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직업이 아니라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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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솔직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첫 직장에서 첫 노임을 타면 으레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1970년대 얘긴데요, 당시 고가품에 속했던 나일론 소재의 빨간 내복으로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빨간 내복 대신 속옷으로 대신합니다. 북쪽은 어떠십니까? 남한에 와서 첫 직장, 첫 노임을 탄 문성휘 씨는 일단 혼자 사는 텅 빈 아파트부터 채웠다고 합니다.

문성휘 : 한 달 있다가 월급 타니까 진짜 기분이 좋더라고요.

진행자 : 첫 월급 타서 뭐 하셨어요?

문성휘 : 가구를 샀어요. 저는 엄청나게 비쌀 줄 알았는데 70만 원 정도에서 모두 다 살 수 있더라고요. 그 때 산 가구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옷도 사 입고 하니까 첫 달 월급은 다 달아났어요. (웃음) 저축도 못하죠. 석달 뒤에 월급을 십만 원 올려줬는데 그때부터는 조금씩 저축할 여유가 있더라고요.

진행자 : 문성휘 씨도 북한에서 대학까지 나온 고급 인력이고 김태산 씨도 무역 쪽에서 잔뼈가 굵으신 베테랑인데 남쪽에 와서 이런 경력을 써 먹을 곳이 별로 없어요.

김태산 : 북쪽 기술이 세계화, 국제화된 남한 땅에 비하면 뭐든 것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문성휘 : 그리고 탈북자들 같은 경우에는 힘쓰는 것에 대해서는 남한 사람에게 짝지지 않아요.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사무능력이 없는 겁니다. 저도 북한에서 사무를 많이 보고 했는데 남한에 와보니 제가 하루 일하는 사무능력은 남한 사람들의 3분의 1밖에 안 돼요. 저로서는 진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그런 것입니다. 지금 탈북자 단체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지지부진하고 잘 일떠서지 못해요. 제가 보기엔 많은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건을 하나 만든다면 남한 사람들은 밤을 패면서 하루면 뚝딱 만들어요. 그런데 우리 탈북자들은 한 열흘씩 걸려요.(웃음)

진행자 : 김태산 씨 문성휘 씨의 이런 의견에 동의하세요?

김태산 : 맞아요. 여기 하고 북쪽의 사무하고 비교하면 북한은 원시적입니다. 컴퓨터 없고 프린터도 없고... 원주 볼펜 하나 제대로 없고 사무용지도 없는 상태에서 하려니 제대로 될 것이 뭡니까? 남쪽에서는 그렇게 하다가는 하루아침에 쪽박 차고 굶어 죽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북쪽에서는 국가가 모든 경제를 책임지고 다 하다나니까 일이 잘 되지 않아도 일을 잘 하지 않아도 먹고 살게 하면서 마지막엔 망하는 그 길로 가는 것이죠. 국가가 망하지 않고 사람이 계속 잘 먹고 잘 살려면 남쪽과 같이 사람이 기계에 따라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북한이라는 나라가 그래요. 전기 스위치 하나만 봐도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오던 강계 일용 생필품 공장에서 만들던 시커멓고 보기 싫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20년 동안 모양도 변하지 않고 계속 나와요.

김태산 : 국가가 변할 때까지 그건 뭐 계속 나오는 거죠.

문성휘 : 네, 그렇죠. 노란 연필 하나 나오는 공장이 생기면 그냥 계속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망할 수밖에 없어요. 남한 같으면 일 년에도 몇 십 번씩 변하지 않습니까?

진행자 : 북한에 계실 때는 그런 생각 안 하셨나요? 왜 그렇게 바뀌지 않습니까?

김태산 : 하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하는 사람 자체를 살아남지 못하게 하니까요. 조선 노동당의 구호가 그겁니다. 백 가지를 하고 싶어도 당에서 한 가지를 하라면 그걸 하라... 당이 고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겁니다. 경제라는 것은 연구하며 개발시키며 나가야하는데 이건 경쟁이 없는 사회니까... 제가 지금 말한 것처럼 남한에서는 북한같이 하면 하루아침에 망하죠. 망하지 않으려면 계속 부단히 노력하고 전진하고 해야 하니까 살아남는 것이죠. 계획 경제의 부패성이라는 것이 이겁니다. 우리 2 천만 명이니 일 년에 한 사람에 4 켤레씩 신으면 되니까 8 천만 켤레만 생산하자. 그러면 공장들에서는 1953년 전쟁 끝나고 만든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50-60년 동안 똑같은 걸 계속 만들어 내는 거죠. 그런데 신발이 남아돌아야 좋은 것을 찾아 신으려고 나쁜 것을 안 신겠는데 이 공장들에서 일 년에 8천만 켤레도 못 찍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공장에서 나오면 사 신는 것이죠. 결국 발전이라는 것이 이룩될 수가 없습니다.

문성휘 : 남북한 차이라는 것이 단순히 생활수준의 차이가 아니에요. 이제 인식의 차이, 사람들이 미래를 보는 차이. 이걸 다 어떻게 합쳐가야 할지... 저도 이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는데 통일이라는 것이 참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진행자 : 저희가 이런 얘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저도 가끔 북쪽에서 오신 분들 만나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취업박람회 취재를 가면 일 자리를 찾는 탈북자 분들 많이 만나는데요. 가끔 제가 봐도 정말 괜찮은 곳 같은데 본인은 안 가시겠대요. 이유를 물어보면 너무 멀다고만 하시고요...

문성휘 : 요즘 언론에도 가끔 나오지만 국가에서 탈북자들에게 주는 혜택이 있잖습니까? 사실 기초 생활 수급, 의료 혜택 이런 것들이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일을 안 하는 원인도 된다는 말도 있어요. 탈북자들이 직업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들 언론에도 나오는데요. 사실 북한 같았으면 당장 자기 자식들, 남편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하니까 아무리 멀어도 물고기 배낭을 지고 걸어갔다 걸어옵니다. 그리고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걸 앉아서 다 팔고 저녁에 쌀 한 키로 국수 한 사리 들고 들어옵니다. 그러던 여성들이 남한에 오니까 일을 안 하는 거예요.

김태산 : 그 때 정신으로 일하면 남한에서도 부자 됐죠.

문성휘 :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면 정부에서 쌀이 나와요. 또 기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누리 마켓이라고 있어요. 거기 가서 이름을 올리고 자기가 가지고 오고 싶은 것, 기름, 간장 다 가져 올 수 있거든요. 저도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석 달 동안 이름이 올라있었어요. 가보면 라면, 빵, 기름 다 있어요. 이 기자는 모르죠?

진행자 : 처음 들어 보는데요.

문성휘 : 거봐요. 남한 사람들 모르는데 탈북자들 잘 알거든요. 기초 수급 대상자면 일 년이 아니라 삼년... 제가 지금도 삼년이 넘게 거기 다니시는 분들을 봐요. 어떤 때는 좀 씁쓸하기도 하죠.

진행자 : 일 못할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문성휘 : 그럼요.

김태산 : 진짜 환자들... 진짜 아파서 국가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그걸 이용해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묻어가면 안 되죠.

진행자 : 솔직히 그렇게 사는 게 편하잖아요? 그런데 왜 두 분은 일하십니까? (웃음)

김태산 : 맞아요. 나가서 3만원에 20 킬로 하는 쌀 사다놓고, 5천3백 원짜리 간장 일 리터, 2천 원에 1.5 리터하는 콩기름도 사다놓고 또 소금 좀 사다놓으면 한 달 이상을 우리 가족이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살 순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살면 편하지만 앞으로 이 방송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중에 북한에 들어갈 의무가 있어요. 내가 들어갈 때 당당하게 들어가려면 나는 여기서 성공해서 잘 돼서 들어가야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고향을 버리고 남한에 갔지만 나는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너희들을 도와줄 준비도 다 돼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배신자라고 했던 사람들에게도 당당해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충실하게 살 뿐입니다.

문성휘 : 내 가족이나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있지만요. 지금 그냥 있으면 나중에 통일이 된 다음 가서 내가 무엇을 하겠어요? 남한에 온 탈북자들이 누구나 다 같은 심정이에요.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는 내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도 항상 말하는 것이 통일이 되면 북한에도 자동차가 많겠지? 나는 그때가면 고향에 가서 자동차 정비 업소를 차린다고 항상 말해요. 저도 역시 마찬가지 같아요. 북한에 가서도 방송을 할 수 있고 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속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줘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해야죠.

진행자 : 맞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사실 일을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것이잖아요?

문성휘 : 네. 그리고 지금 제가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우리 탈북자 중에 정말 부지런하게 사는 분들도 많아요. 글쎄... 북한말에 종개 한 마리 온 대동강 물 다 흐린다고 하거든요?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정말 열심히들 일하고 살아갑니다.

진행자 : 빈말이 아니라 사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 그곳에 가족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자들입니다. 남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진솔한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