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교류와 사람들> 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2010년 한국 정부의 5.24대북조치 이후 북한 내륙에 진출했던 남한의 기업들은 모두 철수한 상태입니다. 이들 기업 가운데에는 개성시 인근에서 마늘가공 공장을 운영한 업체도 있습니다.
남북경협 재개를 기다리며 4년 가까이 회사를 유지해 온 김용관 산과들농수산(유) 대표는 요즘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인천 남동공단 인근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마늘 100% 전량을 개성으로 보내 개성의 근로자들이 손작업을 통해 임가공한 깐 마늘을 남측으로 들여와 전국적으로 유통을 시켰습니다.
기자: 대표님, 안녕하세요?
김용관: 네, 안녕하세요.
기자: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김용관: 5.24대북조치가 발표되고 한 달 후면 다시 정상화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게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직원들도 다 그만뒀고요. 대표인 저 혼자서 회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기자: 몇 년째 사업이 중단되면서 경제적인 피해도 클 것 같은데, 지금까지 피해 금액은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계십니까?
김용관: 회사 자본금이 이미 마이너스가 된 상태이고요. 그래서 개인 돈을 털어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기자: 지금도 개성의 공장 설비는 그대로 있나요?
김용관: 네, 그대로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개성의 공장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김용관: 그래서 지금 북측에서는 최소한의 관리 유지를 위해 돈을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마음으로는 주고 싶은데요. 북측에 돈을 줄 방법이 없고, 또 줘서도 안되는 상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처지입니다.
기자: 그래도 이러한 사정을 북쪽 사람들과 직접 만나 말씀하시고 이해를 구해야 될 텐데, 혹시 개성공업지구에서는 그분들을 만날 수 없습니까?
김용관: 저희는 북한 내륙 기업이기 때문에 통일부에서 방북 승인이 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개성공업지구 기업인과 관계자만이 갈 수가 있습니다.
기자: 그동안 한국 정부로부터 피해보상 같은 건 받았습니까?
김용관: 수출입은행을 통해 신용대출을 조금 받은 것 외에는 전혀 없습니다.
기자: 개성 마늘 공장은 언제 처음 세워진 건가요?
김용관: 개성에서 마늘 사업은 2006년에 시작했고요. 5.24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4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운영됐습니다.
기자: 마늘 공장에서 일한 북한 근로자들은 몇 명이나 됐고, 이들의 월급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김용관: 근로자 수는 약 2천 600명 됐고요. 저희는 근로자들에게 급여를 주지 않고요. 일한 양만큼을 돈을 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개성공단 급여 체계와는 좀 다릅니다.
기자: 북한 근로자들의 일하는 태도라든가 그들의 열정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용관: 글쎄요. 저희가 직접 북쪽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서.. 저희는 일감만 주고 완성된 것만 가져왔는데요. 가져온 마늘을 보면 저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건 눈으로도 보이고 가슴으로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들에 대한 믿음이 갔고요. 애착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분들한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마늘 공장은 단독으로 투자한 겁니까. 아니면 합영회사 형태로 북한과 함께 투자한 건가요?
김용관: 투자는 저희 단독으로 했고요. 대신 임가공 형식으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공장과 인력 관리는 북한이 하고, 저희는 작업한 제품만 반출한 겁니다.
기자: 그렇다면 당시 북쪽의 파트너는 어떤 회사였나요?
김용관: 북쪽에는 정성제약이라는 의약전문 회사가 있습니다. 북한의 정성제약은 주로 링거액을 생산하는 업체인데요. 남쪽의 대북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2005년도에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링거액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저희와 함께한 건데요. 저희는 정성제약과 계약을 맺고 북쪽 근로자들의 노임을 줬습니다.
기자: 남북경협이 중단되기 전까지 사업은 괜찮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돈은 좀 버셨는지요?
김용관: 물론 기업이 돈 벌러 갔으니까 돈을 벌어야겠죠. 돈은 그때 당시 좀 벌었습니다.
기자: 남쪽에서 판로는 좀 어땠습니까? 백화점이라든지 시장과 같은 곳을 통해 전국적으로 판로가 형성돼 있었습니까?
김용관: 개성에 진출하기 전에 마늘 유통으로만 20년 넘게 일해왔기 때문에 판로 개척에는 어려움이 없었고요. 게다가 품질면에서도 여기 남쪽 것보다 좋았기 때문에 오히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마늘 사업은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된 건가요?
김용관: 여기 남쪽은 마늘을 손으로 하지 않고 대체로 기계로 했습니다. 물론 손마늘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타산이 맞지 않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중국산 손마늘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중국산 손마늘이 우리나라 마늘 시장을 점차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50만 우리 마늘 농가들을 어떻게 해야 살릴까 고민하던 끝에 눈을 북한으로 돌렸던 겁니다. 이후 중국산 손마늘의 수입이 차단되고 그러면서 국내 마늘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가 우리 마늘 농가들이 다시 활기를 찾았죠.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젠 북한에서 손으로 깐 우리 마늘이 들어오지 못하다 보니까 2006년처럼 마늘값이 폭락해 농가들이 지금 모두 울상입니다. 당연히 저희도 힘들게 됐죠.
기자: 끝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다시 북한에 들어가 사업을 하실 계획인가요?
김용관: 네, 저희는 당장에라도 북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사업을 재개할 생각입니다.
기자: ‘남북교류와 사람들’ 지금까지 김용관 개성 마늘가공 공장 대표와 함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바쁘실 텐데 회견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용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