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 한 그 사랑이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
남쪽에서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노랩니다. '청춘을 돌려다오'의 노랫말이었습니다. 청춘은 인생의 꽃이라는데 청취자 여러분의 청춘은 어떠셨습니까?
문성휘 씨, 김태산 씨는 돌려받고 싶은 청춘이랍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우리의 청춘 얘깁니다.
진행자 : 두 분의 청춘은 어떠셨어요?
문성휘 : 전 지금도 영어를 못하는데 지금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에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진짜 자존심 상하는 때가 많거든요? 내가 여기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했으면 이렇게 무시당할까? 참 이게 잃어버린 청춘이 맞죠. 내가 대학에서 공부 못하는 축이 아니었고 진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우선 한국에 와서 글을 쓰자니까 글쓰기가 힘들어요. 북한에서 쓰던 글과 완전히 다르거든요. 한국은 그냥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니까 글쓰기가 북한보다 훨씬 쉽겠다고 생각했는데 부딪혀 보니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 영어를 너무 잘 해요. 우리 회사도 보면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 중국어도 대충 말하고 읽고 합니다. 진짜 굉장히 화가 나는 거죠. 나는 이 사람보다 뭐가 못한데 나는 이걸 왜 못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땐 내가 저 제도에서 살았다는 것이 정말 억울합니다.
김태산 : 청춘에 대한 얘기는 시간에 대한 얘기죠. 흘러간 청춘이자 흘러간 시간인데 문 선생 같은 경우는 나보다 훨씬 낫지... 나는 50년을 거기서 살다 왔는데요. 엊그제도 낚시하러 가서 가만히 낚싯대를 물에 담그고 생각해봤어요. 50년은 그냥 충성만하다가 아무 것도 거둬진 것 없이 살아왔구나. 여기서 10년을 살았는데 그 동안 그래도 얻은 게 많아요. 자유도 얻었고 재산도 생겼고... 근데 다시 청춘을 다시 얻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 나라 노래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청춘을 돌려다오'... 그 노래를 부르진 못해도 녹음기에 잡아서 자주 들어요. 내 얘기 같고 심금을 울리죠. 누구나 지나간 자기 한 생을 돌이켜보면 만족할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우리 탈북자들 특히나 북에서 산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북에서 살 때는 그런 걸 몰랐어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나와서 보니 허무한 인생을 살았고 그 중에서 가장 아까운 것이 내 청춘입니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하는 게 부질없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나는 북에서 태어났을까? 우리 부모를 원망할 것도 못 되는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가끔 납니다. 그리고 왜 하필 북쪽에는 그런 정치가가 나서서 우리의 청춘이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나? 진짜 애틋한 사랑 한 번 못해보고요. 문 선생! 북에 있을 때 키스라는 것 해봤어요?
문성휘 : 아니, 키스는 무슨 키스예요. (웃음)
김태산 : 북한에서는 키스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반혁명적으로 여깁니다. 외국에 출장 나가서도 버스 정류장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 꼭 끌어 앉고 키스하고 그러면 놀고 자빠졌다고 욕하고 했어요. 우리 한반도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런 전통이 없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그런 게 아니네요. 그래요?
진행자 : 글쎄요. 역사적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자연스러운 애정 표현 아닙니까?
김태산 : 지나간 청춘 얘기가 나오니까 좀 서글프지만 청춘을 여기서 다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 최근에 영화를 하나 만들었는데 거기에 키스 장면이 나왔대요. 한국 언론들에도 많이 보도됐는데 그 장면이 나온 된 계기도 김정은이 '남녀 간의 애정표현도 할 수 있다, 그런 걸 낙후하게 생각하고 막아선 안 된다'는 말을 했대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런 장면이 나왔다는데 이거 진짜 좀 서글픈 일이죠? 아니, 국가 지도자가 개인들이 키스를 하는 데까지 일일이 간섭해야 합니까? 그런데 한쪽으로 생각해보면 북쪽에서 살았던 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왜냐면 몰랐으니까... 북한은 늘 그래요. 청춘을 값있게 보내라. 그래서 우리는 정말 어디 가서 뼈 빠지게 일을 하고도 오늘 정말 값있게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들 진짜 열심히 일하고 우리가 그 땅에 많은 걸 바쳤는데 여기 와서 내가 속았다는 걸 알고 모든 게 마사지는(부서지는) 순간에 진짜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허무해지는 겁니다.
김태산 : 여기 남쪽에서는 청춘 시절, 청년 시절을 언제까지로 봅니까? 북쪽에서는 청년 생활을 18세부터 시작해서 35세까지 사로청(사회주의청년동맹)에 속한 기간을 청년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 남쪽은 보통 청춘하면 18세부터 20대 중반까지를 얘기합니다.
문성휘 : 북한이 왜 35세까지를 청년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기본 인력,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많이 늘려야 하니까 그런 겁니다.
김태산 : 북한에서 청춘이라는 건 인민군대에 나가서 10년 근무하면 30살 되니까 군대에서 자기 청춘을 보내고 군대에 못가고 탄광, 광산, 임업에 나가는 사람들은 대학 공부도 못하고 그런 곳에서 죽자고 일하면서 썩는 것이죠. 그러나 돈이나 권력 있는 집의 자식들은 청춘 시절이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살면서 필요한 지식을 쌓으며 공부하며 청춘을 보냅니다. 남이나 북이나 청춘 시절에는 자기가 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고 소유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나 하는 게 자기 인생을 많이 좌우하죠. 북한 같은 사회에서는 국가에서 직장을 정해주기 때문에 무직자는 없으나 군대나 탄광, 광산 등에서 노동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힘들게 일만했지 공부도 못하고 기술도 없지요. 그러다보면 자기 자식들도 그런 인생을 똑같이 대물림하게 됩니다.
문성휘 : 북한 소설로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한 때 유행했다는 '청춘송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처음에 나왔을 때 별로 인기가 없었던 소설인데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에 거꾸로 북쪽에서 다시 유행했어요. 저도 읽어 봤는데 대학생이 연애를 하다가 미술 전람관도 들어가고 뭐 이런 연애 얘기였어요. 평범한 소설이었고 현실보다 많이 과장된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어요. 북한의 청춘송가? 북한에서도 할 수 없는 연애 얘기를 그려놨는데 저는 왜 이런 소설을 남한 사람들이 좋아했는지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김태산 : 학교 통일 강연을 다니면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이 북쪽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느냐, 어떻게 사랑을 하느냐 입니다. 남한 젊은이들은 그런 걸 궁금해 하죠.
문성휘 : 저는 강연을 안 다니지만 그런 질문 한번 받고 싶어요. 사실 연애라는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닙니까? 저희들 때에는 '친구 중매는 제 중매다'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웃음) 내가 정말 맘에 드는 여성이 있는데 직접 말할 용기는 없는 것이에요. 그럼 친구에게 저 여성에게 가서 내 마음을 좀 전해 달라 부탁하는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친구가 그 여성이랑 친해져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 중매는 제 중매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웃음)
진행자 : 얘기를 듣고 보니 북쪽 중학생들 상당히 순수합니다. (웃음)
문성휘 : 그런 걸 굉장히 부끄럽게 여기죠. (웃음) 그런데 북한에도 역시 사랑은 있었다!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사랑이나 연애는 당연한 것이죠. 김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사실 북쪽에서는 80년대까지 부화방탕하다면 얼마나 대단했어요?
김태산 : 그렇죠. 간부들을 출당, 철직 시키는데 부화사건이 최고였으니까...
문성휘 : 90년대 중국에서 개혁, 개방 바람이 들어오면서 남녀 관계도 많이 완화되고 많이 눈감아 줬죠.
진행자 : 남쪽 사람들은 사실 청춘하면 사랑인데 북쪽에서는 청춘하면 군대와 돌격대 얘기가 많아 나오겠네요.
문성휘 : 북한 사람들도 청춘하면 떠오르는 게 그 두 가지죠. 여기 사람처럼 청춘하면 연애요, 대학생활이요, 즐거운 생활이요... 이런 것 아닙니다. 청춘은 무겁고 그런 것이죠.
많은 북한 청년들이 자신의 청춘을 군대와 돌격대에서 보냅니다. 그래서 누구에는 청춘은 죽음을 처음 목격한 시절이었고 누구에는 배고픔으로 기억됩니다. 그래도 그 시절, 그 속에서 청춘이었기에 웃었다는 이 두 사람의 얘기...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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