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솔직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3분짜리 방송 원고를 쓰면서 저는 대략 2-3번 정도는 '아, 이 말을 북쪽 식으로 어떻게 풀어써야하나... 고민에 빠집니다. 새로운 과학 용어나 북쪽에서는 아직 모를 것 같은 외국 문화라도 한번 소개할라 치면 별별 말들이 다 막히는 통에 기자와 친분 있는 탈북자들의 전화엔 불이 납니다. 어떤 말들은 북쪽에서 전혀 쓰지 않고 어떤 말들은 북쪽 식으로 잘 풀어 놓은 말들도 있고 또 굉장히 사소한 생활 용어들이 달라 당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의 이런 경험을 북쪽에서 오신 탈북자들은 반대로 겪습니다.
"아니, 내가 상점에 가서 밥가마를 달라니까 모르는 기야. '아, 손님! 밥솥이요?' 하더라고요. 이 것 가지고 판매원이랑 한참 싸웠다니까. 왜 밥솥이야? 밥 가마지요!'
분단 61년, 남북의 말은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는 얼마나 될까요?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는 우리말 얘깁니다.
진행자 : 두 분은 아직, 억양에 북한 말씨가 많이 남아 있으시죠?
김태산 : 그렇죠. 나 같은 사람이야 북쪽에서 50년을 넘어 살았는데... 물론, 제가 여기 와서 말투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고요. 사실 고치려고 해야 고쳐지질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말씨를 듣고 단번에 어디서 왔나 물어요. 그래도 좀 추측한다는 것이 강원도 쪽에서 왔느냐 조선족인가 물어보는데 저는 평양에서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편입니다. 근데 너무 그러니까 탈북자 중에는 숨기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어요. 북한 말씨가 억양이 강한 것이 툭 튀는 것이 사실이죠.
문성휘 : 그래도 김태산 선생은 평양 말씨를 쓰니까 좀 괜찮은데 저 같은 건, 자강도 말씨를 쓰니까 더 알리죠. 제가 지금 북한 말씨를 쓴다고 해도 굉장히 많이 나아진 거예요.
진행자 : 그럼 더 심하셨어요?
문성휘 : 북한 말씨를 쓰면 이렇게 말하지 않죠. 례하면 '태산 아바이, 지금 마트에 들렸다 오재요? 오늘 저녁에 무슨 할 일이 없재오?' 이런 식으로요. 물론, 필요한 자리에서는 '~습니다'를 붙여 올림말을 씁니다. 어쨌든 제 억양이 남한 말에 비하면 정말 거칠죠. 그리고 거의 수평적이라고 할까요? 억양의 오르내림이 서울 말씨처럼 심하지 않고요... 우리 북쪽에 있을 때는 서울 말씨는 아주 간사하다고 했어요.
진행자 : 문성휘 씨 말투가 많이 동화된 거란 말이죠?
문성휘 : 그럼요. 지금 사무실에 계신 분들도 저보고 아직 북한 말을 못 고쳤다고 하는데 저 사실 이제 고향의 말을 거의나 못하거든요. 이제 하라고 해도 굉장히 힘들어요. 고향 사람들끼리 모여도 이제 잘 안 나옵니다.
김태산 : 문 선생 같은 경우처럼 사회 생활하면서 남한사람들하고 휩쓸리면 남쪽 말로 많이 가죠. 정말 처음에 해외출장, 중국 연변 같은 데만 나와도 남한 사람들을 더러 만나는데 진짜 볼 때마다 남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간사한 말을 하지? 말끝마다 ~요요 하니까...
문성휘 : 처음 들을 때는 아주 요사한 느낌이 있었어요.
김태산 : 남자들이 막 '그랬어요.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니까 그때 당시는 듣기 좋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북쪽 영화나 연속극에서 나오는 북쪽 말씨가 너무 딱딱하고 굳게 느껴져요. 그때는 남쪽 말이 별나게 요사스럽고 간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거의나 십년을 살다보니 이제 북쪽이 이걸 좀 따라와야겠구나 싶습니다. 북쪽 말은 너무나 딱딱하고 뚝뚝합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듣는 제 친구들이 있다면 저 놈이 나가더니 무슨 소릴 하는가 싶겠지만 "말을 고친다고 하면서 못 고치고 있습니다."하는 것과 "고치려고 해봤는데 잘 안 고쳐지고 있지요 뭐.."하는 것과 느낌이 차이가 있죠? 그런데 뭐, 저야 이렇지만 우리 집 아이들 같은 건 오자마자 반년도 안 돼서 인차 따라갑니다.
문성휘 : 제가 지금 고향말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닌 혼합 말씨를 쓰지만 고향 사람들이 들으면 저놈, 진짜 서울말 잘 한다고 느낄 겁니다. (웃음)
진행자 : 청취자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시겠지만 성휘 씨 억양은 단번에 어디서 왔는지 알립니다! (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탈북자들의 말씨를 듣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있잖아요? 근데 탈북자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강원도에서 왔다거나 조선족이라고 답하는데 왜 그러는 건가요?
김태산 : 우리야 북한에서 왔다고 하고 왜 왔냐고 물어보면 저 같은 건 도전적으로 도망왔다고 한번 질러 주는데 젊은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싫은 것이죠. 내가 좀 안타까운 것은 북쪽보다도 남쪽이 더 사투리가 심하거든요. 경상도 사투리 있고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는 뭔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고 지방마다 색깔이 있어요. 북한은 함경도 빼놓고는 사투리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요.
문성휘 : 보통 두 가지 사투리가 존재한다고 해요. 평양 말씨와 함경도 말씨. 앞댓말 뒤댓말 이럽니다.
김태산 : 아, 정말 남쪽 사람들이 자기들이 더 사투리가 많으면서 우리들을 몰아줄 때는 좀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웃음)
문성휘 : 저 같은 건 짝퉁말이라도 하는데 함북 사람인 저희 집사람은 전혀 고치지 못했거든요. 근데 저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북에서 왔다고 하는데 집사람은 누가 물어보면 중국 교포입니다 해요. 집사람은 이자, 김 선생님 말처럼 누구 주목을 끄는 걸 싫어해요.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 좀 신기하게 생각하거든요.
김태산 : 연변에서 왔다면 돈 벌러 왔나보다 하는데 북쪽에서 왔다면 어떻게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혼자 왔는지, 뭐하고 사는지, 어디서 사는지, 북쪽은 어떤지 막 물어보거든요. 물론,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너무나 닫힌 사회니까 궁금하기도 해서 물어보는 것이지만 본인은 '저 여자, 북에서 왔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것 같고... 불편하고 싫죠.
진행자 : 이해가 돼요... 그런데 제가 요즘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취재 나갈 일이 좀 있는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여기 사람들도 북쪽에서 왔다고 하면 놀라고 궁금해 하고 했지만 요즘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아는 척은 하지만 지금 김 선생이 말한 것처럼 심하게 막 질문을 던지고 하진 않거든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두 분은 어떻게 보세요?
김태산 : 그렇죠. 탈북자가 2만 천명이잖아요. 우리가 왔을 때만 해도 막 신기했어요. 2003년도에 하나원에 들어가서 운전면허 실습장에 연습하러 버스를 한가득 타고 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탔어요. 창밖 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기에 그 아주머니한테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무과'라고 하는데 뭔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주머니한테 써 달라고 해서 보니 '모과'야. 어디서 왔느냐고 그러기에 북에서 왔다니까 경찰에 신고하겠대? 탈북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2003년도 얘기고 또 경기도 저쪽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죠. 그래도 남쪽 사람들은 정말 북쪽을 모르누나 생각했었는데 이제 뭐, 북에서 왔다고 해도 '아, 탈북자구나...' 합니다. 이젠 남한 사회에서 탈북자의 희소가치가 작아졌죠.
진행자 : 탈북자도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태산 : 그럼요. 정부에서 사회단체에서 지자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니까 알 사람은 다 아는 거죠.
문성휘 : 국경의 남쪽, 크로싱 같이 탈북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오니까요. 젊은 여배우, 한효주가 탈북자로 출연한 20 부작 연속극도 있었죠. 한효주는 북한 말씨를 배우기 위해 탈북자들에게 말씨를 배웠다고 합니다. 이런 식이니까 이제 탈북자들이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 아닌 것이죠...
청취자 여러분은 이런 남쪽 사회의 변화, 어떻게 평가 하십니까? 이런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속극이 연선 지방을 통해 북쪽에 들어가면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사실 말투보다 더 차이가 많은 것은 단어입니다. 북쪽에서 전혀 모르는 외래어, 또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조어들... 이런 말의 홍수 속에 갈피를 못 잡던 김태산 씨, 문성휘 씨도 2년 정도 지난 뒤엔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동안 일어났던 말에 얽힌 재밌는 얘기들,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고요. 저희는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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