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술 이야기③-독이 되는 술, 보약이 되는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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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시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일단 행동을 절제시키는 역할을 하는 뇌 속의 전두엽이 마비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평소와 달리 격의 없이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다음 단계는 편도체. 편도체가 마비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행동이 절제되지 않고 두려움까지 없어지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나요?

"북한에서 술 먹고 치는 제일 큰 사고요? 과붓집 들어가는 것인가? (웃음) 농이고요. 남쪽에서는 상사한테 술김에 큰 소리도 치고 그러는데 북쪽에서 특히 중앙당에서는 그러면 바로 '나가'하면 그만이야..."

술 마시고 간부나 상사에게 큰소리라도 쳤다... 바로 이런 말 나옵니다. '술이 웬수다'.

<내가 사는 이야기> 술 얘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진행자 : 근데 아까 말씀하셨지만 술 한 병에 쌀 한 키로... 간단치 않게 비싼데요. 이걸 취하실 때까지 마시는 게 가능해요? 북쪽은 술 마음대로 마시는 것도 권력 좀 있고 돈 좀 있다는 표시일 것 같은데요.

문성휘 : 다들 명절 때나 좀 마시는 거죠. 그리고 그럴 때는 집에서 술을 많이 뽑거든요. 술 뽑는 날에는 옆에서 거들어 준다고 불 때 주고 이러면서 한잔씩 얻어 마시고 그러는 거죠. 재밌는 건, 남한에도 독한 술들이 있잖아요? 양주 같은 건 굉장히 독하잖아요. 제가 남한에 와서 처음 사본 술이 시바스 리갈? 그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에서 박 대통령이 마시는 것이 나오거든요? (웃음) 그래서 한번 마셔보고 싶었는데 저는 그 술이 진짜 맛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또 남한 사람들 4차까지 가도 아침이면 제시간에 딱 출근을 하거든요? 북한 사람들이 술은 많이 마시는데 체력적으로 견디질 못해요. 명절 다음 날에 다들 머리를 감싸 쥐고 일을 못하거든요. 북한 술은 개인들이 뽑은 술이니까 정말 머리가 엄청 아프거든요.

김태산 : 사실 나도 북쪽에서 술파는 곳에서 일해 봤지만 술을 만들 때는 정제하는 기술이 정말 중요해요. 술을 만들면서 생기는 퓨젤유(Fusel)와 아세트알데히드를 꼭 0.1 이하로 정제해야 국제 시장에 술을 팔 수 있어요. 이걸 정제하려면 참숯과 함께 고도의 정제 기술이 필요한데 그게 농촌에 어딨나... 그냥 좀 정제한다는 사람들도 실험실에서 종이 한 장 가져다가 뿌연 색깔이나 좀 면하게 빼내는 것이죠. 그러니까 많이 마시면 골이 정말 빠개지게 아픈 거죠. 거기에는 에틸알코올뿐 아니라 메틸알코올도 포함됐다고 봐야하죠. 그러니까 많이 마실수록 사람의 뇌가 나빠지는 건 두 말할 것도 없죠, 사실.

문성휘 : 요즘엔 또 어떤 방법까지 나오느냐 하면 시멘트 가루 있잖아요? 그 시멘트 가루를 가제 천 위에 쏟아 놓고 그 위로 술을 흘리면 밑으로 맑은 물이 내려가거든요. 그렇게 정제하는데 그게 진짜 건강에 나쁜 거예요.

김태산 : 아, 참 좋지 않은데요.

문성휘 : 그리고 누룩을 띄울 때 페니실린을 조금 넣거든요? 그럼 술 도수가 올라 간데요. 근데 그 술을 딱 먹으면 알려요. 머리가 정말 아파요.

진행자 : 진짜 듣기만 해도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은데...

문성휘 : 북한 사람들 언제 건강 생각해요?

진행자 : 그래도 사회가 술을 권하는 건가... 하여튼 큰일이네요. 근데 진짜 뭐 정제된 술이라도 건강에는 안 좋은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술 마시고 사고도 많이 나고요. 특히, 탈북자들 진짜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많이 걸리죠?

김태산 : 아, 탈북자들이 그건 고쳐야할 문제입니다. 북쪽에는 술 먹고 운전하지 말라는 규정은 있지만 그게 허용은 되거든요. 지방 같은 곳에는 그건 뭐 누가 단속을 해요? 아마 운전수들이 더 많이 먹을 겁니다.

문성휘 : 운전수들 사이에 그러거든요. 내가 어젯밤에 술 한 리터를 마시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차를 끌고 갔다고 은근히 자랑하거든요.

진행자 : 아, 정말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게 바로 음주 운전입니다.

김태산 : 그것이 여기 와서까지 그 버릇을 못 버리고... 물론, 북쪽에서 운전하던 사람이 온 것은 얼마 안돼요. 근데 그 법 없이 살던, 법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여기 와서 자꾸 법을 위반하는 거죠. 한번 걸린 사람은 그냥 봐 준다 쳐도 3,4번까지 걸린 사람도 있어요. 나라에서는 탈북자가 잘 모르고 생계를 위해서 운전을 해야 한다고 봐줘서 감방 가야 하는 걸 벌금 내고 면허 취소당하고 끝났는데 2-3년 있다가 다시 운전면허 따자마자 또 취소당해... 이런 사람 진짜 있어요. 나는 진짜 그런 사람들 보면 다시 가라 그러거든요. 북한 사람들 망신 주지 말고 다시 가야지 !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음주 운전은 다른 사람도 죽이는 거예요. 진짜 운전의 적은 술, 멀리해야 합니다.

진행자 : 자, 이제 마무리 해야겠는데요?

김태산 : 문 선생, 젊은데 술 좀 배우세요. 많이 좀 하라고... 그래야 좋아.

진행자 : 아니에요. 적당하게 드셔야죠. 적당량은요...

김태산 : 아이고, 한두 잔이라고 하려고요? (웃음) 좋다! 남자는 두 병, 여자는 한 병.

진행자 : 아니, 본인의 적정량은 본인이 정해야죠.

김태산 : 사실 술을 강요하진 말아야지. 근데 탈북자들 중에 와서 막 우울해서 술로 살아가는 사람들 있어요. 그게 나쁜 거예요. 사실 술도 즐기면서 마시면 그것도 문화예요. 근데 술을 우울해서 울면서 마시거나 통탄해서 먹으면 독약이 되는 거예요. 우리 탈북자들 특히 여성들 중에서는 중국에 놓고 온 얘들을 생각하면서 밖에도 안 나오고 막 술을 마시고 울고 이런 사람들 있어요. 그러면 그건 진짜 독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마시면 안돼요. 다함께 사람들과 같이 건강을 위해 건배! 즐겁게 마시는 거죠. 술, 이것도 분명 신이 준 선물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제 탄압 아래 수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절망하고 술을 벗 삼아 주정꾼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그 책임이 바로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어떤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술을 권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회가 권해서 마시는 술, 김태산 선생 얘기처럼 독이 되겠죠. 웃으면서 보약 되는 술, 함께 한 잔 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 이만 인사드립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술 얘기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