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김태산: 네, 오랜만입니다.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젠 웬만히 힘 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번 사람들은 전화를 놓을 수 있다, 전화 제한이 없다, 80년대 사람들의 꿈이 그게 아니었습니까? 집에 텔레비(TV)를 놓는 것 그게 첫 번째 목표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재봉기를 놓는 것, 텔레비를 놓으면 그 다음엔 재봉기를 놓는 게 목표가 되고 재봉기까지 놓으면 그 다음엔 녹음기를 놓는 게 목표가 되고 녹음기를 놓으니까 80년대 말부터 중국제 처음 나온 게 중국에서 보온병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 간부들 사무실엔 다 보온병이 있었어요.
김태산: 꼭대기서 누르면 물이 나오는 거, 압축식…
기자: 네, 잘사는 집들에선 보온병이 그때 부의 상징이었어요. 그러다가 그게 지나니까 90년대 초 이때에 선풍기가 나왔어요. 중국에서 선풍기가 나왔는데 그때엔 또 서로 선풍기를 놓는 것, 선풍기가 부의 상징이었어요. 그러다가 점차 냉장고, 냉장고가 그때는 부의 상징이었고 마지막으로 2천년 초부터 오토바이가 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토바이하고 집에 전화를 놓는 거 이게 부의 상징이었는데 벌써 2천 년대에 들어가니까 힘 있는 사람들은 전화를 놓았는데 이게 어떻게 놓느냐하면 전화선 자체를 자기가 다 구입해야 합니다.
김태산: 아, 자재를 다 자기가 대고 그저 오직 기술력만 필요했겠네요.
기자: 네, 그러니까 그때 북한에 없어서 전화선은 다 중국제를 사서 썼거든요. 그래서 우선 장마당에서 전화선을 사와야 됩니다. 그리고 전주대를 빌려서 쓰는데 그 도중에 전주대가 없으면 제 개인이 통나무를 얻어다 거기다 땅을 파고 전주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힘 있는 사람들은 서로 짜죠. 여기까지 오는데 4명이 우리 같은 동네니까 같이 돈을 모아서 여기다 전주대를 세우자. 그러지 않으면 힘 있는 사람들이나 주로 장사꾼들이 많이 그랬죠. 전화선은 하나를 끌고 옵니다. 4명이 힘을 합쳐 전화선 하나를 끌고 오는데 여기에 이제 전에 말씀한 것처럼 교환대 코드죠. 전화가 오면 네명의 집이 다 '때래랭'하고 울립니다. 그럼 전화를 들어보면 "누구네 집을 찾습니다"하면 "알았습니다"하고 우린 전화를 놓습니다.
김태산: 그렇죠. 쁘랏찌(공동선) 딴다고 하지 않았어요.
기자: 네, 그걸 쁘랏찌라고 했죠. 그렇게 쁘랏찌 시켜서 많이 전화를 놓았거든요.
김태산: 그러면 그때 당시에 개인들의 전화선은 거둬(도둑질) 간 사람이 없었어요?
기자: 아, 개인들 전화선은 왜 거두어 가지 못했냐하면 그때 당시 개인 전화선은 다 도시에 있었습니다. 전화선이라는 게 주로 산골에 있고 외지고 사람들의 눈길이 잘 미치지 않은데서 몰래 잘라내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개인전화선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데 있어서 잘라내지 못했겠군요.
기자: 네, 그리고 개인 전화선은 구리선이 아니었습니다.
김태산: 끊어지지 않게 강철선이 들어가 있죠.
기자: 네, 강철선이 들어가고 그 속에 아주 약한 구리가 한선만 딱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훔쳐낼 필요가 없었죠.
김태산: 팔리지 않으니깐. 국가전화선을 잘라낸 건 팔아먹기 위해서 잘라낸 거죠 구리선이니까?
기자: 네, 구리를 중국에 넘기지(밀수)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개인들의 전화선은 거의 자르지 않았고,
김태산: 그랬겠네요.
기자: 그 이후엔 초기에 북한이 휴대전화를 2002년도에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실제 2002년도에 평양시부터 도입하려고 했고요. 그 전화가 러시아제였습니다.
김태산: 처음에 들어 온 전화가 러시아제였다고요?
기자: 네, 러시아제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기술을 도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 전화기 그림도 다 나와 있었거든요. 전화기를 도입하기 전에 휴대전화 그림을 다 보여주었고 그 다음에 전화기 사용법을 먼저 간부들한테 보였습니다. 그래서 간부들이 그걸 보고 "아, 전화기가 이렇구나" 러시아 전화기 이름을 그대로 밝혔고, 그런데 그때에 (2004년 4월 22일) 용천폭발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전화기 도입사업이 다 중단되지 않았습니까? 그 후로부터 휴대전화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 2009년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우리(한국)는 한창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이런 게 나올 때 북한은 처음으로 그때 누르는 방식(버튼식)의 전화를 사용했죠. 그런데 시내(도시)에서도 중계소가 많지 않아서 자강도 강계시면 강계시, 만포시면 만포시에 송신소가 딱 한 개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 다른데서는 사용할 수가 있었지 다른 곳에서는 못 한 거예요.
김태산: 지금은 휴대전화 중계소가 어느 정도까지 확산돼 있습니까?
기자: 지금은 군에도 휴대전화 중계소가 두어 개씩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군 소재지, 읍이라고 하죠. 읍의 양쪽에 휴대전화 중계소를 세워서 읍안에서 전화를 할 수 있고 다른 시외전화도 된다고 합니다.
김태산: 시작과 끝에 세워서 서로 마주 할 수 있게 했다는 거군요. 리에서도 지금 휴대전화를 쓸 수 있습니까?
기자: 리에서는 아직 못 씁니다. 중계소가 안 들어가서.
김태산: 평양시에서는 다 되겠죠?
기자: 네, 북한이 '평양탓치(터치)'라고 자기네 절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사실 알고 보니 중국의 것을 가지고 와서 이름만 바꾸어서 망신도 많이 했는데 최근엔 북한도 전자기술, 반도체기술에 엄청 힘을 넣고 있어서 여러 가지 전화기들이나 이런 걸 조립 생산하는 수준은 된다고 합니다. 탈북자들도 요즘 북한의 모란봉, 삼지연, 아침해, 이런 태블릿 pc죠. 북한은 판형컴퓨터라고 하는데 판형컴퓨터를 많이 가지고 있고요.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판형컴퓨터? 아마 북한 사람들은 정말 굉장한 발전을 느낄 겁니다.
김태산: 아마도 그렇겠죠.
기자: 어느 때인가 갑자기 집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그다음엔 버튼식 휴대전화가 들어왔는데 1년도 못가서 '평양타치'라고 안드로이드 폰이죠. 북한이 쓰는 안드로이드 폰,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그게 안드로이드 폰인 줄 모르고 그냥 '평양탓치' 터치식 폰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이게 실제는 안드로이드 폰이고요.
김태산: 안드로이드 폰이라면 어떤 개념입니까? 나도 참 무식한 사람이 돼서
기자: 북한도 컴퓨터 운영체계가 '붉은별'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컴퓨터에 운영체제가 있는 것처럼 휴대폰도 컴퓨터처럼 안드로이드라든가 아이폰 이렇게 운영체계가 다 다릅니다. 소프트웨어가 다 다르거든요.
김태산: 아, 운영체계에 따라 달라지는 거군요? 평양에서 처음 생산한 건 운영체계를 어떤 걸 썼습니까?
기자: 그냥 안드로이드 폰입니다. 왜냐면 중국 걸 그대로 들여왔으니깐 안드로이드 폰일 수밖에 없죠. 대신 해외에서는 전화할 수 없고 북한 내부에서만 할 수 있고.
김태산: 아, 그럼 북한에서 쓰는 휴대폰이 외국 전화번호를 눌러도 해외와 연결을 할 수 없는 건가요? 우린 여기 앉아서 미국도 전화할 수 있고 어디든 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기자: 아, 그런 건 꿈도 못 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은 정말 변화속도 엄청 많이 느낀다는 거죠. 가끔씩 북한에서 금방 탈북한 사람들과 물어보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른다, 이젠 웬만한 사람들은 다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 TV 없는 집은 없다. 이젠 태양광으로 다 전기를 본다. 그리고 전화기도 이렇게 마음대로 쓴다. 굉장한 변화죠. 북한은 집전화기에서 휴대전화로 뛰어넘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휴대전화도 숫자식, 이거 한 일년 쓰다가 안드로이드 폰으로 직판 넘어갔다는 거죠. 우리가 보면 되게 낙후한 기술을 쓰는데 북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변화는 "와, 세상이 정말 갑자기 너무 좋아졌다.
김태산: 네, 좀 비유법이 그렇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죽도 못 먹던 사람들이 갑자기 쌀밥을 먹는 시대로 온 것 같겠네요.
기자: 네, 이걸 달리 해석하면 중국의 쓰레기장이 된 거죠. 그 오토바이라는 것도 다 중국에서 쓰다 버린 쓰레기죠.
김태산: 옛날엔 그래도 쓰레기도 일본의 쓰레기였는데 지금은 중국의 쓰레기장이 되었다니 참 씁쓸하네요. 일본제는 중고가 들어왔어도 괜찮았어요, 솔직히 자전거도 그래도 냉장고랑 들어오는 걸 보면 어쨌든 일본제니깐 상품이 세계적 수준인 거예요. 그런데 중국 것도 신품이면 좋지 않아요. 중고품을 들여다 쓴다고 하면 자존심은 좀 상하네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같은 동포로서 씁쓸한 감정은 없지 않습니다.
기자: 그게 북한의 실상이고 지금 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변화라는 거죠.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참 북한에 대해 이야기 하자만 그런 씁쓸함 한도 끝도 없이 묻어나옵니다. 오늘 정말 좋은 얘기 많이 나누었고요. 감사합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기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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