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북한의 입장에도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예상대로 북한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아무런 조문도, 평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배경이 무엇인가요?
강: 북한에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때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투사로 추켜세웠던 인물들입니다. 북한은 남녘의 민중선생이라는 연속극까지 만들어 이들의 활동을 추켜세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만 조문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끝내 조문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의 인사들을 평가할 때 북한정권을 위해 어떤 이득을 주었는지를 놓고 평가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무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현재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과의 악연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요?
강: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된 것은 아버지 김정일의 분신이 될 것을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은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남조선의 적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보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악연은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을 김일성이 추진하면서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일이 내심 그 회담을 반대했습니다. 김정일에게 불만이 있었던 김일성은 다시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생각했고 그것을 추진하다가 급사하게 됩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당시 상황을 회고한 바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영삼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아버지 김일성을 "노망난 늙은이"로 폄하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1990년대 초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인민들에 대한 배급이 중단되자 김일성은 크게 분노했고 김일성은 다시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국정을 자신이 운영하려고 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김정일은 모든 권력을 다 쥐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미움을 받고 후계자 지명을 철회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아버지 김일성이 통치권 주도의 계기로 삼으려 했던 남북 정상회담의 남쪽 당사자였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생각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자신과의 악연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전: 당시 남북정상회담 외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또 다른 큰 악연이 있었지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남한 망명 사건이죠.
강: 그렇습니다. 1997년 초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비서는 다 아시는 봐야 같이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김일성의 이론참모, 김정일의 스승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남쪽으로 망명한다는 것은 김정일 체제에 치명타를 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적극 추진했고 중국에 압력을 가해 그가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국의 지도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한국에 보내줄 것을 설득했고 이러한 노력들이 중국 지도부를 움직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정일도 특수부대 100여명을 중국에 파견해 황장엽을 평양으로 납치해 가려고 했지만 중국 측의 완강한 반대로 끝내 황장엽의 한국행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황장엽 전 비서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런 인연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북한민주화위원회 명예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김정일을 더더욱 자극했다고 봅니다.
전: 북한민주화위원회는 1997년 황 비서가 한국에 망명한 뒤에 북한 민주화 운동을 펼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죠?
답: 그렇습니다.
전: 강 대표 역시 당시에 위원회 창립 위원 중 한 사람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뵙지 않았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를 추진할 당시에 김 전 대통령이 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되어 황장엽 전 비서와 함께 자주 뵈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북한 민주화 운동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관해 그분이 많은 조언을 주셨습니다.
전: 여하튼,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애당초 민주투사로 치켜세웠던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인데, 나중에 김영삼 대통령과는 원수지간이 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치 북측의 우군처럼 간주했다는 얘기죠?
강: 그렇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생전에도 서로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강도 높에 비판해왔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가 황장엽 전 비서를 핍박하는데 대해서도 울분을 감추지 않았고, 정 살기 힘들면 자신의 집으로 모시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북한이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두 전직 대통령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막대한 현금과 식량을 지원한 것도 큰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을 상대로 공격하는 것을 희석시켜준 측면이 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지도부의 평가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북한의 이러한 태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 그대로 표현됐지요?
강: 그렇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에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함께 올 정도였기 때문에 김정일이 최고의 조문단을 파견한 셈입니다. 당시 조문단은 이희호 여사를 만나 북한 최고지도자의 조의를 표시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에도 북한은 중국 지도부의 조문단도 거절했지만 한국에서는 두 사람만 조문단으로 허용을 했습니다.
바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입니다. 북한정권은 철저하게 계산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사망한 김정일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의 방북을 허용했고 두 사람이 결국 북한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조문단 허용을 통해 인정한 것입니다.
전: 그렇다면 최근 이희호 여사의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이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요?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김정은이 이 여사를 외면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강: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데요. 하나는 북한이 너무 계산적이라는 판단입니다. 이희호 여사는 더 이상 북한정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활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김정은 자신의 비인간성인데요. 사람의 만남을 이해관계로만 본다면 그 것만큼 비열한 것이 없습니다. 과거 북한을 위해 헌신한 사람의 부인인데 지금 와서 면담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을 대놓고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북한을 방문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김정은이 이 여사를 외면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고, 김정일은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강: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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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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