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여주는 남산 지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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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출신 문성휘 씨가 전해 드리는 진솔한 남한 땅 정착기 <내가 사는 이야기>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제3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에 들어옵니다. 문성휘 씨는 비행기 바퀴가 남한 땅에 내리는 순간, 수많은 회한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눈물이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고 했습니다. 아마 남쪽에 있는 많은 탈북자들이 동감하는 얘기이며 당시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을지 청취자 여러분도 짐작하실 겁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에서 그 뒷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날씨가 확 풀려서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김태산 : 네, 저는 오늘 바람이 불어서 좀 추울 것 같아 코트를 입고 나섰는데 중간에 너무 더워서 벗었습니다.

문성휘 : 요새 벚꽃 축제를 한답니다. 저희 집사람이 어제 전화를 걸어서 여의도 벚꽃 축제에 가자고 해서 알았습니다.

진행자 : 서울 와서 벚꽃 구경 가 보신 적 있으세요?

김태산 : 저는 두 번 정도 가 봤습니다. 여의도 한번 갔었고 충청북도 어디 한번 갔었는데 여의도 참 멋있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꽃구경 간다고 해서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꽃이면 꽃이지 무슨 꽃구경을 가나? 먹고 배부르니 정말 별 것을 다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그 꽃 바다에 들어가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아... 이러니까 사람들이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진행자 : 꽃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두 분은 꽃피는 계절에 남쪽에 오셨습니까? 어느 계절에 남쪽에 오셨어요?

김태산 : 저는 10월에 들어왔습니다.

진행자 : 낙엽 질 때 들어오셨군요?

문성휘 : 저도 10월에 들어왔습니다.

진행자 : 남한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조사 기관까지 차를 타고 이동했을 텐데 단풍이 든 서울을 보셨겠네요.

김태산 : 저는 개별적으로 들어왔으니 조사기관에서 가지고 나온 미니버스를 타고 지금도 어딘지 모르겠는데 어느 집으로 들어갔어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한번 가보고 싶은데 어느 아지트 같은 곳이겠죠? 그 곳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진행자 : 김태산 씨는 좀 특별한 경우였고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제 3 국에서 한꺼번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기 때문에 합동심문 기관에 가서 조사를 받죠?

문성휘 : 네, 저는 조사 기관을 생각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무시무시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입구로 쑥 들어갔는데 한참 가다보니 앞이 탁 트인 공원, 놀이기구도 있는 그런 공원 앞에 제가 척 서있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왜냐면 저희들, 금방 조사 기관에 들어와서는 엄청나게 무서웠거든요.

진행자 : 심문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 무섭잖아요?

문성휘 : 네, 그렇죠? 사실 북한에서는 중앙 정보국, 남산 지하실이라고 굉장히 떠들어요. 죽은 사람도 입을 열게 한다고요. 그래서 처음에 저희가 조사를 받는다니까 그런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는 줄 알았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무서웠어요. 저희가 조사 기관에 도착했을 때 벌써 주변이 어두웠어요. 10월이니까 빨리 어두워지잖아요?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창문에 썬팅을 너무 진하게 해서 밖이 전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차가 시골로 가는지 어쩐지 모르겠는 거예요. 일단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것은 알았어요. 삼국에서 떠나기 전에 대사관 직원들이 앞으로 남한에 도착하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알려주거든요? 그러니까 차를 타고 가면서는 밖이 안 보이니 사람이 전혀 안 사는 시골 같은 곳으로 데려가서 조사하는가보다 했습니다. 조사 기관에 도착해서는 일단 버스에서 내라고 해서 내려서 정문을 통과해 복도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굉장히 웃기는 거예요. 복도에서 한 시간 넘게 그냥 서 있었다니까요! 처음엔 멍하게 서 있다가 조금 있으니까 긴장이 풀리는 거예요. 그래서 떠들기 시작했는데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아니, 이놈들 왜 밥도 안 주니? 막 이렇게 떠드는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경찰들이 떠들지 말라고 엄청나게 고으는 거예요? 그 순간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진행자 : 꽤 시끄러웠나본데요?

문성휘 : 네, 그랬어요. 경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가 남산 지하실이라는 것을 착각했구나 하며 딱 얼어있었죠. 그리고 1시간 20분이 지난 다음에 우리한테 세수수건, 가방 같은 생활필수품을 주고 각자 방으로 들여보냈어요. 이것을 받아서 방에 들어가니까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엄청 혼났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더니 우리들을 놀래우느라고 우정 그런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아...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탈북자들이 자유라는 것을 잘 모르니까 굉장히 방종해 지거든요? 막 너무 떠들고 규율이 없으니까 처음에 들어올 때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책을 가져다주고 오후에는 운동 시설에 체육을 하러 나가고요. 삼 일 만에 운동하러 밖에 나가 보니까 우리가 깊은 시골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복판에 있는 거예요. 앞으로 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다니고... 그 때 실내 체육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진행자 : 사실 북쪽에서는 남한을 적대국으로 교육, 선전하지만 사실 탈북자들 입장에선 남한을 또 다른 조국으로 선택해서 들어온 것이잖아요? 근데 오자마자 환영이 아니라 조사를 한다는 것이 좀 서운하기도 했었을 것 같은데요?

문성휘 : 서운했다기보다는 북한에서는 조사한다면 무지막지하게 때리잖습니까? 그런데 남쪽에는 그렇지 않아요. 조사는 며칠 안 했고 오히려 그 기간에 안정을 좀 시켜준다고 해야 하나요...

김태산 : 저도 올 때는 도착하면 안기부라는 곳에서 굉장히 조사를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솔직히 겁을 먹고 갔죠. 근데 내가 왔을 때는 그렇게 안 했어요. 조사 끝날 때까지 김 선생, 김 선생 했고 존중해주고 다른 것은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무섭게 안 했어요. 그런데 딱 고달픈 것이 면도칼 주지 않아 면도를 못하고 그 다음에 더 안타까운 것이 술을 주지 않으니까... (웃음) 술을 주지 않는 게 제일 고달팠어요. 어쨌든 별 문제될 것이 없으니까 조사는 한 달 남짓? 인차 끝났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날, 술을 주는 데 그 일화가 무척 재밌습니다. 이쪽 남쪽 술은 25% 안 되잖아요? 게다가 남쪽 분들은 작은 잔에 소주를 마시잖아요? 근데 북쪽이나 중국에서는 도수가 아주 높은 술, 50도가 넘어가는 술만 작은 잔에 마시거든요. 그래서 여기서도 작은 잔에 따라 주기에 아주 도수가 높은 술인 줄 알았는데 아, 마셔보니 한 20도? 확 신경질이 나는 거예요. 지금도 나는 남한 사람들은 왜 체격은 다 큰 사람들이 술은 쩨쩨하게 먹느냐, 후에 통일되고 이렇게 마시면 북쪽 사람들에게 비난받는다고 큰 컵에 마시라고 하죠. (웃음)

문성휘 : 그리고 이제는 사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못해요. 뭐 북에서 온 사람이 이만이천 명이나 되다보니 북한의 어느 곳이든 안 온 곳이 없어요.

진행자 : 어떤 곳은 동네 사람들끼리 모임이 가능하다고요?

문성휘 : 네, 저희 자강도 사람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입니다.

진행자 : 이렇게 조사가 끝나면 바로 사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에서 정착 준비를 하게 됩니다. 보통 탈북자분들은 처음 만나서 인사가 하나원 몇 기인가를 물어보시던데요?

김태산 : 문 선생은 몇 기로 나왔어요?

문성휘 : 그건 비밀이고요... (웃음)

김태산 :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딘가 묻고 바로 하나원 몇 기인지 물어봅니다. 그것에 따라 선배인지 후배인지 갈라지는 것이죠. 나이에 따라 선배, 후배가 있지만 철저하게 이 땅에 먼저 온 사람들이 선배가 되는 것이죠.

진행자 : 요즘은 하나원에서 12주 교육 받는다고 하는데 두 분은 얼마나 받으셨어요?

김태산 : 우리 때는 7주간 하고 내보냈어요.

문성휘 : 우리는 3 개월 받았는데 김 선생은 좋았겠어요?

진행자 : 아니 왜 좋았겠다고 부러워하세요? 정착 교육이 길면 교육을 좀 잘 받을 것 아닙니까?

김태산 : 아무래도 다 모아놓고 교육을 하니 아무래도 좀 힘들죠. 저는 하나원 처음 들어가니까 명찰을 가슴에 달으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싫더라고요. 그리고 코흘리개부터 영감까지 다 모아놓았는데 사실 북쪽에서부터 가져온 관료화된 때를 못 벗겠더라고요. 북쪽 같으면 이 사람들과 섞이지 않았겠는데 그 사람들과 섞여서 줄을 서서 밥 타먹고 같이 교육받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싫은지... 그래도 내가 여기서부터 참고 견디는 법을 견뎌야겠구나 하고 참았어요. 그리고 하나원을 1등으로 졸업했죠...

진행자 : 하나원에 있는 탈북자들은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들 같은 심정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계속 긴장되고 언제나 총소리가 나나 그것만 기다리게 되지요. 그렇지만 남한 생활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 시합이죠. 오랫동안 숨을 고르고 준비를 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하나원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갑니다.

김태산 씨, 문성휘 씨 감사합니다.

김태산, 문성휘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