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이제 ‘구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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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인사드리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남쪽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모두 가슴에 소설 한 권씩을 품고 살아갑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강을 건너고 낯선 중국 생활을 견뎌내고 악어가 산다는 동아시아 어느 곳의 강을 건너거나 모래사막을 헤매는 쉽지 않은 여정 끝에 정착한 남한 땅. 그래서 다들 가슴에 품고 사는 사연이 절절하고 감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낯선 남한 땅에 정착하면서 책 한권은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일들을 겪습니다. 때로는 희극 같기도 하고 때로는 비극 같기도 한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기.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의 생생한 남한 정착기를 담아봅니다.

문성휘, 김태산 씨 함께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김태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늘 방송, 첫 시간입니다. 두 분 다 저희 청취자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입니다만 두 분 다 어디 출신이고 몇 년에 왜 탈북 했는지 얘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언제, 왜 북쪽을 나오셨습니까?

김태산 : 네, 저는 평양 출신입니다. 거기서 대학을 나오고 무역 사업을 하다가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자유 세상에 한번 가서 살아보자고 외국에 나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2003년도에 대한민국에 들어왔으니 이제 벌써 8년째가 되네요.

문성휘 : 저는 2005년도에 탈북했습니다. 자강도 시 인민위원회에서 일했고 오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했어요. 저는 애초 떠날 때 남한으로 오겠다고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정적으로 좀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중국에 돈을 벌기위해 왔거든요? 거기서 3년만 일해서 돈을 벌어서 집에 돌아가자. 큰돈을 벌어서 장사 밑천을 하자했는데 공안에게 너무 쫓기는 거예요.

김태산 : 그렇죠, 탈북자들 거의 모두가 그래서 이쪽으로 오죠.

문성휘 : 그리고 제가 남쪽으로 오겠다고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남한 텔레비전 때문이었어요. 중국에서는 마음대로 남한 텔레비전을 볼 수 있잖아요? 남한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러나다 보니 완전히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웃음) 아... 이거 북조선은 아니로구나. 그래서 결국은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죠.

진행자 : 어려운 결정 끝에 남쪽에는 몇 년도에 들어오셨습니까?

문성휘 : 남한에는 2006년도에 들어왔어요. 이제 5년이 됐죠?

진행자 : 문성휘 씨는 5년, 김태산 씨는 8년. 그래도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요?

김태산 : 그러게 말입니다. 들어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세월이 갑니다.

문성휘 : 탈북자 속에서는 그래도 고참입니다. 북한으로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김태산 : '구뺑이'라고 하죠. 우린 신참은 '신뺑이', 고참은 '구뺑이' 그러잖습니까? (웃음)

진행자 : 이제 정말 '구뺑이' 되셨네요. (웃음) '구뺑이' 되시니 남한 생활은 좀 어떠십니까?

김태산 : 남한 사람들 드문히 이렇게 물어봐요. '선생 같은 분은 북쪽에서도 먹기 살기 걱정 없었고 그만하면 살기도 괜찮았을 텐데 남쪽에 와서 고달프지 않은가' 물어보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웃습니다. 저는 50세가 넘어서 이 남쪽에 왔는데 나와서 살아보니 내가 왜 50년을 안타깝게 막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이 갈수록 안타깝습니다. 남한은 욕심만 버리면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근데 우리 탈북자들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 때문에 직장에서나 일하는데서나 충돌이 있고 제기되는 것이 있을 뿐이지 뭐 북쪽에서 먹고 사는 것만큼 먹고 살자꾸나 하면 참 좋은 세상입니다.

문성휘 : 저는 집에서 심하게 앓아서 쓰러졌던 적이 있는데 그때 집사람이 정신없이 119에 전화를 걸었어요. 119는 응급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런 전화인데 5분도 안 돼서 차가 달려오더니 저를 침대에 묶어서 병원으로 옮겼어요. 수술을 못 받았으면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일종의 행운이죠?

김태산 : 우리 같은 사람은 그래도 평양에 있으면 수술이라도 받을 기회가 있었겠지만 자강도 산골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그저 죽었죠?

문성휘 : 그렇죠. 저는 하나님을 안 믿는데 그런 때는 하나님을 찾아요. 하나님이 너희들은 살아야 될 존재라고 행운을 주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 : 한분은 평양 출신, 한분은 자강도 출신이세요. 남쪽에 안 왔으면 두 분이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요?

김태산 : 아마 없었을 겁니다. 새로운 땅에서 살다보니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물론 고향에 두고 온 친구들도 그립습니다. 빨리 좀 통일이 돼서 그 친구들도 다시 한 번 꼭 만나고 싶습니다.

문성휘: 저도 아예 노동자나 농민 출신은 아닌데 간부급으로 치면 아주 하급 간부였죠? 김태산 선생은 간부로 치면 아주 고위 간부고요. 북한은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사회여서 남한 사람들은 대통령을 갑자기 길에서 만나도 굉장히 스스럼없이 악수하고 인사를 하잖아요? 김태산 선생 같은 사람들은 북한 땅에서라면 저희들을 본 척도 안 해요. 에이... (웃음)

김태산: (웃음) 아이고 참나...그러지 마세요...

문성휘 : 정말 말이죠? 저희가 인사를 해도 뒷짐을 이렇게 지고 이렇게 내려다봐요. (웃음) 여기서는 대통령도 그렇게 했다간 다음 날로 쫓겨날 게 아니에요?

김태산 : 맞는 말입니다.

진행자 : 그런데 김태산 씨 입장에서는 그래서 더 남한 생활이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떠받들어주는, 대접받는 사회에서 대통령도 일반 시민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사회로 오셨잖아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또 남쪽에서는 고생도 많이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김태산 : 고생이라는 것이 고저 뭐 자기가 벌어먹기 위해 돈벌이였지 별거 없습니다. 여기서는 뭐가 좋은가 하면 자기가 뼛심을 들여 일하면 그만큼이 자기한테 차려지니 참 일할 재미가 있어요. 나도 나이가 들어서 왔으니 직접을 안 주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일공 노동을 뛰곤 했는데 하루 나가면 8 만원, 밤새서 일하면 12 만원도 받고 하는데 하루하루 그 돈이 쌓이는 재미에 힘든 것이 많이 없어지죠. 물론 북한처럼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와서 좀 힘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올 때 결심을 하고 왔기 때문에 여기 와서 내가 노동해서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돌아보면 힘도 들었지만 그 때 그렇게 힘들여 일한 대가로 지금 내 이름으로 된 사업체도 하나 갖고 있지 않냐 하는 긍지를 오히려 더 갖고 있습니다.

문성휘 : 북한에서는 불법이 아니면 생계를 유지하고 살기가 힘듭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도 진짜 찜찜한 것이죠. 어디가 뇌물을 받아도 마음이 좋지 않고 강짜로 남의 것을 뺏어도 속이 좋지 않고 늘 가슴이 답답하고 집에서 뭘 만들어도 검열이 오지 않나 늘 근심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출근해서 자기가 먹고 남는 돈을 버니까 자기가 번 돈에 대한 근심이 없어요. 그것이 참 마음 편하고 좋은 것입니다.

진행자 : 그렇지만 아까 김태산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욕심.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차타고 좋은 집에 살고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면 남한 생활은 행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김태산 : 그렇죠. 우리 탈북자들은 아무 것도 없게 왔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자기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몇 대씩 여기 살아서 토지도 있고 기반도 있는 사람들만큼 잘 살겠다고 하면 그것이 한 순간에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대신 제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공 노동 하루 나가면 6만원에서 12만원, 60 달러에서 100달러 넘게도 받습니다. 그 돈으로 나가서 쌀을 사게 되면 우리 가족이 셋이서 석 달 먹을 쌀을 살 수 있습니다. 20킬로 포장된 쌀은 고급 쌀이면 5만원... 나는 항상 3만 5천 원짜리 쌀을 사는데 남쪽에서는 그런 쌀도 사실 지난해 생산한 쌀입니다. 오래 묵은 쌀을 팔지 않아요. 물론 쌀만 산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북쪽 생활에 비하면 정말 꽃입니다. 이제 진행자도 말했지만 우리가 욕심을 부리면 막 안타까운 것이고 욕심을 좀 버리고 살면 자유롭고 편안하고 그런 것입니다.

진행자 : 맞습니다. 탈북자들은 남한 생활에 대해 언제는 좋기도 하고 언제는 또 너무 힘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태산, 문성휘의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는 이 두 분의 살아가는 얘기를 진솔하게 차근차근 담아 보겠습니다. 약속된 10분이 무척 짧게 느껴집니다. 다음 시간에 얘기 이어갑니다. 김태산 씨, 문성휘 씨 감사합니다.

김태산, 문성휘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저는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