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남과 북의 6월-아픔과 증오

6ㆍ25 전쟁 62주년인 지난달 25일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은 6ㆍ25 전쟁 참전 유가족이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6ㆍ25 전쟁 62주년인 지난달 25일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은 6ㆍ25 전쟁 참전 유가족이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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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쪽은 6.25 전쟁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현충일과 6.25사변일이 있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있습니다. 북쪽에선 6월 25일부터 7월 27일까지를 반미투쟁월간으로 정해 각종 교양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6.25를 지내는 남북의 분위기는 분단돼 살아온 세월만큼 간극이 느껴집니다.

남쪽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전쟁이 걱정이고

북쪽은 여전히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해 문제인 듯합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2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 때문에 6월은 우리에게 아직도 아픈 달입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6월의 얘기입니다.

진행자 : 지난주 6.25 지났는데 올해는 꺾기는 해도 아니고 조용히 지나갔네요. 그날 기억들 하셨습니까?

김태산 : 올해가 6.25 전쟁 62주년이죠? 벌써 60년이 지났네요.

문성휘 : 참 문제에요. 우리 세대까지는 잘 기억하고 있는데 남한에는 전쟁이 몇 년도에 발발했는지 모르는 학생도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잖습니까? 사실 북한은 아주 잘 기억해요. 미국 나쁘다, 남조선 괴뢰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계속 선전을 하니까 북한 아이들은 다 기억하죠.

김태산 : 북한은 잊으려고 해야 잊을 수가 없죠. 계급 교양의 기본 내용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미일 제국주의자들을 증오할 데 대한’ 등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일년 중에 절반은 미국과 일본과 남조선, 이 세 개 나라를 증오하고 타도하자는 내용으로 채워진다고 봐야 옳습니다. 또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일인 7일 27일까지는 반미 투쟁 월간으로 설정해놓고 각 조직별, 기업별로 각종 행사를 진행합니다. 근데 여기는 북에서 침략해 내려왔다고 교양하는데 북쪽에서 또 그와 반대로 교양을 하지요. 저도 북에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고요.

문성휘 : 남쪽도 이제 전쟁의 아픔을 겪은 세대들은 다 가고 이제 젊은 세대들은 전쟁을 잘 모르는데 이렇게 6.25가 잊혀지는 게 아닌가 좀 걱정됩니다.

김태산 : 그런 긴장된 사회 속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남쪽의 이런 상황이 걱정입니다. 남쪽에서는 어린이들뿐이 아니라 어른들 특히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 여기 있는 기자 선생도 전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감이 안 오지 않습니까?

진행자 : 전쟁을 겪은 세대보다는 경각심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죠.

김태산 : 근데 북쪽에서는 계급 교양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젊은 세대들도 전쟁을 무섭다기보다 전쟁을 하면 나가서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이런 면이 남북 청년들이 대비가 되죠. 문 선생도 잘 알겠지만 북한에서는 막 광신적으로 교양하고 앞에 나서서 선동하는 사람들을 영웅으로 내세우잖습니까? 영웅의 이름을 따서 학교나 마을 이름을 짓고 내세워 주고 하면서 사람들을 막 충동질하며 교양하는 거죠.

진행자 : 남쪽에서는 전쟁에 대한 교육을 해도 ‘잊지 말자 6.25’ 즉 전쟁의 아픔이나 상흔, 민족이 서로 죽인 동족상잔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식인데 북쪽은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을 더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김태산 : 그렇죠. 잊지 말자 6.25가 아니고 잊지 말고 복수하자가 되는 겁니다.

문성휘 : 이제 6.25만 되면 전쟁영화부터 계급 교양 계속하면서 텔레비전 방송이란 건 몽땅 그것만 나옵니다. 정말 지겹게 나와요.

김태산 : 평양시는 또 기업별로 전승 기념관을 가서 참관해야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남쪽에도 전쟁 기념관이라는 게 있죠?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내가 용산 전쟁 기념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세 번 가봤습니다. 북쪽엔 전승 기념관, 남쪽에는 전쟁 기념관이라고 하는데요. 가서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북한은 들어가서면 나올 때까지 미제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도당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람 죽이고 어쩌고를 나열하며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괴뢰들을 넘어뜨리고 남조선을 해방해야한다고 끝납니다. 근데 여긴 전쟁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앞으로 이런 비극을 막아야한다... 이렇게 알려주는 식이지 선동은 안 해요.

진행자 : 전쟁을 선동하면 되겠습니까? (웃음) 전쟁 기념관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전쟁을 기념한다는 뜻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전쟁 기념관은 전쟁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고 이런 비극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입니다.

문성휘 : 북한과 남한의 전쟁 인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데요. 북한에선 전쟁하면 영웅, 위훈을 떠올립니다. 죽음과 파괴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다. 전쟁하면 자기가 영웅이 되고 조국을 통일하고 위훈을 세운다... 어떻게 보면 참 순진한 거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전쟁하면 끔찍하게 파괴되는 것을 생각하죠. 그런데 얘기는 그렇게 하지만 정작 싸움이 일어나면 북한 군인들도 머리를 못 든다는 거죠. 사실 북한의 교양과 현실은 큰 차이가 납니다.

김태산 : 북쪽에 있을 때는 그런 교양을 평생 받다보니 미국하고 남조선 때문에 군비에 많이 투자를 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가 못 산다고 생각했댔어요. 근데 여기 내려와 보니까 그 정반대입니다. 북쪽을 먹겠다는 생각? 그런 건 없고요. 그런데도 북쪽에서 계속 그렇게 교양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어요? 싸움을 하겠다는 거예요. 때리겠다는 겁니다.

문성휘 : 실제로 저도 그랬어요. 전쟁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사실 전쟁은 둘째 치고 통일도 필요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슴을 철렁하는데 여기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얘길 하잖아요? (웃음)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계속 남쪽에서 쳐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답답한 노릇이죠. 워낙 그런 식으로 선전하고 교양하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런 생각이 바뀌는 날, 통일이 오는 날이겠죠. 지금도 막 떠드니까 북한 사람들은 당장 전쟁이 나지 않나 굉장히 불안해하고 이런 형편을 전혀 생각을 못하는데요. 이제 봐요... 남한이 인공기에 대고 사격을 했다 어쨌다 비난을 하는데요. 아니 휴전선에 장사정포들을 끌어내놓고 포신을 벗기면 그건 전쟁을 하겠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럼 남한이 당연히 대응을 할 것이고 대응을 하면 자기들이 한 행동은 쏙 빼고 과대 과장해서 비난을 하고... 결국 주민들은 사실을 알 수 없는 겁니다. 사실을 감추고 과장된 거짓만 말하는 것, 정말 비겁한 일입니다.

진행자 : 6.25 전쟁, 남쪽에서는 다들 곤하게 자고 있는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쳐들어왔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북한에서 교육하는 건 정반대죠?

김태산 : 북한에서도 관련된 영화를 돌리면 내용이 그렇죠.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 청춘남녀들이 아주 즐겁게 노는 장면이 나오고 그날 새벽에 남쪽에서 포탄이 날아오고 군대가 밀고 올라와서 방송으로 남조선 괴뢰도당들이 침략을 했다고 해서 전 국민이 일어났다. 최고 사령관인 김일성 수령께서 전쟁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적의 수도를 점령했다... 남조선은 전쟁 도발자로 묘사하고 자기네 수령은 위대한 전략가라고 칭송하는 식이죠. 여기하고 하여튼 정반대예요.

문성휘 : 사실 2천년 이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한 측면이 많아요. 2천년 이후부터는 북한의 젊은 사람들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쟁의 시작을 놓고 논쟁이 많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모여앉아 이런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논점은 오산 전투입니다. 6월 25일날 전쟁이 발발했는데 인민군이 미군과 첫 전투를 한 것은 7월 5일 일어난 오산 전투입니다. 열흘이나 차이가 있는 거죠.

6.25에 대한 북한의 공식입장은 미제가 일으킨 전쟁이며 이에 대항한 조국해방전쟁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쪽에서도 책이나 영화에서 나온 얘기들로 6.25의 시작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남쪽에 들어온 탈북자들도 정착 초기 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놓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줍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