채취해서 배로 남한으로 운송해 오면 그때부터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해서 식탁까지 올라가는 전 과정을 선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손실은 100% 수입 업체가 떠 앉아야 합니다. 그러니 저희는 매출 손실이 곧 피해액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신적 피해는 빼더라도 매출 손실만 1년에 12억, 이를 4년간 계산하면 48억 정도 됩니다.

기자: 미화로 환산하면 거의 500만 달러 정도 되는 금액이네요.

황창환: 네, 그 정도 되죠.

기자: 북한산 조개는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을 취급했습니까?

황창환: 대합, 비너스조개, 민들조개, 가리비, 바지락 등 대략 10가지 정도 됩니다.

기자: 그러면 혹시 어류도 수입했습니까?

황창환: 어류는 막 하려고 준비했었죠. 시험 삼아 도루묵을 가져왔는데, 그때 얼음을 채우지 않고 내려왔음에도 선도가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얼음만 확보해준다면 어류도 해볼만한 사업이죠. 사실 요새 우리 동해안에서는 도루묵이 잘 안 잡힙니다.

기자: 당시 선박을 통한 해상운송이었을 텐데, 남한에는 주로 어느 항구를 이용했습니까?

황창환: 서해는 인천항을 이용했고, 동해는 속초항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주로 속초항을 이용했습니다. 북한 배로 북한 선원이 속초항까지 운송해주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조개 수입은 언제부터 하신 거죠?

황창환: 저는 2003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형편을 고려해서 인천의 정기 컨테이너선을 이용했는데요. 그때 당시 북한과 남한 양쪽 다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생물을 무슨 컨테이너에 넣어 보내느냐고 그랬는데, 저는 해보지도 않고 왜 미리 결론을 내느냐고 하면서 일단 실어만 달라고 하며 우겨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약간 시행착오도 있었는데 결국 되더라고요. 덕분에 조개 시장에서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웃음)

기자: 조개는 주로 북한의 어느 지역에서 가져오는 겁니까?

황창환: 그때 당시 바지락이라든가 모시조개 같은 경우 남포와 해주 등 서해 쪽에서 많이 가져왔는데요. 그러나 저는 주로 원산과 흥남 등 동해 쪽에서 조개를 많이 가져왔습니다. 대게는 나진에서 가져왔고요.

기자: 북한산 조개 수입이 중단되면서 남한에서 조개 가격이 폭등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산 조개가 남한에 많이 들어왔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황창환: 남한에서 잡히는 서해 조개로는 자급률이 3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동해쪽은 더 적죠. 10%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그래서 서해 쪽은 중국산 조개에 의존했고, 동해 쪽은 아무래도 북한산 조개에 의존했습니다. 북한산 조개는 주로 조개구이집에 넘겼습니다. 그러던 북한 조개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당연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죠.

기자: 조개 반입은 북한의 어느 회사와 손을 잡고 했나요?

황창환: 저는 개선무역총회사가 공식 파트너였습니다.

기자: 그러면 사업 논의를 위해 북한에도 자주 가셨겠네요?

황창환: 북한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 등을 통해 가야 하니까 시간과 경비가 적잖게 듭니다. 그래서 저는 주로 개성공단에서 북측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 협의를 했습니다. 남과 북이 개성공단이라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았는데, 굳이 멀리 해외로 돌아가서 만날 이유가 없죠.

기자: 그때 당시 조개 수입으로 돈을 좀 버셨나요?

황창환: 사실 이 질문은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돈 벌려고 무지 노력했죠. 처음에는 시행착오로 수업료도 많이 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사업 중단으로 이렇게 돼 버렸습니다. 생물을 다루는 사업은 실력과 경함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인맥과 신뢰 등 네 가지가 합쳐져야 비로소 손해를 안 보고 밥 먹고 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만큼 배타적입니다. 저도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고생바가지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안정을 찾고 기반을 잡아갈 무렵 5.24조치가 내려지고 말았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계속 적자를 보다가 흑자로 돌아섰는데, 5.24조치로 사업을 중단했다는 말씀이군요.

황창환: 네, 맞습니다.

기자: 여전히 힘든 상황인데, 대북 사업은 계속 하실 생각입니까?

황창환: 솔직히 미련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많이 고생해서 그런지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그동안 다진 기반이 있으니까 만약 5.24조치가 풀린다면 또 생각은 해봐야겠죠. 그런데 이제 나이가 거의 60세라 잘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목민 Association의 황창환 대표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황창환: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