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선 넘은 북-중 설전

0:00 / 0:00

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북한이 지난 5월 3일 관영매체를 통해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하고 있는데 대해 전례 없이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중국도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의 비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요즘 북중 관계가 많이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원래 두 나라 사이가 벌어진 건 결국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라고 봐야 하겠죠?

강철환: 그렇습니다. 북중관계는 이미 1992년 한중 수교와, 1997년 황장엽 한국 망명사건 때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북한은 이 두 사건으로 내부적으로는 절대로 중국을 믿지 않습니다. 한중 수교 때 김일성과 김정일은 거의 공황상태였습니다. 김일성의 경우 중국 지도부와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덩샤오핑 주석이 한국과 수교를 맺는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황장엽 망명사건은 김일성 사망 이후에 벌어진 사건으로 김정일이 중국에 갖은 협박까지 해가며 송환을 요구했지만 중국이 거절하면서 중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게 됐습니다.

전. 중국은 북한이 1990년 중반 식량난에 빠졌을 때 내심 북한이 중국을 본 따 개혁 개방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기대가 무너진 것이 북중 간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 근본적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강. 사실 중국은 이웃나라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 수십만명의 주민이 중국으로 탈출해왔을 때 그들을 강제 북송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난민들을 한국정부에 보내려고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어려워지자 북한으로 송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식량난으로 북한이 붕괴직전으로 몰리면 결국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대북 지원이 없었다면 중국의 예상대로 북한은 개혁 개방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이 북한에 재난이 덮쳤지만 쌀 한 톨 도와주지 않은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속성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변화는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그럼에도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는 중국을 대놓고 비난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중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정은의 대중국 적대적 감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아마 중국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아버지 김정일의 충고가 미숙한 아들에게 그대로 전수되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죽기 전 일 년 동안 무려 3번을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아들에게 물려줄 나라에 신형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중국에 굴욕적 구걸까지 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김정일의 요구를 거절했고 김정일은 또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속내를 절대로 중국에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맞서는 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 그런데 김정은은 집권 이후 친중 세력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북한 군 간부들 중에도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강. 그렇습니다. 2014년경 김정은이 중국의 계속되는 압박에 분노해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지시합니다. 그 가운데 양국 군대의 교류까지 끊으라는 지시는 북한 군부를 긴장시켰습니다. 북한 군의 핵심 간부인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이 김정은에게 중국 군부와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김정은의 화를 입어 숙청당하게 됩니다. 그 만큼 김정은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속내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내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 위해 베이징에 보냈던 모란봉 악단까지 갑자기 소환하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전. 그런데 요즘 북중 간 비난전이 북한측 표현대로 '붉은 선'을 넘는 정도까지 고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6.25 한국전쟁 도발의 당사자가 누군가와 같은 금기시되어오던 얘기도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강. 그렇습니다. 사실 한국전쟁은 중국에서는 항미원조 전쟁입니다. 중국은 단 한번도 6.25 전쟁에 대해서 김일성의 남침 설을 구체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중국이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에 벌인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금기시되던 전쟁에 대한 정의가 중국에 의해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인민일보의 해외판 소설미디어 매체인 협객도는 한 평론에서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중국지원군이 죽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미중 냉전과 양안 문제는 북한의 고집이 가져온 피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중국의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미제국주의의 북침'에 따른 것이라는 북한의 대내 선전과 주장은 김씨 체제 존립에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 중국 관영매체가 한국 전쟁이 항미원조 전쟁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의 적화통일 욕심으로 발발한 것이라고 종전의 주장을 뒤집는 사실이 북한 인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질 경우, 김씨 일가 세습 통치체제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강. 그렇습니다. 사실 중국의 인민일보 해외판 미디어 업체인 협객도의 그런 평론은 북한정권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지도부의 인식과도 일치되지만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잘못된 감정싸움이 중국을 분노하게 했고, 결국 북한정권에게는 치명적인 화를 자초한 꼴입니다. 중국인민해방군 약 20만 명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고 그것은 김일성의 욕심 때문에 쓸데없는 억울한 죽음이었다며 중국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면서까지 북한을 비난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북한에서는 67년동안 한국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일으킨 전쟁이며 북한은 그것을 반대해 저항한 정의의 전쟁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사실이 부정된다면 북한인민들이 가지고 있는 김씨 정권에 대한 정당성은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거 러시아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증언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른바 항미전쟁의 혈맹인 중국에서 한국전쟁이 남침이라는 걸 인정하는 관영 매체 논평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사실상 북한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 도발 책임자에 대한 부정은 북한 정권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