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남쪽에서 요즘 많이 팔린다는 담배를 한 갑 들고 있습니다. 보통 담배보다 아주 얇고 가느다란 담배인데요. 담뱃갑 모양도 아주 깨끗하니 내용물이 담배라고 생각 못할 정도네요. 그런데 이 담뱃갑의 3분의 1 이상이 경고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경고: 건강에 해로운 담배, 일단 흡연을 하게 되면 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담배 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다 요즘엔 담배의 위해성을 경고하는 사진도 넣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실제로 미국, 호주, 캐나다, 태국 등 40개 나라가 담뱃갑에 경고 사진을 넣고 있습니다.
저도 실제로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섬뜩합니다. 폐 수술로 가슴 부위를 절개한 남성, 흉측하게 망가진 치아, 흡연으로 까맣게 변해버린 폐, 엄마의 흡연으로 영향을 받은 태아의 사진... 사진 밑에는 직설적인 경고문, 예를 들면 '흡연은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다' 같은 직설적인 문구를 넣어서 담뱃갑 정면에 크게 인쇄돼 있습니다.
정말 이래도 피울래? 하는 식입니다. 심지어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고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담배 회사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국가에까지 줄줄이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되는 추세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흡연자들, 점점 설 땅을 잃고 있습니다.
애연가들이 많은 북쪽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들께는 정말 반갑지 않은 얘기지만 요즘 바깥세상이 이렇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는 담배 얘깁니다.
진행자 : 오늘은 담배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김태산 : 우리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 딱 한 사람 있죠. 여기 문 선생, 담배 피우죠. 아마 지금도 식사하고 한 대 피우고 올라왔을 겁니다.
문성휘 : 여하튼간 제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좀 너무 한 것 아니에요? 가는 곳마다 금연! 담배 피는 사람들이 어디 설 자리가 없어요!
김태산 : 문 선생, 솔직히 나도 담배를 피워봤으니까 문 선생 말이 이해는 되는데 한번 다른 나라에 나가보세요. 대한민국은 지금 따라가는 것이라 이 정도이고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은 길바닥에서 담배 피우고 다니거나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다가는 정말 망신 크게 당합니다. 여기는 아직 벌금 받아가고 그러지 않지만 거기서는 경찰이 딱 와서 벌금 받아 갑니다. 문 선생은 아무래도 금연 정책 같은 것에 대해 우리보다 체감 온도가 높으니 오늘 좀 의견이 있는 방송이 될 것 같네요. (웃음)
문성휘 : 김 선생이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심정을 몰라 그래요. 두 달 전까지 사무실 앞에 흡연장이 있지 않았어요?
김태산 : 재떨이도 있고 그랬는데?
문성휘 : 그게 다 없어졌어요. 우리가 담배 피울 데가 없어요. 걸으면서 피우면 걸으면서 핀다고 욕을 하지 서서 피우려면 서서 피울 곳을 다 없애 버리지... 그러면 저희들은 어디 가서 담배를 피웁니까!
진행자 : 몇 달 전에 공원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금지됐잖아요? 건물 앞에 이런 작은 자투리 공원에서도 다 흡연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김태산 : 그럼 건물 지으면서 건물주가 매 층마다 방을 하나씩 내서 배려를 해줘야겠네요.
진행자 : 그건 더 안 될 말이죠. 건물, 특히 1천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이 일단 다 법적으로 금연건물이고 요즘은 웬만한 건물들이 다 금연인데 그 안에 흡연실을 만들 수가 없죠.
김태산 : 예전엔 그래도 복도 한 쪽에 흡연실이 있었는데 그래서 다 없어졌군요.
문성휘 : 북한에서는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담배를 끊어라하지 않았어요? 자기들도 못 끊으면서 모든 군대들, 간부들은 담배를 끊어라!
진행자 : 그래서 끊으셨습니까?
문성휘 : 김일성, 김정일이 한 말은 다 집행했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지켜지지 못한 것이 바로 이겁니다. 끝내 못 끊었어요. 그러니까 숱한 간부들과 군인들이 짬만 나면 어디로 몰려갔는지 아세요? 휴식 시간만 되면 변소간으로 냅다 뛰어서 거기서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도당 책임비서가 변소간에서 몰래 숨어서 담배 피운다... (웃음)
진행자 : 북쪽에서는 성인 남성들, 대부분이 다 피우시죠? 이러다가 한국에 오시면 진짜 불편하시겠는데요? 이제 담배를 피울 곳이라곤 자기 집밖에 없는 건가요?
김태산 : 아... 저번엔 집에 있는데 문을 다 닫고 있어도 어디서 막 담배 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막 신경질이 나서 찾아보니까 화장실 환기구에서 냄새가 들어와요. 위층이나 아래층 사람이 화장실에서 피운 것 같은데 그 연기가 환기통으로 해서 역 순환돼서 우리 집으로 들어온 거죠. 그래서 환기통에 대고 나가서 담배 피우라... 소리치는 경우가 있어요. 밖에서 못 피게 하니까 집 안에서 피워서 그런 피해가 오는데...
문성휘 : 김 선생이 그 말 하니까 '대한민국 간 큰 남자 10 계명'이 생각이 나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부인에게 밥 달라고 투정질하는 남자...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건데 화장실에서 담배 피는 건 그런 10 계명보다 더한 특계명이예요. 그렇게 간 큰 남자가 있어요? 나 같은 건 애연가지만 집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가는 내일로 이혼 당할지 모릅니다.
진행자 : 그럼요. 집에 아이들 있는 집은 간접흡연도 안 좋다고 집에서 담배 못 피게 하죠. 아파트도 요즘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것 때문에 아래윗집이 싸우기도 하고요...
김태산 : 아주머니들이 집에서 냄새 난다고 내쫓아 밖에서 피우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 선생은 집에서도 갈 데 없고 밖에서도 어디 갈 데 없네요.
문성휘 : 진짜 불쌍하죠.
진행자 : 흡연자들 요즘 정말 죄인 취급 받습니다.
김태산 : 근데 이렇게 금연하라고 하지만 남쪽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워요. 큰 흠으로 안 되더만요?
문성휘 : 맞아요. 한국은 남자들이 담배 피우는 건 북한보다 적은데 여성들은 북쪽보다 많아요.
진행자 : 통계상으로도 남성 흡연율은 낮아지는데 반해 여성 흡연율은 일정 정도 올라갔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술보다는 담배에 대해 더 엄격했잖아요? 어른들과 앞에서 술은 마셔도 맞담배 못 한다고 했고요. 아직도 여자들이 적당량 술을 마시는 것이 큰 흠이 아닌데 반해 여성 흡연에 대해서는 좋게 보지 않죠. 근데 여성들이 이것에 반발하는 심리도 있고 사회생활도 활발해지면서 여성 흡연자들이 증가한 것이죠.
김태산 : 북쪽에서야 평양에서나 볼 수 있을까? 지난 기한에도 북쪽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이 있긴 했는데 당시에도 좀 깬 축에 속하는 여성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근데 남자들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울 경우 아주 나쁜 현상으로 보는데 제가 평양에 가니까 그 때 재일동포 부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일 때는 조금씩 피우더라고요. 집에 고급 담배가 있으니까 좀 피우고 그러는 걸 봤어요.
문성휘 : 밖에서 노골적으로 피우는 거예요?
김태산 : 아니, 집에서 피우는 거죠. 근데 남쪽에서는 밖에서나 식당 같은 곳에서도 피우기도 하잖아요?
진행자 : 북쪽에서도 여성 흡연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가 봐요?
문성휘 : 보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노동 단련대 쯤은 끌려갈 걸요?
김태산 : 아직 여성들이 술 마시는 것도 고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요.
문성휘 : 여성들이 만약 공개적으로 모여서 여성들끼리 술놀이를 했다... 만약 남성들도 함께 모인 곳에서 반잔 정도 마셔라 해서 마신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닌데 여성들이 자체로 조직해서 술놀이를 했다면 당장에 자본주의 황색바람이라고 끌려가거든요.
진행자 : 근데 공산주의 인간 평등사상이라면서요? 왜 여성들은 술도 안 되고 담배도 안 되나요?
김태산 : 평등사상에도 도덕 규율에서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거든요. 떠들지 말며 조용히 웃고 담배, 술을 삼가며... 말하자면 여성은 남성답지 말아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문성휘 : 말이 평등이지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요. 일단, 북한 노동당 간부 명단을 보면 여성들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대신 남측은 기업, 정치인, 대학의 교수들까지 여성들의 비율이 늘어나죠. 그러니까 여성들이 밖에서 벌고 남성들이 집안 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만큼 여성들의 지위가 늘어났다는 얘기죠. 북한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니까 북한은 담배나 술이나 여성들은 할 수 없다고 차별하는 거죠.
김태산 : 아! 담배를 끊게 하자고 요즘 담배 값을 인상하자 이런 얘기도 있던데... 문 선생, 여기서는 담배 값이 얼마나 되나요?
문성휘 : 이천원짜리도 있고 이천오백원짜리도 있는데 대부분 이천오백원입니다.
김태산 : 비싸네요...
문성휘 : 비싸요?
진행자 : 2.5 달러 정도면 비싼 거 아닙니까?
문성휘 : 북한에서 장백산 같은 담배 한 갑이면 한 달 월급이 들어가요. 근데 여기서는 2.5달러면 밥 한 끼 값도 안 되잖아요? 진짜 싼 건데요?
김태산 : 아... 여기선 북쪽보다 노임이 높으니까 그에 비해서는 싼 거네.
진행자 : 요즘 남쪽에서 외제 담배는 얼마나 하나요?
문성휘 : 한국 담배는 보통 이천오백원인데 일본 담배랑 미국 담배도 역시 같아요. 중국 담배만은 천원, 천오백원... 남해문인가 하는 중국 좋은 담배가 있는데 이건 천오백원. 장백산은 천원으로 보통 담배보다 천원정도 싼데 그래도 사는 사람 없어요.
요즘 2.5 달러 정도 하던 담배를 8달러 선까지 올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사무실의 유일한 흡연자, 문성휘 씨는 이 소리에 펄쩍 뛰지만 어쩌겠습니까? 정말 금연 권하는 사회입니다. 자유사회라는 남쪽에서 유독 왜 이렇게 흡연은 강제하는지, 문성휘 씨 같이 담배를 피우는 분들은 목소리 높여 항의하는데요. 왜 그런지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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