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삶 자체가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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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전합니다.

탈북자들에게 남쪽은 새로운 세상입니다. 남한은 그 동안 북쪽에서 책이나 방송을 통해 듣고 배웠던 것과는 딴판이고 남한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왔더라도 현실에서 만나는 남한 사회는 또 다릅니다. 그래서 정착 초기엔 매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말하는 탈북자들이 많은데요. 이런 공부는 몇 년이 지났어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쪽엔 평생 공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태산 씨, 문성휘 씨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남한에서 공부 많이 하셨습니까?

김태산 : 아니, 내가 50살이 넘어서 오지 않았습니까? 처음에 나도 뭔가 좀 배워야 할 것 같아서 학교에 가볼까도 했는데 원서까지 썼다가 그냥 말았어요. 아니 내가 이 나이에 다시 배워서 뭐하겠나 싶더라고요. 후대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남기는 게 낫지 내가 이 나이에 공부를 더 해서 뭘 어쩌겠냐. 그래서 집어 치웠죠.

진행자 : 그래도 학교 공부는 안 하셨어도 뭐라도 좀 배우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 그건 그렇죠. 사업을 해야겠는데 세금과 법률관계를 모르고서는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책도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근데 책을 보려니 너무 모르겠는 것이 많아요. 10장 읽으면 몰라서 물어봐야하는 것이 백 개야. 참, 쉽지 않아요. 사실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여기와선 내가 단독으로 서야하니 개인이 모든 일에 전문가, 선수가 돼야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진행자 : 책으로 보면서 하는 공부도 그렇지만 정말 생활이 진짜 공부죠. 성휘 씨는 어떠셨어요?

문성휘 : 저는 탈북자들이 거치는 과정을 그대로 다 거쳤어요. 우선, 남한에 와서 우리가 제일 처음 배워야할 것이 남한의 언어가 아닙니까? 특히, 남한 사회에서 많이 쓰이는 외래어가 참 까다로워요. 하나원에서 그런 외래어를 정리한 책을 줘요. 그걸 탈북자들이 보면서 공부하죠. 그리고는 운전면허를 따야하는 데 이것도 물론 공부입니다. 그리고 하나원을 나와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를 배웠고 그 다음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죠. 아마, 탈북자들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길을 가실 거예요. 저 같은 건, 취업을 하는 과정에도 저녁에 시간을 내서 복지관에서 무료로 배워주는 회계 관련 자격을 땄어요. 남들은 3달이 따는 걸 저는 1달만 듣고도 자격증을 따면서 제 머리가 아주 좋다는 걸 증명했죠. (웃음)

김태산 : 아, 또 자기 자랑 하시네요. (웃음) 어쨌든 이 나라, 탈북자에 대한 교육 제도가 참 좋아요. 운전면허 따고 그 다음이 바로 컴퓨터인데 나도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을 정도는 컴퓨터를 다루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내 나이 또래 남한 사람들 중에 컴퓨터 못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탈북자들은 이렇게 교육을 받으니까 늙은이들도 거의 다 컴퓨터를 다뤄요. 이걸 보면 우리가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배우라면 못 배울 텐데 그 때는 정말 이걸 못 배우면 여기서 못 산다는 마음이 드니까 배웠지요.

문성휘 : 그게 말이죠. 여기 남한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자동차를 계속 보잖아요?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컴퓨터를 계속 보죠? 그러니까 신기한 물건이 아니에요. 근데 우리 탈북자들은 여기 와서 태어나서 컴퓨터를 처음 보니 진짜 신기한 물건이죠? 게다가 자동차를 자기가 운전할 수 있다니 호기심이 막 생기는 거죠. 그러니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김태산 : 제가 남한에 오기 전에 외국에서 합영회사 사장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정말 그 때 컴퓨터 때문에 크게 망신을 해서 컴퓨터는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한에서 운전 면허증을 갖고 있으면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국제 면허증 발급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해서 해외에서 다시 면허증을 따야합니다. 그래서 통역을 데리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갔는데 컴퓨터로 시험을 치는 거예요. 운전 이론 시험을 컴퓨터로 치는 거였는데 컴퓨터 화면에 질문이 나오면 답을 마우스를 이용해서 이렇게 찍으면 된다고 보여주는데 나는 그 전에 컴퓨터를 만져도 못 본 사람이니까...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못 하겠다고 하니까 감독관이 내 문서를 이렇게 보더니 합영회사 사장님인데 컴퓨터를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기야. 시험을 나 혼자 보는 게 아니라 교실에 다른 사람들도 가뜩한데. 아, 정말 그때 받았던 모멸감이라는 게... 정말 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하나원 졸업하자마자 컴퓨터를 배워준다는 거예요. 정말 3개월 동안 꾸준히 배웠어요. 참, 그 때 배운 것이 사실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여기서 사업장을 꾸릴 때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 자식들도 이런 기술적인 면으로 대학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북쪽도 컴퓨터 정보화가 되지 않고는 빠른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 지는 거죠.

진행자 : 합영 회사에 나가셨을 때 컴퓨터 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때가 언젭니까?

김태산 : 2000년도예요. 사실 제가 1995년에 말레이시아를 나갔을 때도 그 때 우리는 북한보다도 말레이시아가 못 산다고 했는데 그때 가보니까 식당 같은 상업망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컴퓨터가 다 깔린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북한은 정말 어떻게 돼나... 참, 생각이 많았죠. 북한은 감시가 안 되니까 그거 무서워서 결국은 못하는 거죠.

진행자 : 그럼 두 분이 생각하시기에 남한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공부는 뭔가요? 역시 컴퓨터와 영어일까요?

김태산 :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두 가지는 남한 사회 뿐 아니라 어디서든 살아가기 위한 기본 상식적인 문제고요. 그렇지만 정말 남한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공부죠. 영어만 해도 남한만큼 영어가 많은 나라가 없어요. 근데 그 영어가 그냥 영어가 아니라 영어를 한국말로 바꾼 희한한 영어가 많아요. 너무 많아서 미국사람도 놀래요. (웃음) 이걸 우리가 다 따라갈라니까 참 어려워요. 이것도 매일 새로운 것들이 나오니까 계속 배워야 해요. 또 컴퓨터도 제가 나올 때는 파워포인트를 안 알려줬는데 요즘엔 또 그게 필요해요.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고 세상도 바뀌니까 컴퓨터도 계속 배워야겠죠. 공부를 계속 안 하면 뒤떨어지게 생겼어요. 나는 지금 나이도 먹고 그랬으니까 이제 농촌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이제 염소 키우기를 좀 배워보려고 (웃음) 염소에 관한 책을 사놨어요. 결국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기야.

문성휘 : 글쎄, 북한에는 혁명가는 일생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구호가 있는데 한국에 와보니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우리 탈북자들은 공짜로 배워주는 데가 정말 많아요. 나만 마음먹으면 돼요. 꼭 필요한 게 뭐라고 얘기 못하겠어요. 일단, 나한테 급한 것부터 배우고 장기적으로 내다보세요. 요샌 정말 대단한 게 저희 딸 같은 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퇴근하고도 휴대전화로 사무실 일을 봐요. 일은 잘 돌아가나 사무실에 누가 남아있나 문은 잘 잠그고 퇴근했나... 그것도 다 우리가 다 배워야 하는 거예요.

김태산 : 그러니까 너무 많으니까 무서워. 나는 지방으로 도망가려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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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는 탈북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교육을 시켜주는 교육 기관들도 많고 심지어는 돈을 줘가면서 공부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남한 정착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취업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교육을 하는 겁니다. 또 책도 북쪽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습니다. 김태산 씨와 문성휘 씨, 북쪽에선 책이란 책은 다 읽는 책벌레였다는데 두 분 다 정작 남한에 와서는 10권도 못 읽었다고 하네요. 이유가 뭘까요? 다음 시간에 얘기 이어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은 '살며 공부하며' 첫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