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솔직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착 교육 시설인 '하나원'의 생활은 어땠는지 얘기해봤습니다. 김태산 씨는 술 한 잔 맘대로 못하는 하나원 생활이 간단치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배운 운전 기술은 유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운전대 앞에 앉아 운전을 배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를 배우며 문성휘 씨는 정말 기분이 좋더라...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직 남쪽 사회는 머릿속에만 있었던 때,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허튼짓도 많았답니다.
"제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하나원에서 가져나온 볼펜이 200대가 넘어요. 나중에 다 버렸어요."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은 하나원 이야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문성휘 : 하나원에서부터 자기 재산에 대한 개념이 생기거든요. 이제부터는 밖에 나가면 자기 돈으로 사서 써야한다는 개념이 있으니까 돈을 절약한다고 뭐나 공짜로 생기는 건 다 걷어 넣는다는 거죠. 아... 그러다 보면 진짜 짐이 커져요. 제가 거짓말 보태지 않고 하나원에서 가져온 볼펜이 200개가 넘었어요. 나중엔 다 못 쓰고 버렸거든요. 볼펜 같은 건 볼펜도 그래, 사인펜도 그래 강의실 앞이나 설문조사 할 때도 막 쌓여있거든요. 그러면 들어가면서 하나 집어 나오고 나오면서 하나 집어, 이렇게 해서 가방에 막 주워 넣는 거예요. 여자 분들은 공동으로 쓰는 화장지를 자꾸 주어다가 가방에 넣어요. 이제 밖에 나가면 사서 써야한다는 근심이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면 가방 가득히 화장지만 가지고 나가는 여성들이 있거든요. (웃음)
김태산 :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일이네요. 혹시 이 방송을 듣는 남한 분들이 계시다면 북한 사람들은 다 그래, 개성공단에서도 화장지도 없어지고 비누도 없어져... 참, 우리가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북한 제도에 대해서 지금도 분노하게 됩니다. 왜 남북한이 같은 사람인데 지금 문 선생 얘기했지만 여기서 볼펜 같은 것은 일생 사지 않아도 쓸 수 있잖아요? 근데 북한에서 진짜 볼펜이 귀해요. 외국에서 나가서 가져오지 않으면 북한에서는 볼펜을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해외에 나갔다 올 때는 볼펜을 한 500자루씩 사와요. 화장지 같은 것은 지방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고 그런 부족한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니 챙기자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절약하자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왜 그런지 이해는 되지만...아, 참 그게...
문성휘 : 어쨌든 그것이 가슴 아파요. 중국 사람들이 쓰는 화장지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시꺼멓고 질이 좋지 않은 화장지를 써요.
김태산 : 표백이 되지 않은 화장지죠.
문성휘 : 남한에는 그런 화장지가 없잖아요? 근데 북한에는 그것마저도 없으니까요. 참, 그것이... 아픈 거죠.
진행자 : 사실 저는 하나원 얘기하면서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김태산 씨, 문성휘 씨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남한 여자 목욕탕에는 비누나 수건, 샴푸 잘 없습니다. 아주머니들 집에 들고 가시거든요. 다들 너무 알뜰하셔서 그렇죠. (웃음)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뭐든 부족하게 살게 만든 그 체제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큰 것만은 사실입니다.
김태산 : 근데 저는 화장지는 관심이 없었지만 저도 하나원에서 모은 짐을 아직도 쓰는 것이 있네요.
문성휘 : 그럼요. 저도 그래요.
김태산 : 선물로 준 것들인데 시계 10개 넘게 있고 비누, 칫솔, 치약. 솔직히 세면 비누, 빨랫비누는 아직도 가득해요. 내가 그때 남한 사회를 알았다면 그냥 버리고 나왔을 수도 있는데 이런 향기 참 좋은 비누는 우리는 외국에나 나가야 사서 썼으니까 다 챙긴 거지요. 우리는 우리 집 사람이 받는 것, 막내가 받는 것, 내가 받는 것 해서 세 몫으로 줘서 큰 가방으로 갖고 나왔는데 아직도 몇 년은 더 쓸 겁니다.
진행자 : 십년이 지났는데요. 아직도요?
문성휘 : 저도 그래요. 칫솔은 너무 많이 받아서 그것이 어느 구석에 들어갔는지 찾지 못해 사서 쓰고 치약은 3년 만에 유효기간이 지났는지 그냥 써도 되는지 몰라서 그냥 쓰레기장에 버렸어요. (웃음)
김태산 : 근데 하나원에 지원 오는 단체들이 많은데 그런 것은 올 때마다 챙겨주거든요. 또 하나원에서 나갈 때는 한 사람 앞에 이불,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주죠. 사발, 칼, 칼판, 밥주걱... 뭐 다 주니까 가족들 짐은 승용차 트렁크에 차고 넘칩니다. 어쨌든 북한에서 못 살던 사람들이 물질이 많이 넘쳐나는 사회에 오다 나니까 이런 화장지나 볼펜 같은 일화가 생깁니다.
문성휘 : 그런데 나와 보니까 하나원에서 준 것이 그렇게 나쁜 물건들이 아니에요. 아주 비싼 고급 물건도 아니지만 싸구려가 절대 아니거든요.
김태산 : 좋은 것들이에요. 하나 나쁜 것이 있자면 여기에다 '하나원', '통일부' 이렇게 새겨서 주니까 그게 조금 그렇지. (웃음) 물에 넣어도 물도 안 들어가고 아무리해도 시간 안 틀리고 좋아요.
진행자 : 하필 시계도 좋은 것 주면서 왜 이름을 새겨서 줬냐 했는데 주민등록증도 사실 비슷한 문제가 됐죠? 하나원 소재지가 동일하게 주민등록증에 표시되는 바람에 중국을 못 가서 한참 문제가 됐죠?
문성휘 : 이제 우리도 다 바꿨어요. 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데 3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집을 받고 난 다음에 그 주소로 주민등록증을 받으면 하나원을 나와서 또 3개월을 기다려서 주민등록증이 나오게 되지요. 시간이 너무 지체됩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다 비슷한 번호를 받게 됐는데요. 그러니까 이 번호를 가지고 중국에 나가면 그 즉시에서 탈북자라는 것이 다 알리죠.
진행자 : 하나원 나오시기 직전에 주민등록증을 받으시죠? 집은 언제 받으십니까?
김태산 : 주민등록증 받으면서 집을 받습니다. 탈북자들에게는 제일 대단한 것이죠. 자기가 밖에 나가자마자 그날 저녁부터 잘 집이 없으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사실 탈북자 개개인에게 가족들에게 각각 집을 준다는 것이 참 큰 혜택입니다.
진행자 : 처음 주민등록증 받고는 좀 어떠셨어요? 이제 정말 남한 사람 되는 건데요.
김태산 : 저는 처음 이 주민등록증이 남한 사람과 똑같겠는가? 좀 의심을 했어요. 탈북자라고 좀 다르지 않을까... 후에 보니까 다른 것은 없었어요. 다 똑같았는데 이자 말마따나 하나원이 있는 경기도 지역의 번호가 들어있는 것. 그것을 중국이 알아서 중국 방문 비자를 내주지 않아 문제가 됐죠. 그런데 탈북자들이 집을 받을 때는 누구나 서로 서울에 가겠다고 하니까 우리 때부터는 표 뽑기를 했어요. 서울에 집이 부족하니까요. 우리도 나는 지방으로 갔으면 했는데 우리 집 사람이 서울에서 꼭 살아야 되겠다고 했어요. 표 뽑기 하는데서 좀 두고 보자 했는데 다행히 서울을 뽑아서 집사람 지청구는 안 들었습니다.(웃음) 만약에 지방을 뽑았으면 지금 기자 선생을 못 봤을 수도 있습니다. (웃음)
문성휘 : 북한에는 추첨제라고 하죠. 자기가 표를 뽑으면서 두근두근 하죠.
진행자 : 문성휘 씨는 어디로 가고 싶으셨어요?
문성휘 : 저는 '새터민'이라는 신문이 있었잖아요? 거기서 오라고 해서 서울로 가기로 했거든요. 근데 제 결정과는 상관없이 집이 서울로 나와야 그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다행히 서울 노원구로 나왔습니다. 지금보면 집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어요. 집을 새로 바꿀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때 당시는 문서를 잘 모르니까 당황해 하시는 분들이 많죠.
김태산 : 근데 살아보니까 지방과 수도 차이가 별로 없어요. 여기 있으면 중요한 관청 같은 곳이 가깝다는 것이 있을 뿐이지 지방과 서울이 먹는 것이 다릅니까? 그렇게 차이점이 없어요, 솔직히.
문성휘 : 아휴,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제 하나원에서 표를 뽑으라면 지방에 가겠다고 하겠어요. 이젠 어디가나 살 배짱이 생겼거든요.
진행자 : 지금이니까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아닙니까?
문성휘 : 예, 지금이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죠. (웃음)
김태산 : 저는 어디 바닷가 가서 낚시질이나 하고 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네요.
진행자 : 서울에 사실 운명이셨던 모양입니다. (웃음)
문성휘 : 저는 처음에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이미 알았어요. 다른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는 걸요. 대신 내가 앞으로 살집이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그것에 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나와 있는 집 주소, 그 집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이거 좀 빨리 끝나서 내가 살 집을 가봐야 되겠는데....
이렇게 새집에 가보기를 학수고대했던 문성휘 씨. 새집에서 첫날밤, 눈물을 엄청나게 흘렸답니다. 그 얘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합니다.
진행자 : 문성휘, 김태산 씨 감사합니다.
문성휘, 김태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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