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김태산: 네, 염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있었습니다.
기자: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저는 북한의 전기화는 어느 때부터 시작됐고 방송은 어느 때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냐? 이런 게 무척 궁금한데요.
김태산: 네, 우리 집이 자강도 산골이다 보니까 리(이)에서도 한 2km 떨어진 곳이었으니 전기불도 우리 집엔 안 들어 왔어요. 그런데 그때 벌써 유선방송이 있었어요. 리 소재지에 (야외) 스피커가 달려 있었고 집집마다 방송이 있었거든요. 방송 뭐 어쨌든 1960년대 초반에 "방공호로 다 들어 가세요" 이런 전쟁훈련 방송은 다 3방송으로 하지 않았어요. 그게 1960년대부터 제가 들은 방송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와 반면 소련에 그때 나갔다 온 사람들은 라디오라는 게 있었어요. 우리학교에도 조그마한 것이 있었는데 그 라디오는 조절을 하면 "삐, 삐"하면서 외국방송도 나오더라고요. 그걸 못 듣게 했어요.
기자: (라디오를) 그때부터 못 듣게 했어요?
김태산: 네, 나쁜 말을 듣는다고 하면서 우리 어릴 때부터 라디오는 전혀 못 듣게 하고 오직 유선방송만 듣게 하느라고 유선방송을 먼저 발전시켰던 것 같아요.
기자: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해방 전부터 '경성방송'이라고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 라디오 방송이 있었다. 최근 이 "경성방송"에 대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그럼 그 영화 내용이 일제강점기 때겠네요?
기자: 네, 일제 강점기 때에 방송을 만들었다는 거죠. 네, 한국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가지고 직접 운영을 했다는 거지요. 네, 거기에 대한 영화가 최근 나왔는데 한번 보십시오.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할아버지 때, 그게 왜정 때였는데 "그때에는 라디오 하나를 마련하는 게 소를 한 마리 팔아야 했다" 그러시더라고요.
김태산: 그렇지요. 그게 값이 간단치 않았을 것입니다.
기자: 네, 그런데 제가 또 궁금한 건 "소를 팔아서 라디오를 마련한다?" 그러면 전기가 있어야 들을 게 아닙니까? 그때에 만들어진 라디오는 이렇게 장롱만큼 크고 전자관들이 다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네, 그땐 다 전자관을 썼죠. 저도 뭐 그때 역사를 공부하지 못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북한에 전기는 해방이 됐어도 위측(북한)이 남조선(한국)보다 훨씬 발전된 상태에서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았으니까. 수풍발전소를 비롯해서 장진강 발전소, 일본사람 노구찌가 그 수풍발전소를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전기는 일본 때부터 있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때 수도 경성에서부터, 이곳 서울이죠? 서울, 평양, 지방에도 함흥, 그러니까 큰 공장이 있는 도시들엔 그때 당시 전기가 다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이제 해방이 되면서 북조선 정부, 김일성 정부가 그것을 살려서 그냥 쓴 겁니다.
기자: 그러니까 저는요. 태어나서 눈을 딱 떠보니까 전기 불이 보이더라고요.
김태산 그렇겠죠.
기자: 그런데 이자 김 선생님은 "우리는 그때 전기도 못 봤다"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전기는 어느 때부터 봤어요?
김태산: 전기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52년생이니까 어려서 학교 갈 때에 리(이)에도 전기가 다 들어왔어요. 리 소재지까지는 전기가 다 들어와 있었어요.
기자: 그러면 개인집들도 다 전기를 보았다는 건가요?
김태산: 네, 리 소재지 가까이에 있는 집들은 다 전기가 들어갔어요. 그런데 전기는 들어오는데 전기선이 부족해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까지는 전기를 공급하지 못했어요. 특히나 우리 집같이 리 소재지에서 2km 떨어진 집까지는 전기가 67년인가 68년인가 그때에 들어왔어요. 그때까지 내가 인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전기가 없어서 석유등잔불을 켜고 가스등을 켰어요.
기자: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60년대까지 농촌 깊은 곳까지 전기가 못 들어가 '고콜불'이라고 마른 역삼(대마)대에다 쌀뜨물을 여러 번 입혀서 불을 달면 그게 아주 천천히 탄다고 해요. 그걸 여러 대씩 마련한다는 거예요. 그랬다가 밤이면 그걸 한 대씩 세워 불을 달아 집안을 밝혔다고 했어요.
김태산: 옳습니다. 지금 그 역삼이라는 게 한국에서 대마초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내가 어릴 때에도 우리가 살던 농촌에서도 그걸 좀 많이 심었어요. 국가적인 방침(지시)로 해서 많이 심었는데 원인은 뭔가 하면 그걸 심어가지고 식용유를 짜는데도 보내고 가을에는 "역삼을 삶는다"고 해 가지고선 그걸 이제 구덩이에다 넣고 삶아가지고서는 껍질을 벗겨서 농촌에서 그 때는 비날론이 나오기 전이니까 밧줄을 몽땅 그걸로 썼어요. 농촌에서 쓸 밧줄을 국가에서 못 대주니까 역삼을 심어서 100% 해결을 했거든요. 그렇게 하고 그 역삼의 껍질을 벗기면 하얀 대가 나오는데 그걸 여러 대 묶어서 기름을 묻혀 가지고 우리 같은 아이들도 영화 보러 갈 땐 거기다 불을 달아가지고 밝히면서 리 소재지도 가고, 필요하면 그걸 오래 태우려니까 쌀뜨물에다 불리었다가 말려서 쓰곤 했어요. 그게 있었고 나 같은 경우에는 뭐 우리 아버지가 산에 가서 '솔광이'라고, 소나무뿌리 그걸 '솔광이'라고 파다가 불쏘시개로도 쓰고 밤에는 등잔으로 쓰고, 그 다음에 아버지가 임산에 다녔으니까 '카바이드'를 조금씩 얻어서 '카바이드' 불을 조금 보았을 뿐이지 북한은 이 대한민국보다 그때엔 전기를 더 풍족하게 썼다고 봐야 되는 겁니다. 리에까지 전기는 철저히 들어왔어요. 리 소재지, 학교에도 우리가 어릴 때 학교에 수직(경비)을 가도 수직방(경비실)에 전등이 다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전기는 북한에서 남한까지 공급해 줬던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리승만 전 대통령이 단독정부를 먼저 세우니까 김일성이 전기를 딱 잘랐을 뿐이지, 북한에서 그때 사실 전기를 괜찮게 썼습니다.
기자: 북한영화 "도라지 꽃"이라고 있죠?
김태산: 아, 좋은 영화죠. 국제영화제(비동맹영화제)까지 나갔던 영화가 아닙니까?
기자: 그 오미란이 출연한 영화인데 그 영화가 1950년대 후반, 60년대 초에 농촌에 전기화를 하던 과정이 아닙니까? 그런 내용을 많이 다룬 영화였는데 저의 어머니도 "1960년대 초에 아마 개인집들까지 다 전기를 본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김태산: 리 소재지 주민부락까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전기가 다 들어갔습니다.
기자: 맞아요.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을 하셨나 하면 자기네가 어렸을 때엔 이동식 영화차가 있었대요. 그래 이 자동차가 와서 리 소재지…
김태산: 학교마당에다 했죠.
기자: 네, 학교마당 이런데다 영사기를 설치하고 전기를 끌어와 영화를 돌렸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두 거기까지 가서 영화구경을 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 리 소재지까지는 확실히 전기가 들어갔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저의 어머니도 전기를 본 게 1960년대 중반이라고 해요. 자기네는 기본 리 소재지로부터 또 멀리 작업반으로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북한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전기를 보았다. 그런데 저는 방송은 어느 때부터 시작했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이자 60년대에 벌써 북한이 유선방송을 다 설치했다.
김태산: 그렇죠. 방송화는 그때에 철저히 됐는데 이자 말처럼 리 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들은 선이 없으니까, 방송선이 없으니까 방송화가 잘 되진 않았어요. 그러나 리 소재지까지는 방송이 다 들어갔고 지금 생각을 해보면 국가가 그 유선방송, 나무 곽으로 된 거 있잖아요. 그걸 다 만들어서 매 집마다 그때 공급을 했습니다. 북한은 정치선전선동 사업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앞섰다고 봐야 됩니다. 그때 사실은 김일성의 교시나 당의 선전사업을 인민들한테 내려 먹이기 위해서 유선방송을 먼저 발전시켰던 것 같아요.
기자: 네, 여기에도 자금이 상당히 들었을 텐데 말이죠. 정치선전을 위한 도구, 한마디로 인민들을 수령 독재에 순종하도록 세뇌시키기 위해 6.25 전쟁이 끝난 후 무엇보다 먼저 유선방송을 설치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북한의 선전선동의 역사, 한마디로 수령 독재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가 깊은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시간을 통해 제가 모르고 있던 북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도 계속 하기로 하고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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