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자유의 복판에서 눈물을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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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 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에 정착해 살아가는 솔직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에서 나오면서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살면서 꼭 필요한 것 네 가지를 받습니다. 주민등록증-북쪽 식으로 말하면 공민증입니다. 은행 통장, 휴대 전화 그리고 남한에서 살 집입니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남한에 오면 서울에 살길 원하기 때문에 집은 추첨제로 뽑습니다. 김태산 씨는 서울에 집을 받았다는데 오히려 본인은 낚시질 실컷 할 수 있는 바닷가에 집을 받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문성휘 씨는 당시엔 꼭 서울이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지방으로 가도 살만한 배짱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랍니다. 새 집에서 시작하는 남한 생활 함께 얘기해봅니다.

김태산 : 하나원에 들어가 있으면 소식을 통해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지 다 알아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까지도 여기 오게 되면 집 준다, 주민등록증 준다, 돈도 얼마 준다는 것을 다 알고 들어와요. 그래서 탈북자들에게 좀 안타까운 것이 그 혜택을 고마움을 모르는 기야. 여기까지 온 것도 얼마나 피와 땀을 흘려가며 마음을 졸이며 왔어요? 여기는 버마, 필리핀,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많이 와 있지만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을 얻고 싶어도 못 얻어요. 민족적 차이가 있잖습니까? 그런데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아무 대가 없이 내주는 거예요. 따지고 보면 대단한 혜택과 배려지만 사실 탈북자들은 그걸 내주는 이 나라 국민들과 정부에 대해 그렇게 뜨겁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문성휘 : 그렇죠. 북한에서는 사실 내가 강계에 있는데 인근의 희천에 갈려고 해도 증명서를 따로 떼야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증명서라는 것도 없고 표도 돈만 내면 그 자리에서 받지... 주민등록증을 받으면 하나원에서 나와 그 어떤 나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요. 저희 때는 6개월이었는데 이 기간도 지금은 빨라져서 3개월이면 여권을 뗄 수 있답니다. 사실 저는 주민등록증을 받아서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나가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6개월 만에 여권을 땠어요. 이것이 진짜 나오나 알아보고 싶어서요. (웃음) 한번 떼면 10년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사람과 같이 가서 일부러 여권을 땠는데 어디 가질 않으니 지금은 고이 궤짝 안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자... 이제 하나원 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하나원에서 퇴소하는 날은 집으로 곧장 가십니까?

김태산 : 퇴소 하는 날, 말하자면 하나원 졸업식을 합니다. 이것이 끝나면 밖에 담당 형사가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성휘 : 지금은 적십자 봉사원도 나와 있어요.

김태산 : 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그 사람들이 저와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데려다 줍니다. 짐은 따로 큰 트럭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원에서 나와서 제일 먼저 은행에 들려 국가에서 나오는 정착금이 들어있는 통장을 받았습니다. 우리 때는 그랬는지 아마 지금은 바뀌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형사가 '선생이 앞으로 살 집에 보증금이 일천만 원 정도 들어가는데 그 돈을 여기서 뽑아야 합니다.' 해서 돈을 뽑아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처음 살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올라갔는데 조금 있으니까 밑에 짐이 도착했더라고요. 사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죠. 첫날이니까. 그래서 짐을 열어 식사 도구 받아 온 것을 풀고 이불도 꺼내고... 이불은 있어도 이불을 넣은 이불장도 없죠. (웃음) 이불장 책상 하나 없는 그냥 빈집이죠. 그날은 그냥 그렇게 잤죠. 아무것도 모르니 담당 형사가 주택공사에 데려가서 집 보증금을 같이 내주고... 사실 국가에서 나온 집에 형식상으로 보증금을 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휴대전화 가게에 가서 전화를 사고 또 집 전화를 신청해주고 불이 있어야 밥을 해먹으니 가스 연결해달라고 신청하고... 이렇게 해서 살림살이가 그 다음날부터 시작됩니다.

문성휘 : 돈을 가져야 뭘 살 수 있으니까 하나원에서 나오면서 은행에 들어서 담당형사와 봉사원 분들이 은행에서 돈을 어떻게 뽑는지 알려줘요. 저희 때는 제일 먼저 나오자마자 해준 것이 교통카드였어요. 이것만 가지면 버스고 지하철이고 맘대로 탈 수 있다고요. 그 다음에 해주는 것이 휴대전화. 아... 이 휴대전화를 받으니까 진짜 기분이 좋더라고요.

진행자 :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첫날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첫날밤, 그 썰렁한 집에서 어떻게 보내셨나요?

김태산 : 지금 생각해보면 첫날을 참 의미 없이 보냈어요. 참, 아쉬움이 남는데 그냥 좋구나하는 생각과 이제 자유로구나 하는 그 생각. 북쪽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술을 다 좋아하니까 같은 동네에 살게 된 동기들과 우리 집에 모여서 술하고 고기를 사다 놓고 한잔 하고 그냥 잤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보낸 것이 참 아쉽습니다.

진행자 : 그래도 김태산 씨는 외롭거나 하시진 않았네요. 가족이 함께 있었으니까요? 문성휘 씨는 혼자셨죠?

문성휘 : 저 같은 건, 적십자에서 봉사 나오신 분들과 함께 밥 먹으러 갔다가 거기에서 헤어졌어요. 처음에 집에 갔을 때 문을 열어보니 적십자 봉사원들이 아직 청소하고 계시더라고요. 아직 청소가 덜 끝났으니 들어가지 말자고 해서 일단 봉사원분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어요.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했더니 어둑어둑해졌어요. 그런데 집에 가보니 도착했어야 할 짐은 안 온 거예요. 저 혼자 열쇠를 받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깜깜한데 제일 안타까운 건 전기도 안 오지 바닥 온돌도 어떻게 켜는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가 2월이었으니까 날이 추웠거든요. 그런데 방에 온돌도 안 들어오지 전기도 안 들어오지 하니까 정말 쓸쓸하더라고요. 전화를 걸어서 같이 온 분들에게 여쭤봤더니 그 분들은 모두 온돌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켜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저와 함께 동네에 살게 된 분들은 모두 다 여자 분인 거예요!

김태산 : 아이고... 그래도 그냥 어디 좀 끼어 자지 그랬어요?

문성휘 : 관리 사무소에 밤중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저는 그때는 몰랐거든요. 또 적십자 분들이 전화번호를 알려줬는데 이 밤중에 혹시 주무시지 않을까 해서 전화도 못 하고... 그래서 그 추운 방에 입고 나온 동복을 쓰고 그대로 쭈그리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넘어 마트가 보이더라고요. 거기 가서 라면하고 소주를 사왔어요. 근데 짐이 안 와서 라면을 끓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마른 라면을 안주 삼아 술을 한 병 더 마셨는데, 아니! 취하니까 잠이 오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 첫날밤 정말 서글펐어요. 그러고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았는데 도우미분들이 일찍 오시더라고요. 어젯밤에 어떻게 잤느냐고 물어보기에 불도 안 오고 전기도 안 온다고, 아무래도 우리 집은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까 그 분이 방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불이 켜지는 거예요! 아주머니가 아저씨 여기 와보라고 여기는 배전함이 집안에 있다고... 그래 보니까 배전함이 있는데 저 그걸 몰랐던 거예요. 그리고 온돌은 부엌 밑에 종합 배관을 꺼놨더라고요. 그걸 켜고 온돌을 올리니까 인차 따뜻해지는 거예요. 그걸 몰라서 저는 첫날밤에... (웃음) 어우, 지금도 생각해보면 참 슬펐어요.

김태산 : 아... 문 선생 왜 그걸 몰랐어. 아니 이러고저러고 그냥 여자네 집이라도 전화해서 거실에 좀 재워달라고 하면 될 것을... (웃음)

문성휘 :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 배짱이 없었죠.

김태산 : 복잡한 한 생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웃음)

진행자 : 이 방송을 <내가 사는 이야기>라고 제목 붙이기 전에 '좌충우돌 남한 살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진짜 좌충우돌 남한 생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첫날부터 여러 가지 일을 겪으셨네요.

북한 땅을 나와 갖은 고생 끝에 남한에 들어오고 조사 기관과 하나원을 나오면 이제 진짜 남한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남한 생활, 그 생활의 기반을 만들어 줄 직장을 구하는 큰 과제가 남아 있는데요. 문성휘 씨, 김태산 씨 모두 그 큰 산을 몇 개씩 넘어 이제 기반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이유는 온전히 본인, 개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랍니다. 떠나온 사람이 가진 일종의 책임감도 있다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김태산, 문성휘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태산, 문성휘 : 감사합니다.

저는 이현주 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