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점 보신 적 있으시죠? 보통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 일이 잘 안 풀리고 미래가 막연할 때 점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탈북을 앞두고 점을 보셨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독일에서 용한 '점쟁이 문어'가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파울이라는 문어는 어떤 국가가 우승할지 기가 막히게 잘 맞혔습니다. 또 얼마 전엔 남한의 한 유명 기업이 거액의 선물 투자를 점쟁이에게 맡겼다가 많은 손실을 봤다는 보도가 나와서 사람들의 빈축을 샀는데요. 미래를 두고 누군가에게 묻고 기대고 싶은 심정, 누구나 다 비슷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울수록 그 절박함 커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미신과 점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한국은 솔직히 미신을 믿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북한에서는 여러 번 봤거든요.
진행자 : 많이 보셨군요? (웃음)
김태산 : 안 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보통 여자들이 많이 보러 다니죠.
문성휘 : 우리 때는 여자 중학교와 남자 중학교가 있었거든요? 중학교가 다르지만 여자 중학교 얘들을 남자 중학교 얘들이 다 압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 사는 여자 아이가 갑자기 일여덟달(일곱 여덟 달) 없어졌어요. 소문으로는 중국으로 뛰었다고 했는데 몇 달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보안서에서도 그 아이의 일을 알았지만 자꾸 붙잡아 가는 것이 시끄러우니까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걔가 중국에 가서 그런 것을 배워왔다는 소문이 도는 겁니다. 98년도 이 즈음인데 만포역에서 강계까지 가는 열차가 있었어요. 배낭에다 중국에서 나오는 난닝구를 가뜩 사서 넣어놓고 이걸 갖고 가서 팔아야겠는데 증명서가 안 나온 거예요. 고민을 하다가 길에서 걔를 만났어요. 급한 김에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좋은 수가 없겠느냐고 물으니까 간단하다, 철길 자갈돌 중 큰 걸 주워서 역전 안전소 문 앞에 가져다 놓으라는 거예요. 알았다고 하고는 걔가 시킨대로 철길에서 돌을 주어서 안전소 앞으로 갔는데 어찌나 떨리는지... 안전원들이 문을 열었다가 제가 돌을 들고 서 있는 걸 보면 어째요? (웃음) 어찌어찌 해서 문 앞에 돌을 내려놓고는 냅다 달려서 기차를 탔어요. 근데 진짜 그게 통한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기차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검열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 그날 밤으로 강계에 도착해서 물건을 넘겨주고 그때 돈으로 700-800원이 떨어져서 그걸로 멋진 잠바를 하나 사 입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동무들한테 가서 그 얘기를 했는데 얘들이 그 다음부터 장사갈 때마다 다 따라 해서 아마 그때 보안원들이 굉장히 시끄러웠을 거예요. 아침에 문을 열면 웬 놈이 주먹만 한 돌을 자꾸 문 앞에 가져다 놓았으니까... (웃음)
김태산 : 그 친구는 신이 내렸나보네요. 그런 걸 잘 알게...
문성휘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 진짜 배 떨어지는 걸 미리 알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웃음)
진행자 : 점이라는 게 그런 것이죠?
김태산 : 그렇지요. 이렇게 문 선생처럼 한번 맞았다고 소문을 내면 그게 입소문을 타고 퍼져서 족집게라면서 사람이 밀려드는 거죠.
진행자 : 사실 점은 남쪽 사람도 만만치 않게 보죠?
문성휘 : 남쪽이 오히려 점성술은 더 발전한 것 같습니다. 점보는 값이 별로 비싸지도 않다면서요? 근데 오히려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왜 그런가 모르겠어요. 한국에 오니까 오늘을 즐겨라, 그날그날을 즐겁게 살아라... 이런 말들을 많이 들으니까 저도 생각이 그렇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웃음)
진행자 : 그렇게 말씀은 하셔도 문 선생도 매일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는 확인하시던데요?
문성휘 : 아, 맞다. (웃음) 그건 자주 봐요. 남쪽 신문엔 오늘의 운세가 계속 나오거든요.
김태산 : 남쪽은 지하철 타면 신문을 공짜로 주는데요. 그 신문에도 오늘의 운세가 잘 올라옵니다. 어떤 날은 이쪽 것이 맞고 다른 날이 이쪽 것이 맞고 하는데요. 어쨌든 사람 사는 재미가 여기에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저는 스마트 폰, 핸드폰으로 오늘의 운세를 받아 보거든요. 남쪽엔 핸드폰도 관상을 보는 프로그램도 있고 굉장히 종류가 많은데요. 3-4개를 깔아서 보다가 그 중에 안 맞는 건 지우고 하는데요. 저는 내 몸에 좋다는 말만 들어요. (웃음)
진행자 : 그냥 좋은 얘기를 듣고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겠다는 생각이군요. 근데 남쪽은 기술에 있어서는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점이나 운세 같은 것이 아직 많이들 보고 팔리는 걸 보면 점이라는 게 우리 생활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태산 : 인간은 뭔가 자기 미래를 점쳐보고 싶고 불안하면 어떤 것인가에 기대고 싶은 존재인 겁니다.
문성휘 :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기독신자고요. 대선 유력 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 위원장은 천주교 신자라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종교가 다양하니 일종의 견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종교에서는 미신을 믿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종교가 없는 북한에는 이런 견제 역할이 전혀 없고 그래서 더욱 미신이 많이 전파되는 거죠.
진행자 : 사실 종교를 영혼의 안식처라고 많이들 비유하는데 그런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거든요. 북쪽에는 그런 종교가 부재하니 미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요?
김태산 : 그렇죠. 사실 이제 북한 사람들도 당과 수령을 믿었다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문성휘 : 북한은 따지고 보면 철저하게 국가 체제 자체가 종교입니다. 수령이라는 우상에 당이라는 교회를 가지고 사람들이 거기에 의지해 살도록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종교적인 교회는 그 역할을 했지만 당이나 수령은 그 역할을 못했죠. 그리고 한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까 나의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를 보듬어주지 못하면 저쪽으로 가고... 근데 북한은 일당독재, 수령 하나니까요. 사람들은 당이나 수령이 보듬어 주지 못하는데 거기에 왜 의지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당과 수령을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진행자 : 그러나 미신은 미신일 뿐 사람들의 안식처는 될 수 없습니다. 미신을 대체할만한 것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저도 교회에 나가는데요. 사실 저는 나갔다 안 나갔다, 다시 또 나가고 합니다. 최근에 나가보면 참 좋아요. 저는 목사님께 노골적으로 말해요. 마음을 정화시키러 나간다고요. 교회 목사님이 웃으면서 저보고 이단적이래요. (웃음) 그래도 계속 나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가면 기도 시간에 그냥 눈 감고 일주일을 돌이켜 보는데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편합니다.
김태산 : 저도 성당에 가끔 나가는데 확실히 돌아오는 발걸음이 편해요. 그리고 일도 더 잘 되는 것 같고요.
진행자 : 그것이 종교에서 얘기하는 마음의 평안이죠.
김태산 : 그리고 다녀오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벨이 막 나서 내가 저 놈을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했더라도 용서하자는 마음이 생기니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북쪽도 분명 1인을 우상화하는 종교인데 차원이 틀리죠. 이쪽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설교를 듣고 오고 저쪽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당 생활 총화, 조직 생활 총화를 하는데요. 생활 총화는 내 잘못을 털어놓고 남을 비판하고 자기가 비판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지만 여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죠. 그리고 여기는 자기가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지만 저쪽은 무조건 가야하죠. 이렇게 강제적이니 아무리 내가 50년을 거기서 살았어도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한 겁니다.
문성휘 : 김태산 선생 말씀이 맞아요. 다른 종교는 갔다가 돌아올 때 마음이 개운해지지만 북한에선 생활총화 같은 건 참가하고 나오면 마음이 오히려 무겁고 힘들어지죠. 그리고 한국은 기도드리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서 밥을 주는데 저놈의 공화국은 열심히 생활 총화를 하고 기도 드렸는데 밥도 안 주고... 하여튼 이상해요.
김태산 : 분공 주잖아요. 분공!
문성휘 : 아! 그렇지. 분공 줍니다. (웃음)
점이 허황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북쪽에서도 부인들이 점을 보러 가면 남편들은 그 돈으로 쌀이나 더 사라고 타박하실 것 같은데요. 이렇게 힘든 살림살이에서도 쌀 두 세키로 살 돈을 들고 점쟁이를 찾는 이유는 그 말에서나마 작은 희망과 용기를 얻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허황된 말보다 더 확실한 건 사람의 신념일 것 같은데요. 지금보다 나은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 함께 믿어보시죠.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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