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도 어제 시간에 이어 북한의 유선방송 역사, 특히 유선방송의 몰락과 함께 북한의 선전선동체계가 허물어진 역사를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전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북한에서 유선방송은 이젠 없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북한은 방송선만 따로 쓰는 전주대가 많았거든요. '고난의 행군' 시기 그 전주대를 다 베어다 화목으로 이용한 거예요.
김태산: 아, 지금 그 정도입니까? 전주대까지 다 잘라서 때버린 정도입니까?
기자: 전주대가 뭡니까? 묘비를 다 잘라서 땔감으로 때서…
김태산: 난 경제전문가이니깐 북한의 경제파산에 대한 것은 숫자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쭉 쓸 수 있겠는데 그 정치적인 문제까지 (경제에) 뒤따라 망했다는 건 이자 처음 듣습니다. 그렇게 되었군요. 이게 평양사람들은 듣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기자: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나무로 만든 화장실 문 다 땔감으로 들어갔어요. 그걸 때다 못해 마지막엔 묘비를 베어내 땠다는 거 거짓말 아닙니다.
김태산: 아니, 묘비가 없어진 건 평양도 같아요. 왜냐하면 평양시 주변의 산마다 인민군 고사포 부대가 다 배치돼 있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 땔 거 없으니까 산에다 오늘 묘를 만들고 묘비를 나무 10*10 각자를 쓰지 않습니까? 그 다음날 가보면 묘비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변 고사포 부대 애들이 전부 다 가져다 때버린다 그래요. 그 다음에 할 수 없이 묘비 대리석으로 하는 집도 있지 않아요. 힘 있는 사람들 대리석으로 멋있게 한 거, 그것도 없어졌어요. 그게 어딜 갔나 봤더니 고사포부대 병사들이 그걸 다 파내서 바닥에 깔고 빨래대로 쓰고 다 포부대 안에서 썼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니깐 그 이후부터 평양시내 묘지를 쓰는 사람들도 돌 쌓고 시멘트로 만들었지 대리석이나 나무 묘비를 쓰지 못했어요. 그러니 지방은 오죽했겠어요?
기자: 그 말 맞습니다. 지방도 역시 변소 문짝, 묘비 훔쳐가고 방송 전주대까지 다 베어다 땐 건 군인들입니다. 북한은 지방에도 군대가 고루 분산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군대들이 다 가져다 땠지 사실 개인은 무서워서 공동묘지에 가지도 못해요. 인민군대니까 가는 거지. 그러니까 방송이라는 게 자연히 다 없어지게 되고 제가 탈북을 할 때까지 그 방송은 회복되지 않았어요.
김태산: 어디서나 다 용감하고 대담하네요. '노동신문'은 그러면 지금 어떻게 배포가 되는 수준입니까?
기자: '노동신문'도 이제는 부수가 엄청 줄었습니다. 이제는 신문을 못 찍으면 '보관지', 그러니까 도서관이나 학교 이런데다 보관하는 것, 아니면 직장마다 한 부씩 보관하는 용도로 얼마 못 찍는다고 합니다.
김태산: 비취용으로 찍네요. 비치용으로 하나씩만 찍고… 아, 기존엔 그래도 세포비서들에겐 한부씩 나가던 건데.
기자: 아, 못 나갑니다.
김태산: 노동신문으로 담배를 말아 피웠는데 노동신문마저 제대로 못 나온다니 뭐 이젠 담배 종이도 없겠네요.
기자: 네, 그래서 이젠 '노동신문' 대신 담배종이가 중국에서 많이 들어와요. 이렇게 수첩처럼 담배를 말만큼의 규격으로 만든 담배종이가 들어옵니다.
김태산: 담배말지(종이)까지도 이젠 수입이 되는 정도예요?
기자: 네, 중국의 장사꾼들이 많이 가지고 들어와서 팔아요.
김태산: 참 듣기 힘든 소리네요. 그 '노동신문',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당 일보마저 그렇게 찍는다면 이젠 뭐 남아있는 정치 수단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네요. 문성휘: 네, 방송이 허물어지는 것과 함께 북한의 선전선동 수단들은 다 무너졌습니다.
김태산: 전 그래도 경제만 그렇게 됐지 아직도 정치선전수단들은 거의나 유지 되는 줄 알았는데 참 새로운 소릴 많이 듣네요.
기자: 다 허물어졌습니다.
김태산: 그러면 이젠 미사일하고 핵밖에 남은 게 없겠네요 결론은?
기자: 그러니까 김정은이 국가보위성까지 등을 돌리면 이젠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김태산: 보안서, 보안부는 지금 어떻게 됩니까?
기자: 보안성은 세력이 많이 약해졌죠. 대신 기동타격대라는 걸 가지고 있습니다.
김태산: 아, 기동타격대 소리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게 매 군마다 있는 겁니까?
기자: 각 도마다 있습니다.
김태산: 아, 군마다 있는 게 아니고, 인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기자: 도 인원에 따라서, 도 인구가 얼마인가에 따라서 150명, 2백명, 이런 정도고요. 예하면 자강도 같은 건 기동타격대가 강계시에만 있는 게 아니라 희천시에도 있다고 합니다.
김태산: 아, 지역에 따라 다르네요.
기자: 네, 그런데 초기엔 기동타격대를 다 남자들로만 받았대요. 하지만 지금은 군대도 인원을 못 채우니까 기동타격대를 받을 인원도 없대요. 그래서 여자들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김태산: 기동타격대에 여자들 데려다 뭘 한다는 겁니까?
기자: 기동타격대라는 게 우선 다 특수훈련을 받다가 제대된 인원들을 받아들이니까 여성들도 그렇게 강하게 다룬다는 겁니다.
김태산: 아, 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받는 다는 거군요? 그렇죠. 북한에서 여성들이 군사복무 시절에 돼지도 잡고 짐승도 다 자기 손으로 잡아먹고 했으니까 가능은 하겠는데…
기자: 그런데 왜 부모들이 딸들을 기동타격대에 보내려 하는가? 우선 여자들은 집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기동타격대에 들어간 여성들은 무조건 입당을 시킨다, 그리고 제대 후 대학도 보낸대요.
김태산: 먹을 건 주겠죠? 그게 전제조건이 되겠으니까?
기자: 아, 먹을 건 주죠. 그래서 높은 간부들은 보내려고 안 하는데 좀 중간급에서 우리 애를 발전 시켜야 하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딸들을 보낸다고 그렇게 얘기해요.
김태산: 입당은 무조건 시키겠죠. 그건 뭐 앞으로 필요한 시기에 잔인하게 당에 충성을 해야 되니까 입당을 시키는 건 뻔하고 뒤처리를 잘 하려면 대학도 보내겠죠.
기자: 네, 그러니까 그저 북한은 이젠 검찰이고 뭐고 다 없죠.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 이 두 조직에 의거하죠.
김태산: 검찰, 재판은 이젠 먹을알도 없고 거의나 맥이 없겠네요?
기자: 네, 검찰은 가끔씩 검열을 하는데 검열이 정기적이 아니어서 그렇게 힘을 못 쓰고 여하튼간 사법기관에 의해서 북한은 유지된다는 거죠.
김태산: 저는 북한에서 경제일꾼을 하면서 검찰 검열이 그렇게 무섭고 시끄러웠는데 그 권한마저 거의나 없어졌다고 하게 되면 뭐 그렇게 되다나니까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좀 편안해졌겠군요.
기자: 그런 게 아니고 그만큼 이젠 북한은 사상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아니다. 사상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고 정보정치, 공포정치, 그거로 유지된다는 거죠. 어쨌든 방송의 종말과 함께 북한의 선전선동체계는 다 무너졌다고 보면 됩니다.
김태산: 그게 무너졌으면 인민들을 휘어잡기 어렵습니다.
기자: 그래서 공포정치를 한다는 거죠.
김태산: 그렇죠. 이젠 결론은 마지막 수단을 쓴다는 건데.
기자: 마지막 수단을 쓴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공포정치가 과연 얼마나 가겠는지…
김태산: 얼마 못 간다는 건 맞지만 그러나 그 정권을 가만히 놔두면 10년이고 20년이고 갈 수 있지 않아요. 공포정치를 반대하자고 국민들을 선동해서 이끌어 낼 그 어떤 야당이나 정치적인 조직도 없고 거기(북한)는 모든 정치조직들이 다 노동당의 산하 위성단체들이고 또 까딱만 잘 못하면 잡아다 죽이고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추방하고 가족을 멸하니까 일반 사람들이 반정부 투쟁을 하자면 나설 사람들이 있겠어요?
기자: 글쎄요.
김태산: 그런데 어쨌든 정치선동수단이 다 죽었다는 자체는 북한도 이젠 다 됐네요. 아 참, 북한이 변화되는 과정에 대해서 제가 상상도 못했던 자료를 많이 들었고, 많이 느끼게 해서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오늘까지 북한 유선방송의 시작과 몰락, 또 유선방송과 함께 허물어진 북한의 선전선동체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북한의 과거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돼 정말 만족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감사합니다.
김태산: 감사합니다.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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