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자존심과 키 높이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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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신던 굽 높은 키높이 구두를 착용한 김정일 위원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서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쪽에 온 탈북 청년들이 외모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 1위는 바로 키입니다.

INS - 여성들이 키 작은 남자는 선호하지 않는 추세니까 더 스트레스 받게 생겼어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데요.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었던 걸 보면 옛날엔 큰 키가 그다지 자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얘기가 다릅니다. 키가 곧 자존심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민감한 얘기네요. 키 얘기 한번 해봅니다.

진행자 : 남쪽 사람들과 키 차이가 좀 나죠?

김태산 : 키요?

진행자 : 네, 오늘 키 얘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웃음)

김태산 : 그러지 않아도 오늘 인터넷을 보니까 미국, 남한, 북한 세 병사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 올라왔던데 저도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팍 상하더라고요. (웃음) 미국 병사는 원래 키 큰 사람들이니까 그렇다 치고 남쪽 병사한테도 머리 하나는 작아 보이더라고요. 남쪽 사람들 키가 크다고 하지만 이렇게 딱 비교해 놓으니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웃음)

문성휘 : ‘키 크고 싱겁지 않은 것은 배안에 병신이다’라는 말이 있죠. (웃음) 진짜 여기 여자들이 왜 그렇게 큽니까? 너무 그러니까 싱거워 보이고 이상하게 보이더라고요. (웃음) 제일 화가 나는 건요. 지하철에 탔는데 아침 출근 시간에 복잡할 때 내 양쪽에 젊은 여자들 서 있는 겁니다. 저만 가운데 쏙 파묻히거든요. 여대학생들이 진짜 키가 커요..

진행자 : 그건 높은 신발 덕분이죠. 하이힐이라고 해서 굽 높은 신발들을 많이 신지 않습니까?

문성휘 : 그거였구나!

진행자 : 방법이 있습니다. 문 선생도 키 높이 구두를 신으시면 어떨까요? (웃음) 남성용 키 높이 신발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웃음)

문성휘 : 그래요. 저도 키 높이 구두도 있고 키 높이 깔창도 있는데요. 남자들은 기껏 높여야 4-5센티 되나요? (웃음) 이런 걸 신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요?

김태산 : 키 높이 구두는 이제는 저 세상 사람이 된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신었다고 하잖습니까? 저도 키가 작으니 한번 신어 볼까 하다가도 늘그막에 주책 없다고 할까봐 안 신는데 젊은 사람들에겐 매우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특히 젊은 세대들, 탈북 대학생들은 이게 굉장히 고민이라고 많이 얘기해요.

김태산 : 여성들이 키 작은 남자는 선호하지 않는 추세니까 더 스트레스 받게 생겼어요.

진행자 : 그게 제일 큰 고민이 되는 거죠. (웃음)

김태산 : 근데 1960년대엔 남북 운동선수를 비교해보면 북쪽 선수들이 훨씬 컸거든요. 그때 북쪽 사람들이 절대 작지 않았어요. 북쪽에선 온 실향민들만 봐도 크거든요. 그 후에 경제가 하락하면서 키도 같이 작아진 것 같아요.

문성휘 : 먹을 것이 없으니까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별 걸 다 먹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 사람을 돼지에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돼지도 먹지 못하면 크지 못하지 않습니까? 다를 게 크게 없는 거죠. 생각해 보면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민족의 키가 다 줄었습니다. 북한 사람들 키 작다 할 때는 자존심은 상하는 데 싸움을 할 수 없고... 오늘도 제가 모임에 갔는데 늙은이들이 모였는데 늙은이들은 저랑 키가 다 비슷해요. 몇몇 큰 사람도 있지만 저와 거의 다 비슷하거든요... 근데 지금에 와서는 남북의 키 차이가 하늘과 땅이죠.

문성휘 : 남한의 지금 30대 중반 이후부터는 키가 부쩍 큰 것이 알리거든요? 그 이전 세대들은 저희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엔 키 큰 원인이 우유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평양 얘들은 콩 우유를 주는데 지방은 못 주잖아요? 그런데 평양 얘들이 지방 얘들보다 훨씬 키가 크잖습니까? 남한은 아무 때나 우유를 마실 수 있으니까...

김태산 : 영양 상태에 따라 키가 크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거죠. 솔직히 우리 집안을 놓고 봐도 우리 두 딸 중에 맏딸아이는 스무살 때 왔고 막내는 4살 때 왔어요. 큰 얘는 158센티인데 막내는 170센티가 넘어요. 그러니까 큰 아이가 배가 아파서 막 그러죠.

문성휘 : 북한도 워낙은 인민군대 가는 키가 150센티였다가 1980년대 중반엔 1 센티가 줄었어요. 그때는 대부분 남자들이 군대에 나가겠다고 할 때니까 키가 작은 얘들은 철봉에 매달려 키 크기 운동을 한다고 막 그랬죠. 그러다가 90년대 초엔 147센티로 줄었고 다시 2천년엔 145센티로 줄더니 이제 142센티라잖아요? 지금 군대 가는 아이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난 얘들이니까 키가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죠. 근데 진짜 남한은 어떻게 이렇게 키가 컸는지... 먹는 것도 잘 먹었다지만 민족의 고유한 키도 있잖아요? 제 키가 170센티가 조금 안 되는데 북한에선 표준 키였지만 남쪽에선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남한은 평균 키가 얼마입니까?

진행자 : 지금은 남자 평균 키 174센티, 여자가 160.5센티랍니다.

김태산 : 이거 혹시 커피를 마셔서 키 크나? 북한은 커피 없잖아요? (웃음) 아까 문 선생, 우유 못 마셔서 키 못 큰 것 아닌가 하는데 우유라는 건 난 구경도 못 해봤네요. 우유가 나올 데는 중앙당 젖소 농장밖에 없으니 보지도 못하고 컸습니다. 평양은 그래도 콩을 수입해서 어린아이들에게 콩 우유를 주지만 진짜 젖소에서 짠 우유는 보고 죽으려고 해도 없는 거예요.

문성휘 : 제가 그런 면에서 김태산 선생보단 좀 낫네요. (웃음) 한때 염소를 기르라고 얼마나 못살게 굴었어요. 저는 시골 출신이니까 그때 염소 기르며 염소우유를 짜서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어요. 제가 그래서 김 선생보다 좀 키가 큰 모양입니다. (웃음) 그 염소도 잘 길러서 얘들한테 먹이면 키도 크고 좋겠는데 개인들이 목장 수준으로 염소를 못 기르게 하거니와 10마리 이상 기르면 절반 이상을 인민군대 지원을 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누가 미쳤다고 염소를 기르겠어요? 한 때 북한이 풀 먹는 집짐승을 엄청나게 떠들었는데 그게 다 망한 것도 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김태산 : 돼지도 기르면 인민군대에 무조건 갖다 바쳐야 하니 주인은 그저 빈 돼지우리만 바라보는 거죠. 경제 돌아가는 거 보면 답답해요...

문성휘 : 하여튼 김정일 선군 조선이라니까 김정일 동지 키를 다 맞춰가는 것 같아요. 얘들 키를 키우자면 우유도 마시게 하고 고기도 먹여야 하는데 그거 다 어디로 갔어요? 군대도 못 먹고 인민도 못 먹고...

김태산 : 그리고 수확량이 높다고 그저 강냉이만 심게 하니 콩 한번 먹기 힘든 거죠. 얘들이 콩이 없으니 두유, 두부는 물론이고 콩기름도 못 먹죠.

문성휘 : 남한도 또 보면 굉장히 문제예요. 식당이랑 가면 얼마나 버리는 것이 많습니까? 한쪽은 없어서 그러는데 여긴 또 너무 넘쳐 나니까요. 이것도 상당히 문제에요. 저희 집 앞에 중학교가 있는데 한쪽에 우유가 이렇게 쌓였어요.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얘들이 점심시간에 나눠준 우유가 먹기 싫어서 구석구석 던져놓은 걸 모은 것이라고... 이거 진짜 북한에서 들으면 얼마나 가슴 아픈 얘깁니까?

김태산 : 어쨌든 가슴 아픈 얘기지만 경제가 발전하면 먹기 싫으면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거죠... 21세기 들어서 먹는 것 걱정하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 중에서 북한이 있다는 것,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해 그냥 이해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앞으로 자기 후대들도 우유도 모르고 그 길로 간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는데요...

문성휘 : 이제 좀 있으면 광명성 3호 쏜다고 난리인데요. 정말 숱한 돈을 하늘에 뿌리는 행위잖아요? 북한 주민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좀 생각해보시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한국기술표준원에 따르면 한국 20대 젊은이의 평균 신장은 1미터 74센티, 몸무게는 69킬로그램입니다. 남쪽에 들어온 탈북자의 평균 신장은 165센티미터로 9센티나 차이가 납니다. 남북의 차이만큼이나 키 차이도 큰 것 같은데요. 이 차이는 언제쯤 좁혀질 수 있을까요?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