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참이슬, 처음처럼, 산, 봄봄, 맑은 바람... 남쪽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 '소주'의 상표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이름들, 술과는 왠지 거리가 있을 것 같지만 모두 술 상표네요. 북쪽에서는 집에서 만든 민주들을 많이들 드시죠? 남쪽은 소줍니다.
이름은 각각 이지만 모두 350밀리짜리 초록색 병에 담겨있는데요. 그리고 이 초록병들은 남쪽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합니다.
"처음엔 막 신경질이 나더라고. 사람을 뭘로 보고 20도도 안 되는 술을 내오고... 술이라는 것이 목구멍 넘어갈 때 따끔한 재미와 쓴 맛에 먹는데 여기 술은 달달하잖아요. "
술이 너무 밍밍하다는 김태산 선생의 불평이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김 선생 말처럼 요즘 남쪽 술은 점점 도수가 내려갑니다. 1960년대 30도로 나오던 소주가 70년대 25도로 낮아지더니 96년부터는 가속도가 붙어서 지난해 20도 아래 소주도 나왔습니다. 요즘은 술을 취하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한잔 걸치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약속드린 대로 오늘은 술 얘깁니다.
진행자 : 어떤 술을 자주 드세요?
김태산 : 소주죠 뭐... 저야 40도 넘어가는 독한 술을 좋아하지만 남쪽사람들은 그런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남쪽에서 제일 흔한 참이슬을 마십니다. 이젠 그게 입맛에 맞아요. 소주... 남쪽에서는 소주라고 하는데 북쪽에서는 소주라는 말을 안 써요. 그냥 술 그러죠. 여기서는 상점에서 술 있어요? 그럼 딱 소주를 주죠.
진행자 : 가장 대중적인, 서민적인 술이라는 얘기죠. 지난해 나와서 가장 많이 팔린 소주가 19.5도입니다.
김태산 : 알코올 도수가 낮으니까 술이 맹물처럼 되고... 술이 도수가 좀 높아야 취하겠는데 안 취하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많이 마셔야 하니까 술값만 많이 나가요.
문성휘 : 근데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 아주 유명한 술, '진로'라는 게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 저는 남한에 가면 꼭 마셔봐야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저는 무척 비쌀 줄 알았어요. 나같은 사람 사서 먹을 수 있나 했는데 나와 보니까 '참이슬'이 '진로' 더라고요. 참진 자에 이슬로 자 써서요.
김태산 : 아, 그렇군요. 진짜 이슬, 참이슬로구나. 북한에서는 혁명역사를 많이 공부하니까 '혁명의 진로'할 때 그 진로인 줄 알았죠. (웃음) 그래서 나는 좋은 길로 인도한다는 저 술을 뭔가 했는데 오늘 배웠네요.
문성휘 : 근데 북한은 보통 500 밀리리터짜리 병에 술을 팔아요. 남한 술병보다 상당히 크죠? 그리고 중국과의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중국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보통 25도 정도 나오던 술이 굉장히 독해졌어요. 보통 한 40 프로짜리 술을 많이 마시거든요. 이걸 민주라고 해요. 개인들이 몰래 뽑은 술... 백성들의 술이라는 거죠. 그런 독한 술을 여기서 350 리터짜리 소주를 마시는 것처럼 마셔요.
김태산 : 북쪽의 치, 독하다고 적게 마시거나 하지 않지.
진행자 : 그런 술 마시다 남쪽에 오셨으면 밍밍하셨겠어요.
김태산 : 아, 내가 전번에도 얘기하기도 했지만 조사 기간에는 술을 못 마시게 해요. 난 밥보다도 술이 더 좋은데 그걸 못 마시게 하는 게 죽겠더라고요. 조사가 끝난 다음에 마지막 날 술을 주는데 이자, 여기 얘기한 참이슬 병을 갖고 와요. 앞에 보니까 눈깔 잔이 있어요. 북쪽에서는 여기 소주잔마냥 작은 잔을 눈깔 잔이라고 하는데 보통 이렇게 작은 잔에는 독한 술을 먹으니 기대를 했는데 한 모금 마시고 처음엔 막 신경질이 나더라고. 사람을 뭐로 보고 20도도 안 되는 술을 내오고... 술이라는 것이 목구멍 넘어갈 때 따끔한 재미와 쓴맛에 먹는데 여기 술을 달달하잖아요. 도수도 없으니까 익숙해지기 힘들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다른 술 목 먹겠어요. (웃음) 누가 북한 술을 한번 가져와서 마셨는데 생 알코올 냄새가 너무 나서 못 마시겠더라고... 사람 입맛이 요상스러워요.
진행자 : 요즘은 그렇게 술을 막 취하게 마시지 않으니까 술 도수가 점점 내려가는 추세죠.
김태산 : 하긴 남쪽은 여자들도 다 한잔씩 하니까...
문성휘 : 저도 여기 와서 술을 처음 마셔본 것이 조사 기관에서 조사가 끝나고 나서 바깥에 나가서 밥을 사주는데 그때 마셔봤어요. 밥을 주면서 소주를 주는데 북한에서 술 만들고 나오는 후주 있죠? 꼭 그 맛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술에서 물맛도 많이 나고 그래서 제가 생각하건데는 조사기관 간부들도 나왔을테니까 취하지 말라고 술에 물을 탔나보다... (웃음) 마시고는 다들 얼굴 인상들이 안 좋았죠. 근데 밖에 나와서도 한 동안은 담금주라고 과일 술 만드는 독한 소주가 있어요. 그걸 마시다가 남쪽분들이랑 점차 어울리다보니 이제 익숙해졌죠. 저번엔 어쩌다 중국술이 들어와서 북한에서 생각이 나서 마셔봤더니 니스 냄새가 나는 것이 못 마시겠더라고요. 이젠 진짜 참이슬 좋아요.
진행자 : 그래도 두 분 다 술을 즐겨들 하시죠?
문성휘 : 저는 뭐... 술은 김태산 선생이 즐겨하죠.
김태산 : 나 혼자 마시면 한 2병 정도? 밥 먹으며 마시면 마셨는지 말았는지. 사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안 마시면 또 안 마시니까 중독에 걸린 건 아니고 아직까진 밥이 술보다 더 좋긴해요.
문성휘 : 내가 볼 때 남한의 술 도수가 낮아지는 원인이 보통 한국 사람들은 술을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교적인 수단. 즉,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마시지 않아요? 그런데 북한은 술은 취해야 하는 거예요. 남한처럼 임의의 시각에 원하면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국가적으로 술을 팔지 않으니 개인들이 몰래 뽑는데 술 한 병 값이 쌀 한 키로 값이거든요.
진행자 : 비싸네요.
문성휘 : 아, 그건 이 기자가 안 따져봐서 그렇지 술값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같습니다. 여기와서 쌀 한 키로 값을 따져보니 북한이랑 거의 같아요. 근데 차이점은 북한은 하루 종일 장마당에 앉아 있어도 쌀 한 키로 값도 못 벌지만 남한은 하루 종일 일하면 쌀 한 두어 포대는 받을 수 있죠. 그 차이가 있는 거죠.
김태산 : 북한 노동자 한 달 노임이 한 달러가 안 되는데 남쪽은 1,500달러는 받으니까 이게 몇 배차이에요?
문성휘 :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정말 어쩌다가 술 한번 마시니까 한번 마시면 정말 취해야 하는 거예요. 명절날이랑 이런 때 사고가 많죠. 여름철에 술 마시면 싸움을 많이 하고 겨울에는 술 마시고 밖에서 자거나 얼어 죽거나 하는 사람들 있죠. 평양 이런 데는 괜찮은데 우리 자강도 쪽은 겨울엔 밖에서 술 먹고 쓰러지면 죽습니다. 근데 다행인지 어쩐지 술이 얼마 없어서 그렇게 죽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남쪽의 소주는 주정, 즉 에탄올에 물을 타 희석해 만든 희석식 소주입니다. 전통 소주는 쌀을 발효시켜 증류해 만든 술이었지만 1960년대 중반, 쌀이 부족해 순곡주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희석식 소주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순곡주 금지령이 내려졌을 땐, 집에서 술을 만들다 걸리면 벌금도 내고 했다는데 요즘은 만들라고 해도 별로 만드는 가정이 없습니다.
북쪽은 아직 집에서 술을 내리는 집도 많으시죠? 이걸 단속하는 단속반과 술 만드는 가정들의 머리싸움도 대단한 것 같은데요. 다들 이렇게 숨어서도 만들어 마시는 것을 보면 술은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긴 한가 봅니다.
술 이야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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