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솔직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김태산 : 내가 맨 처음 와서 전기 밥가마...
진행자 : 밥솥!
김태산 : 거봐, 벌써 다르잖아. 판매원이 알아듣질 못하더라니까. 한참을 싸웠다고...
문성휘 : 근데 왜 가마를 솥이래요? 솥은 소여물 끓이는 아주 큰 거 아니에요?
진행자 : 남쪽은 큰 걸 가마솥이라고 하는데... 솥보다 더 작은 건 냄비. 근데 그릇이름은 다 틀린 것 같아요. 남쪽에서는 양푼이라고 하는 걸 북쪽에서는 소래라고 하고.
문성휘 : 이자...그 냄비는 북쪽에서 쟁개비라고 하죠. 아니 근데 왜, 소래를 양푼이라고 해요?
'왜'라고 물으시면 저라고 딱히 답이 있겠습니까? 그냥 남쪽에선 그렇게 써왔으니까 그런 것이죠. 이래서는 한 부엌에서 밥 해먹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요. 말투와 단어의 차이는 물론 외래어 문제, 표현 방식까지 60년 분단의 세월은 우리의 말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우리말 얘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김태산 : 억양은 그런대로 넘어가는데 사실 살면서 특히 젊은 여성들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외래어입니다. 우리같이 영어를 좀 배운 사람들도 그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전혀 모르게 생겼어요.
진행자 : 인정해요. 저도 사실 좀 너무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문성휘 : 그런데요. 똑같은 결함이 있어요. 북쪽은 또 너무 변하지 않아요. 북쪽은 일제 강점기 때의 말도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봄삐라든가...
김태산 : 벤또.
문성휘 : 네 벤또, 바께쯔. 우리 함북도 사투리도 고철을 쇠떼, 썰매는 운발기, 변소를 변소깐... 참, 변하지 않아요. 남한은 또 너무나 급격하게 변하는 거죠. 저 처음에 왔을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 '웰빙시대'. '웰빙시대'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웰Well은 영어로 '잘' 이란 뜻이고 빙Being은 '있다'의 현재 진행이란 건 알았는데 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겠는 거예요. 제일 답답한 건 하나원 선생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정의를 못 내려요.
진행자 : '웰빙' 같은 것은 새로운 말, 신조어죠. 외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개념이 외국말 그대로 남쪽에 들어온 경우인데요. 한국말로 대체하자니 마땅한 말도 없고... 그냥 외국어 그대로 사용되는 거죠.
문성휘 : 건강 시대라고 하면 되지 않아요?
진행자 : 건강도 웰빙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웰빙이라는 개념에 건강만 들어가느냐 하면 그것도 또 아니거든요.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거든요.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거죠.
김태산 : 어쨌든 언어는 앞으로도 세계적으로 점점 공통화 될 것 같습니다. 경제 문화가 발전할수록 남북의 언어는 멀어지게 생겼습니다. 남쪽은 경제가 발전하다나니까 그에 따라 계속 새로운 말들이 나오잖아요? 이조봉건 시대에 로켓이라는 말이 있었겠어요? 경제, 과학, 의학, 문화 등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단어는 계속 나오는데 북쪽은 문 선생 말마따나 사회가 변하지 않으니까... 경제, 과학, 문화 어느 한 분야에서도 발전이 없으면서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거예요.
문성휘 : 제가 보건데도 이제 세계화 시대인데 민족어를 지킨다고 외래어를 무턱대고 차단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에 없는 단어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저는 북한에 있을 때 우리말을 정말 풍부하다,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다.... 굉장히 좋게 이해해 왔는데 남쪽에 와보니 우리말에 없는 표현도 많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외래어가 필수인 것도 사실이고요...
진행자 : 세계화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면서 외국에서 들어오는 신조어도 적당히 사용하는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죠. 근데 남쪽 사람들은 우리가 쓰는 이런 외래어를 북한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 해요..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이런 말이요. 얼음보숭이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나중에 탈북자들에게 확인해보니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문성휘 : 대량 탈북 시대 이전, 초기에 온 탈북자들에 의해 와전된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아니면 6.25 이전 해방직후 월남하신 분들에 의해 북한 언어가 와전된 것 같아요. 남한에서 만든 북한 사람 나오는 영화를 보면 북한 말이 이래요. '내래 이제 죽어도 좋습네다' 북한에 그런 말이 없거든요.
김태산 : '내레'는 평북 사투리니까 나도 그건 잘 쓰는데 '-네다','-네까?' 이런 말을 북한 전 지역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말인데 왜 남쪽에서 그걸 북쪽 사투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정말 자꾸 들으면 우리를 비하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탈북자들이 와서 그런 말은 없다고 계속 말하는데도 왜 영화에서 아직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돼요.
문성휘 : 그런데 북한도 역시 같아요. 북한도 남한 말을 흉내 낸 영화들이 있거든요. "가시 덤불길 헤치며 북상하시는..." 뭐, 아주 소름이 돋죠? 그리고 KBS를 흉내 내는 것도 "지금까지 KBS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케이. 비. 에스..." 이렇게 한다던가.
진행자 : 70-80년대식이네요.
문성휘 : 그래요? 저 남한에 와서 이렇게 방송하는 것은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김태산 : 이제 남북의 다른 말을 좀 합쳐볼까 해서 '통일말 사전'이라는 걸 찍어냈는데 이것도 한번 보니까 좀 많은 탈북자들에게 물어봐서 책을 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궐련'을 북한에서는 '말아초'라고 한다고 해놨더라고요. 어디서 누가 이렇게 말했나... 좀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앞으로 차이를 고치려면 참 노력이 많이 필요하죠. 단일민족이지만 떨어져 산 세월이 60년이고 현대 말과 옛날말의 차이도 있고.
진행자 : 방대한 사업 과제입니다... 북쪽에서 오셔서 남한 말투 때문에 당황스럽거나 재밌는 일은 없으셨어요?
김태산 : 제가 맨 처음 하나원가서 좀 웃겼는데 우리 말 중에 '일 없습니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하나원 선생이 '김 선생 요즘 건강이 괜찮나' 물어보기에 '일 없다'고 답변하니까 웃더라고요. 먼저 온 탈북자들이 일 없다는 표현은 여기서는 다른 뜻이고 그럴 때는 '괜찮습니다' 해야 한다는 거예요. 북쪽에서는 아주 무난하고 평안하고 아주 일도 없을 때, '일 없습니다'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다른 뜻으로 해석이 된다는 거예요.
진행자 : '상관없다', '상관 하지 말아라' 이런 뜻으로 아주 차갑게 들려요. 그래도 '일 없습니다' 정도는 이제 아는 사람도 많아요.
김태산 : 아... 남쪽 사람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군요. 상관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거든요? 그냥 일 없이 무탈하다는 말인데... 이런 경우가 생활에서 적지 않게 있죠.
문성휘 : 북한에서 함북도 말로 미싱을 마선이라고 해요. 그런데 평남 평양에서는 재봉기라고 하고요. 제가 여기 금방 왔을 때 집사람하고 함께 작은 재봉기를 샀어요. 신정 네거리 역 뒤편에 가면 중고 미싱을 수리해서 파는 곳이 있었는데 제가 지나가면서 한번 보긴 했는데 도대체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 상점 아주머니에게 "마선 파는 집이 있던데 어디죠?" 했더니 "마선이 뭐죠?"그래요. "거 있잖아요... 천 박는 거...".... 아주머니가 한참 생각을 하더니 "혹시 미싱을 보고 그러지 않아요?" 하더라고요. 전 또 미싱을 못 알아들은 거예요. 그러다가 그 분이 먼저 재봉기 보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봉기 맞다고 하니까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시더라고요. (웃음)
김태산 : 영어가 아닌 것도 차이가 나. 남쪽 분들은 순서 수사를 수량 수사에 포함해서 써요. 말하자면 우리는 '쌀 한 키로 사라' 하는데 여기는 쌀 일 키로, 이 키로, 삼 키로, 사 키로, 오 키로. 일이삼사는 순서 수사고 하나둘이 수량 수사인데 이건 남쪽이 혼동한 거예요. 왜 쌀에서만 유독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가마도 한 가마니 두 가마니 하잖아요? 쌀집 가서 '쌀 다섯 키로 주세요.' 하면 절대 못 알아들어요.
문성휘 : 또 처음에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이 남한은 수사를 읽을 때 백 단위부터 0 자를 빼요. 백오동 천사호 이러는데 우리는 백공오동 천공공사호 이러거든요.
김태산 : 이젠 숙달이 되니까 그것이 더 쉬워... 맨 처음에 오니까 그것이 참 거부감이 듭디다.
진행자 : 한도 끝도 없죠.
김태산 : 맨 처음에 와서는 이건 왜 이렇게 쓰지? 하는 그 차이일 뿐 알아듣죠. 왜 까나리를 멸치라고 하나 왜 낙지를 오징어라고 하지... 이런 건데 이건 뭐 어떤 놈의 잘못인지도 모르겠고 이제 왕래하면 북한식으로 따라가야겠는지 남쪽식으로 따라가야겠는지 정해야죠. 아, 언제나 통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말도 정말 통일이 돼야겠는데요.
문성휘 : 김태산 선생은 외국도 가봤고 해외에서 남쪽 사람들도 만나봤으니 말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같은 건 갑자기 한국에 와서 대성공사에서 만난 사람이 첫 한국 사람이잖아요? 정말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단순하게 '올라가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말 빛깔이 굉장히 다르니까요. 가장 먼저 허물어야 할 것이 언어 장벽 아니에요? 이게 자꾸 쌓여간다는 게 민족이 점점 분화된다는 증표거든요? 그런데 탈북자들이 점점 늘어나요. 올해 상반기에만 1천 5백 명 정도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런 식이면 하반기까지 3천명이 넘게 들어온다는 얘기거든요? 자꾸 이렇게 탈북자들이 들어오면 남한 사람들도 북한 말을 접할 수 있고 이런 순화 과정이 있으면 언어 장벽이 점점 얇아지겠죠...
저도 북한 티비 방송에서 남한 사람을 표현하는 걸 보고 너무 희화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요. 반대로 김태산, 문성휘 씨는 남쪽에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북한식 사투리가 기분이 나쁠 만큼 거슬렸다고 했습니다. 이걸 보면 우리는 참 서로의 말에 대해 나쁜 편견, 선입견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남북 관계의 경색 때문에 겨레말 사전 편찬 사업은 답보 상태라지만 선입견,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들은 우리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청취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죠.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입니다. 저희는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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