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실버?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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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엔 문성휘 씨에게 물었습니다.

진행자 : 올해 몇 살 이세요? 물어봐도 되나요? (웃음)

문성휘 : 네, 42살 됩니다.

김태산 : 나보다 18년 아래면 아... 정말 부럽다.

진행자 : 은퇴 준비 안 하십니까?

문성휘 : 아뇨! 아직은 근심이 없어요. 그렇지만 연금은 들었어요. 집 사람도 다 들고 있고요. 그래서 걱정이 조금은 덜 합니다. 여긴 늙으면 정년 퇴직금이 나오고 연금이 나오잖아요? 보험도 있고요. 각 보험 회사에서도 실버 상품이라고 해서 월급 받을 때 일정 금액을 내고 60살 이후 내가 정하는 나이부터 한 달에 일정한 금액을 타는 연금 상품이 있는데요. 개인들은 그런 보험 상품도 많이들 들죠. 북한은 그런 제도가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북한에도 연금이 있긴 한데 그걸 갖고는 쌀 한 키로도 살 형편이 못 되니 문제죠.

남쪽에서 나이 40세...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한창 일할 나이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문성휘 씨, 지금 노후 준비, 은퇴를 준비를 하냐는 저의 질문에 아직 일 없다고 정색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남쪽에선 40세면 부지런히 은퇴 이후의 생활을 준비해야할 나이라고 얘기합니다.

남쪽에서도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최고의 은퇴 준비는 자식 농사였습니다. 자녀들이 나이든 부모를 부양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요즘엔 은퇴 이후에도 적잖은 생활비가 들고 또 평균 수명도 예전에 비해 10년 이상 늘어나면서 은퇴 이후 생활에 대한 대비가 꼭 필요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은퇴 준비, 뭘 어떻게들 하고 있을까요? 남한 사람들은 노후 준비하면 주로 연금, 연금 보험 같은 돈을 생각하는데요.

김태산 씨와 문성휘 씨는 이런 남한 사람들의 태도가 의아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나이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그래도 한국은 매 아파트 마다 노인들을 위해 경로당 있고요. 복지관에도 노인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엔 그런 시설이 없어요. 그저 늙은이들한테는 괜히 모여 앉지 말라 그러죠.

진행자 : 그럼 노인들 뭐하시면서 소일하세요?

문성휘 : 그저 자기 방 윗목에 박혀 있어야죠. 조금 힘이 있으면 뙈기밭을 나가서 가꿔야하고요. 사실 늙은이만 되면 그냥 죽으라는 얘깁니다. 옛날엔 그래도 노동당원이라고 예순이 지나도 당 회의에 참가하고 생활총화도 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명예 당원이라고 그것마저도 없애 버렸으니까 이제 모이지도 말래, 회의 부르는 데도 없고 경로당처럼 늙은이들 모여서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없으니까 진짜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갈 때 가라는 얘기죠.

진행자 : 아, 진짜 나이 들어 서럽다는 얘기 나오겠습니다.

김태산 : 참 늙으면 남자들이 불쌍해져요. 여자들은 모여서 말도 하고 그러는데 남자들끼리는 모여앉아 있지도 말라고 하고 남자 늙은이들이 북쪽에선 진짜 불쌍합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남쪽에서는 지금 전체 인구 중 60대 이상 노령인구가 11%에 달합니다. 그러니 이런 저런 노인 시설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문성휘 씨가 말한 노인정이나 복지관들도 있지만 사실 어르신들은 노는 것보다 일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남한 정부가 안고 있는 큰 과제 중 하나가 바로 노령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입니다.

김태산 : 맞습니다. 아, 지하철 택배라고 들어봤나요? 저는 지하철을 자주 타니까요. 맨 처음에 지하철 택배 일하는 노인들을 보고는 도대체 뭔가 했어요. 늙은이가 짐을 어깨에 몇 개를 매고 휴대전화를 귀에 붙이고 '금방 갑니다. 5분 안에 도착해요' 막 이러니까요. 뭐하는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신문에 '지하철 택배가 떴다'는 기사가 나오더만요. 일하는 사람들이 다 65살 즈음으로 보이는데 다 팔팔한 늙은이들에요. 택배, 일종의 소포 배달이죠. 순수 손으로 짐을 이고 지고 지하철로 움직이더라고요.

진행자 : 보통 택배는 자동차로 운반하는데 이건 지하철을 타고 나르는 거죠. 남한은 경기도 인근까지 지하철이 잘 돼있고 노인분들은 지하철 표가 공짜니까 그걸 이용하는 건데요...

김태산 : 맞아요. 모두 가벼운 것들 들고 다니더라고요. 정말 괜찮겠어요. 움직이는데 돈이 안 드니까 쏠쏠하지 않겠어요? 아, 정말 이렇게 해서 일자리가 또 만들어지는구나...

문성휘 : 저희 집사람이 요양원에 실습을 나가보니까 거기서 노인들에게 춤을 배워주더래요. 북쪽 식으로 말하자면 율동체조 같은 건데요. 가르치는 선생들도 역시 나이든 분들이더래요. 젊었을 때 그쪽 분야에 종사하던 분들이 은퇴 이후에는 노인 강사로 나선 것이죠.

진행자 : 또 요즘은 고궁 같은 곳에도 안내하시는 노인들이 많아요.

김태산 : 맞아요. 고궁에 표 팔고 안내하는 사람들도 노인들이 많아요. 일본 사람들 데리고 다니고 그러더라고요.

진행자 : 이렇게 일자리들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워낙 노인인구가 많으니까요.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유 시간 보내는 것이 고역인 분들도 계시죠.

김태산 : 그런데 나는 사람들 보면 너무 답답해요. 낚싯대 하나 척 매고 나서면 낚시터에서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는데 말이에요. 낚시터에서 전화 한통이면 김밥도 배달해주고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서 명상해도 되고 책을 읽어도 되고 얼마나 좋은데 왜 노인정에 찾아가고 그래요?

진행자 : 근데 김 선생님, 어떤 사람들은 낚시가 더 고역인 사람도 있습니다.

문성휘 : 아, 난 진짜 김 선생이 이해 안돼요. 나는 나이 들면 따뜻한 노인정에 누워서 같은 장기나 놀면서 소설책도 보는 게 좋지 낚시는 술 좋아하는 김 선생이나 할 일이고요. 그리고 요샌 노인정에서 황혼 연애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대요. 난 연애나 하겠네요. (웃음)

진행자 : 맞습니다.

문성휘 : 근데 제가 제일 좋아 보이는 건 동사무소, 요즘은 주민 센터라고 하죠? 동사무소와 내가 다니는 교회 같은 곳에 가면 쌀독이 있어요. 쌀독을 가져다 놓고 쌀이 남는 사람들이 거기다가 쌀을 부어주고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 같이 쌀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걸 퍼가는 거죠. 굶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얼마나 좋아요?

김태산 : 그렇다고 해도 그걸 또 누가 싹 다 채가고(도둑질하고) 그런 일은 없잖아요.

진행자 :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볼만 한 일은 그렇게 쌀독에서 쌀을 퍼가야 하는 분들도 아직 남한 사회에 있다는 거죠.

김태산 : 어느 사회에나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이 없을 순 없어요. 어느 사회에나 다 있는 거죠.

문성휘 : 근데 남한에서는 가을만 되면 벌써 학생들이 연탄 같은 것을 준비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러잖아요? 저는 참 그런 걸 보면 다행스럽고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이 놓이는 게 이런 기초들이 있으니까 어려움 없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리고 제가 제일 답답한 것은 한국에서는 왜 늙으면 농촌으로 안 가세요? 다들 시내에 사시잖아요?

김태산 : 정년퇴임하면 산골에 작은 집을 사서 채소 심으면서 낚시하면서 살면 되잖아요? 쌀을 살 돈만 있으면 남새는 키워서 먹고 고기는 호수에 있는 것 잡아서 먹으면 되잖아요? 쌀과 소금만 있으면 여생 마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남쪽 분들이 돈으로 노후를 보내려는 경향이 농후한데요. 우리는 그런 걸 보지도 못했고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돈이 없어도 노후는 걱정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탈북자들은 노후를 걱정했댔자 나올 데가 없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현명한 처사는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못 사니까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죠.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시골이 인심이 좋잖아요. 파 한쪽도 서울에서는 돈 주고 사 먹어야하지만 시골에서는 이웃집에 가서, 나 밭에서 파 한 뿌리 뽑아간다... 이럴 수도 있는 거고요. (웃음)

진행자 : 문성휘 씨가 생각하는 본인의 노후는 어떤 모습인가요?

문성휘 : 김 선생이 시골에 가서 자리 잡으면 따라 갈려고요. (웃음)

진행자 : 생각해보면 김 선생도 앞으로 20년은 더 사실 것이고 저희들의 노년은 30-40년은 남았잖아요? 그 이후에는 진짜 많은 것이 달라져서 우리의 노후는 어떻게 될지 사실 예측하기 힘들어요. 그야말로 통일돼서 두 분이 북쪽 고향에 노후를 보낼 수도 있고요.

김태산 : 진짜 여기 두 사람은 앞으로도 자기가 살아온 것만큼 더 살겠네요. 이제 40년 후엔 누구나 백 살까지 살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 노후 걱정은 하지 말아요. 하늘에 사람을 만들어 낼 때는 죽을 길까지 열어 놨으니까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죠... (웃음)

최근 남한 보건복지부는 노후 준비를 점수로 환산해 볼 수 있는 노후 준비 지표를 선보였습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 소득과 자산, 여가 활동, 사회적 관계 등 크게 4개의 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깁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으세요? 물론, 현재 생활이 너무 팍팍하면 미래를 챙길 여유가 없지만 이 지표는 중요한 것을 하나 보여줍니다.

은퇴 준비는 소득과 자산 즉,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건강한 생활 습관, 취미, 친구와 이웃, 친구이자 애인 같은 배우자가 더 중요한 항목이랍니다. 이런 것이 갖춰지면 늙어도 서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