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비행기 화장실 구멍은 바닥이 보이나?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평양 무역일꾼 출신,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출신 문성휘 씨가 전해 드리는 진솔한 남한 땅 정착기 <내가 사는 이야기>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북한을 탈출할 결심을 했고 지금까지 남한 정착 생활은 어땠는지를 얘기했습니다. 이제 남한 생활도 김태산 씨는 8년, 문성휘 씨는 5년이 지나 고참, 북한식으로 하면 '구뺑이'인데요.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어땠을까요?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두 번째 시간입니다.

남한에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김태산 씨는 외국에서 바로 튀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김태산 : 북쪽에서 이 방송을 듣는 분들도 김태산이 도대체 어떻게 남조선으로 갔는지 경로를 알고 싶다고 했을 겁니다. 제가 나가 있던 외국 국가에서 남쪽에 들어오려면 비자, 즉 사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남한에 들어왔을 때는 이 사증이 없었습니다. 아마 북쪽에서는 국정원에 매수돼서 끌려 들어왔다고 선전을 하겠지만 저희들은 처음에는 유럽으로 갈까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북쪽 땅이 가까운 남쪽으로 가자해서 이쪽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저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그쪽 땅에서도 비자가 없으면 비행기 표를 팔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여권에 '꼬리아'라고 돼 있으니 특별히 확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표를 사서 그때는 직행이 없었으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들어오게 돼 있었거든요? 사실 독일에 내려서도 사증 검사를 다시 하는데 그 때도 정말 우연치 않게 온 가족이 벗어났습니다. 솔직히 여기 와서도 국정원에서 조사할 때 이 사람이 거기서부터 혼자 온 것도 아니고 북조선 빨간 여권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여기까지 날아들어 왔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자꾸 그래서 그러면 비행기 표 산 곳이랑 통과한 곳에 알아보면 될 것 아닌가 그랬습니다. 어쨌든 아찔아찔한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행자 : 비행기 타고 남쪽 땅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바늘 방석이셨겠습니다.

김태산 : 거기서 여기까지 거의 13시간 오는데 저희 집 사람은 오면서 계속 울고 막내딸은 계속 엄마만 올려다보고... 저도 밤새 한잠 못 자고 있는데 10분 후면 인천 공항에 내립니다하는 겁니다. 서울은 김포 공항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탄 줄 알고 인천으로 비행기를 돌리누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내원 아가씨한테 '동무, 비행기가 왜 김포로 안 가고 인천으로 갑니까?"물었더니 안내원이 김포공항은 이제 국내선만 다니고 국제공항은 인천으로 옮겼다고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서야 한숨을 쉬었습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도 누가 오라는 길을 온 것이 아니니 누가 왜 왔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이 거의 한 시간 동안을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부인과 아이는 그냥 앉아있고 저는 인천 공항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가 자수를 했죠. 그때 당시에 남쪽 사람들이 다 놀랐죠.

진행자 : 처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평양에서 왔습니다!" 하셨습니까?

김태산 : 네, 그랬는데 사람들이 믿질 않더라고요. 아마 오늘 제 설명으로 인해 북쪽에 있는 사람들도 궁금증이 좀 풀렸을 겁니다. 이 방송을 다 듣고 있을 테니까요... 근데 뭐, 북쪽 사람들은 여기 문 선생이나 나 같은 사람에게 도망쳤다고 하는데 물론 사실입니다. 그쪽에 알리지 않고 왔으니 도망친 것만은 사실인데 '왜 도망쳤는가' 하는 것을 그쪽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때 당시 여기 오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잡혀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돼야 했었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그래도 아마 다들 왜 떠나야 했는가, 그 이유를 마음속으로 충분히 헤아리실 겁니다.

문성휘 : 저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거치는 경로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제가 보건 데는 탈북자들이 많이 잡혀서 북송된다고 하지만 일단 남한행을 결심하고 떠나기 시작하면 도중에서 붙잡히는 사람은 약 10%밖에 안 됩니다. 90% 정도는 다 성공하거든요? 그런데도 오는 길은 참 힘듭니다. 엄청나게 힘들고 사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도중에 포기하시는 분들도 봤거든요. 아...참,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 그분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때 조금 더 대담하게 결심하고 따라나섰더라면 그냥 왔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고요. 저는 중국에서 삼국을 거쳐 왔는데 실은 삼국도 안전하진 않아요. 거기도 북한의 재외 공관이 다 있고 보위부 사람도 있고 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지죠. 그리고 비행기를 탈 때도 눈치를 보고 여러 가지 고통이 많아요. 아마 김 선생은 애초에 비행기를 많이 탔다니 비행에 대한 공포는 없었을 거예요? 저도 딱 비행기에 올랐을 때 '이제 한 시름 덜었다...','이제 더 이상 쫓기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비행기도 대사관 안과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은 놓였는데 비행기를 타니까 너무 흥분되는 거예요. 아마 내가 살던 고장에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 거의나 없을 걸요? 그런데 내가 타보니 굉장히 흥분되는 거예요. 아! 그런데 제가 몽골을 거쳐 와서 몽골에서 비행기를 탔는데 몽골은 한국 비행기처럼 이렇게 큰 비행기가 아니에요. 기껏해야 100석밖에 안 되는 작은 비행기인데 제일 두려웠던 것은 비행기가 뜨자마자 스튜어디스? 비행기 승무원들이 앞에 나서서 몸짓으로 안전 수칙을 배워주는데 무용하는 춤 동작같이 해줘요. (웃음) 안전벨트 차는 법, 구명조끼 입는 법을 배워주는 건데 그걸 보니까 덜컥 무서워지는 거예요. 비행기라는 것이 이렇게 사고 많은 것이 아닌가? 아찔한 공중에서 떨어지면 우리 같은 건 정말 흔적도 없지요? 그게 몹시 무서웠고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꼬박 앉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왔거든요?

진행자 : 화장실은 어떻게 하셨어요?

문성휘 : 아, 네! 화장실은 갔어요. 오기 전부터 한 10시간 동안 꼼짝 못하게 했거든요? 담배도 못 피우러가게 해요. 아... 지금 생각해도 그 사람들 왜 담배도 못 피우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진행자 : 그런데 담배는 비행기 안에서도 못 피웁니다.

문성휘 : 그렇죠. 근데 그때는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사람들이 모두 화장실을 가니까 혹시 화장실에 가면 환풍 장치가 돼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전 어떻게 생각했냐하면 북한 열차 화장실은 이렇게 보면 땅바닥이 내려다보이지 않아요? 땅바닥으로 그대로 다 뿌려져요... 저는 비행기도 그럴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러면 그 구멍에 담배를 좀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죠.(웃음) 근데 화장실이 다 수세식으로 돼 있고 다 꽉꽉 막혀 있는 거예요!

진행자 : 아니, 그것이 뚫려 있으면 기압차 때문에 어떻게 되겠어요?

문성휘 : 그 기압차이라는 것도 한국에 와서 미국 영화들이랑 보고 알았죠.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사실 비행기 창문으로 바깥이 잘 안 보이기에 그 구멍으로 보면 좀 더 실감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웃음) 그리고 비행기에서 음식을 나눠주잖아요? 처음에는 돈을 내야 음식을 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희는 돈이 없으니까 저희는 주는 음료도 사양하고 그랬죠. 그리고 밥을 주더라고요?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어요. 이거 돈은 받지 않나... 그런데 어차피 주는 거니 먹자! 그런데 그 안에서 맥주도 주고 했는데 저희는 모르니까 그 아까운 맥주도 하나도 못 마셨어요. (웃음)

김태산 : 지금 문 선생의 말을 들으면 그냥 웃기는 말 같지만 이것이 북쪽 정부가 사람들을 옭아매 놓았다는 하나의 증표죠. 기자 선생, 이 말 들으면 참 미개하다 생각했죠?

진행자 : 미개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단지 문성휘 씨는 대학도 나오고 고급 교육을 받으신 분이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셨나? 의아하기는 합니다.

김태산 : 그래서 우리가 그때를 돌아가 회상해보면 참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진행자 : 그렇게 도착하신 남한, 첫 인상은 어떠셨습니까?

김태산 : 저는 자본주의 국가들도 보고했으니까 다른 건 없지만 처음 느낀 것은 아... 참, 북쪽에 있을 때 남조선이 발전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길거리 다니는 자동차의 90% 이상이 다 한국제고 조사받던 국정원, 하나원에도 들어가 있는 가정용 전기제품도 100% 한국산인 거예요? 나는 솔직히, 그런 고급 건물에는 일본산이 있지 않겠나 했는데 일본제는 거의나 하나도 없고 몽땅 한국산이라는데 정말 놀랐어요. 언제가야 북쪽도 이런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룩하겠느냐 하는 것을 저는 아직도 숙제로 남겨둡니다.

문성휘 : 활주로에 내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젠 완전히 끝이다... 내가 오고 싶었던 땅에 도착했다. 회한이 많죠. 눈물이 정말 많이 흐르더라고요. 그리고 그 순간, 김태산 선생이 그렇게 금지하라고 했던 욕심이 살아나는 거예요? 여기는 굉장히 자유스럽고 모든 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 진짜 억만장자가 되겠다!' (웃음) 북한에서도 정주영에 대해서 많이 떠들었거든요? 아버지 소를 팔아가지고 가서 큰 부자가 됐다고요. 나는 왜 그 사람처럼 못 돼? 나, 밤을 열 백번 패는 한이 있어도 억만장자가 된다! 기어이 고향에 갈 때 멋진 차를 타고 들어가겠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갓난아이의 철없는 생각이었달까?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것이 많아요.

진행자 :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남한에 도착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8년 또 5년의 세월을 보내셨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태산, 문성휘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