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술 이야기②-15도가 술입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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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잔을 맞대고 건배를 하며 마시는 것을 대작 문화,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따라 마시는 자작 문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마시는 건 수작 문화라고 합니다. 요즘은 위생상의 이유 때문에 잔 돌리기를 자제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잔은 돌려야 맛이라는 말 많이 합니다.

이뿐 아니라 남쪽엔 독특한 음주 문화가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섞어 마시기와 자리 옮겨 마시기입니다. 두 가지 이상의 술을 섞은 폭탄주, 소맥 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쪽에만 있는 술들입니다. 또 1차, 2차 이런 식으로 자리를 옮기며 마시는 것도 독특한 음주 문화인데요. 물론, 자랑할 건 분명 아닙니다.

문성휘 씨는 특히 이런 술 문화 때문에 남북의 차이를 분명히 느꼈다고 합니다.

"아마 그 개통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북쪽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 손님들에게 남쪽에서 나오는 좋은 술을 대접한다며 백세주를 주는 것을 보고 정말 웃었습니다. 야... 거기 온 간부들은 정말 공장에서 나오는 도수 높은 술들을 마실텐데 거기다가 15도짜리 술을 줬으니... 왔던 북한 사람들 일부러 이러나 싶었을 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술 얘기 이어갑니다.

김태산 : 술을 어쨌든 알곡으로 만들지 않습니까? 거의나 술을 알곡으로 만드니까 국가적으로 통제를 받는 제품입니다. 국가 공장들에서 술을 만드는 것은 명절 공급용, 간부용으로 나오니까 국가적으로 파는 술값은 싸지만 사실 파는 건 없어요. 경제가 흐트러지면서 쌀이 장마당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쌀을 사다가 술을 만들어 파는 거죠. 쌀값보다 술값이 비싸거든요. 쌀 한 키로 가지고 술 두병을 만들 수 있으니까 술장사가 많아진 것이죠. 근데 이걸 통제해야 되겠는데 누가 통제를 해요? 보위원도 먹어야 하고 안전원도 먹어야 하겠는데! 일반 노동자 사무원들은 정말 술 한번 먹기 어려워요. 끓일 밥도 없는데... 게다가 술은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모여서 먹어야 하고 안주도 좀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한번 친구들하고 마시면 정말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마시려고 하죠. 그리고 남한 사람들처럼 배에 기름이나 좀 지면 모르겠는데 배에 기름기도 없는데 독한 술을 막 그렇게 먹으니까 푹푹 취하는 거죠. 아마 남쪽 사람들 공복에다 북한 사람들 마시는 술을 먹여 놓다보면 몽땅 쓰러질 겁니다. (웃음)

문성휘 : 아, 김태산 선생은 북한에서도 간부여서 술도 안주도 좋았겠지만 (웃음) 저희같은 건 못 살았어요. 저희 동무들 같은 건 술을 사면 안주를 살 돈이 없거든요. 그럼 소금을 찍어 먹어요. 그 중에서도 고급한 소금 안주가 소금에 고춧가루를 섞고 맛내기 섞으면 먹기 괜찮거든요.

김태산 : 여보, 문 기자님! 나도 노동자 시절엔 다 해봤어요. 공복에 소금 찍어 마시는 술, 그게 참 어떤 고급 인사가 좋은 술을 마시는 것보다 맛있습니다.

진행자 : 옛날에 추억이랑 더해져서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 아닌가 싶네요.

문성휘 : 북한은 술 단속을 굉장히 세게 하거든요. 사실 술로 달아나는 식량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제가 오기 전인 2005년 초 만해도 검열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술독을 검열하는 거예요. 막 검열대가 집에 들어가 술독이 있으면 그걸 막 마사놓고(부셔놓고) 대단했어요. 근데 아무리 이렇게 단속해도 절대 못 막습니다. 다 방법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술을 만들어서 비닐에 넣어서 옷걸이에 척척 걸어놓는 겁니다. 정말 별 방법이 다 나오더라고요.

진행자 : 그렇게라도 만들어 팔아야겠다, 먹어야겠다... 그런 걸 보면 술이 정말 필요하긴 한가 봅니다.

김태산 : 근데 남쪽에서는 개인집에서 술 안 만들죠?

진행자 : 아, 만들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집에서 술을 만들어요. 근데 이게 점점 사라지는데요. 만드는 것이 복잡하기도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독한 술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요. 도시에서는 주로 매실이나 더덕 이런 것으로 담금 술을 만들죠. 아, 요즘은 또 막걸리를 취미로 만드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김태산 : 북쪽에서는 막걸리를 탁주라고 합니다. 남쪽은 쌀이 많으니까 막걸리도 쌀로 담그지만 북쪽에는 쌀이 어디 있나? 그냥 국수 씻은 물, 먹다 남은 밥 이런 것에 설탕 좀 잡아넣고 발효시켜서 도수가 좀 높아지면 주물럭주물럭해서 가제에 걸러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시원해지면 한잔 마시고 그러죠.

문성휘 : 그게 김태산 선생네 집에 냉장고가 있었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감자 움에 넣고 마시죠. (웃음) 근데 저는 전에 경의선 열차던가요? 개성과 도라산 역 오가는 그 열차 있잖아요? 아마 그 개통식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북쪽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 손님들에게 남쪽에서 나오는 좋은 술을 대접한다며 백세주를 주는 것을 보고 저는 정말 웃음이 나더라고요. 야... 거기 온 간부들은 정말 공장에서 나오는 도수 높은 술들을 마실 텐데 거기다가 20도도 아니고 15도짜리 술을 줬으니... 왔던 북한 사람들 뭐라 하겠어요?

진행자 : 백세주는 한약제로 만든 약주예요.

문성휘 : 아마 그때 온 북한 사람들은 손님이라 화를 낼 수는 없고 속으로 그랬을 걸요? 우리 북한 사람들을 꼴을 메기느라 일부러 뜬 물을 내놨다... 정말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진행자 : 남쪽에서 그랬을 리가 있어요? (웃음)

김태산 : 그건 그런데 북쪽에서는 40도는 넘는 술을 내놓아야 좋은 술 내놓았다, 손님 대접 받았다 그래요.

진행자 : 참, 이런 것을 보면 술 문화 차이도 크네요.

김태산 : 그럼, 차이가 많이 나요. 일단 오십세주라는 것도 있잖아요? 백세주에 다른 술을 섞어 마시는 것... 이렇게 남쪽 사람들은 술을 섞어 먹잖아요. 그리고 술잔도 얼마나 작은지 나는 아직도 속 터져서 그 잔 절대 안 써요.

진행자 : 아, 그 잔은 굉장히 과학적으로 잘 만든 잔입니다. 소주가 한 병에 350 밀리리터인데 그 잔으로 마시면 딱 7잔이 나와요. 두 명이 함께 마실 경우, 결국 마지막엔 한 잔이 모자라 소주를 한 병 더 시켜야한다는 거죠.

김태산 : 아, 맞다. 둘이 앉아 한 병이면 무조건 모자르누나...

문성휘 : 아 진짜 그러네?

진행자 : 잘 만들었죠?

김태산 : 또 북한 사람들은 한 자리에서 먹고 딱 끝나면 흩어지는데 남쪽 사람들은 계속 자리를 옮겨요. 1차, 2차, 3차... 외국 사람들도 와서 깜짝 놀라요. 참, 그걸 보면 남쪽 정말 살만한 세상이에요.

문성휘 : 빨리 빨리 대한민국이라는데 술 마시는 것도 너무 정열적이에요.

진행자 : 남이나 북이나 다 술 좋아해서 그런 거죠. 근데 1차, 2차, 3차 간다고 흉보지 마세요. 북쪽에서 개인들이 집에서 술 마시는 게 아니라 여기처럼 술파는 식당이랑 상점 다니면서 마시면 아마 6차는 기본으로 가실걸요?

김태산 : 하긴 그 말이 맞아... '아침은 빛나라'까지 마신다는 말이 북쪽엔 원래 있었어요. 하긴 뭐, 그 피 어디 가겠어요? 북한 국가 첫 구절이' 아침은 빛나라'인데 그게 나오는 5시까지 마신다는 말이죠...

지난 시간엔 담배 얘기를 했지만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는 담배보다는 술에 좀 더 관대합니다. 술이 멋과 풍류의 상징이며 피로를 풀어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일종의 피로 회복제 역할도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과하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특히, 요즘 북쪽 가정에서 만들어 파는 정제되지 않은 독한 술들... 술을 잘 띄우기 위해 페니실린까지 동원되고 정제하는데 시멘트도 사용한다는데 이런 술이라면 오히려 부족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다음주, 술 얘기 마지막 시간으로 북한 술 생산의 현주소와 술을 보약으로 마시는 법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